문맥 (context)
집단안보 개념의 기원을 1815년 비엔나회의로 등장한 유럽협조체제(Concert of Europe)에서 찾기도 한다. 유럽협조체제는 유럽질서의 현상 변경 세력인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프랑스를 격퇴한 4자 동맹국(오스트리아, 프러시아, 러시아, 영국)이 주도하여 만든 강대국 중심의 다자협력체제이다. 유럽협조체제는 곧 프랑스가 참가하여 5자 강대국 협력체로 가동되었는데, 유럽 구질서의 복구를 주창하는 메테르니히 오스트리아 외상의 지도적 역할에 따라 메테르니히 체제로 불리기도 한다. 그런데 상당 기간 유럽협조체제가 가능했던 것은 강대국 간의 협의 때문만이 아니라, 강대국 간의 ‘세력균형’에 기반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유럽협조체제는 명문화된 조약이 없이 강대국 간 비공식적인 협의체제로 작동하였으며, 일방의 제안에 따라 협의체를 가동하였다. 19세기 유럽은 전쟁과 혁명과 민족주의로 격변의 시대를 겪었지만, 그래도 그 이전과 20세기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평화와 번영시대를 구가하였다. 유럽 협조체제의 반시대성과 강대국 중심에 대한 지적은 있지만, 이로 인해 장기 평화가 가능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인류 전쟁사를 통해 억지(deterrence)는 잠재적 적국의 공격을 예방하고 저지하는 데 효과적인 안보 개념으로 오랫동안 사용되어 왔다. 억지는 적국이 군사적 수단으로 전쟁 목적을 달성하려고 할 때 대응으로서 군사적 수단의 사용을 위협하거나, 실제 전쟁 발발 시 군사적 응징을 위협함으로써 상대의 공격을 사전에 저지시키는 것이다. 억지 개념은 적국에 대한 외교적 설득이 아니라, 충분한 정치·군사적 억지력의 축적을 통해 상대국이 스스로 전쟁의 혜택보다 비용이 월등할 것이라고 판단토록 함으로써 성립된다. 억지 개념에서는 군사력 수단의 용도가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상 대의 전쟁 기도를 좌절시키는 데 있다. 따라서 상대국이 아국의 억지력을 오판하여 전쟁을 일으킨다면, 억지는 이미 실패한 국제안보 전략이 된다.
그런데 20세기 후반기 핵무기의 발명과 미국과 소련의 핵무기 독과점체제는 전통적인 억지 개념을 새로운 ‘핵억지’ 개념으로 발전시켰다. 수 킬로 톤 수준의 폭발력을 가진 원자폭탄에 이어 수 십 메가톤의 폭발력을 가진 수소폭탄이 개발되고 배치되면서, 상호 핵선제공격에 대한 의구심과 우려가 증폭되었다. 냉전 시 배치된 핵무기의 총 폭발력이 수 만 메가톤까지 급증하였다가 수차례 핵군축을 거쳐 현재 약 7,000메가톤까지 줄었다. 2차 대전에 사용된 모든 폭발력(히로시마, 나가사끼 원폭 포함)의 규모가 약 3메가톤에 불과한 점을 고려한다면 전면 핵전쟁의 파괴력을 상상할 수 있다. 그렇지만 미국과 소련은 다양한 핵전쟁 시나리오를 상정하면서, 전쟁 억지뿐만 아니라 핵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다양한 핵전략을 개발하였다. 상호확증파괴, 신뢰할만한 억지, 핵전력 삼각체제, 확장억지 등이 있다.
20세기 중반 이후 냉전기의 양극체제에서 강대국 전쟁이 없었는데 이를 세력균형이 작동한 것으로 보아야 하는가. 사실 냉전기 동안 미·소를 대신 한 대리전은 다수 있었지만, 강대국 간 세계대전은 없었다. 국제정치 역사에서 볼 때 45년간 대전이 없었다는 것은 장기 평화시대로 볼 수 있다. 그런데 미·소 간 양극체제를 엄밀한 의미의 ‘세력균형’으로 보기는 어렵다. 특히 미·소 간 전쟁의 부재는 세력균형 때문이 아니라, 전대미문의 폭발력을 가진 핵무기의 등장으로 인한 상호 ‘핵억지’가 작동하였기 때문이다. 세력균형체제가 상호 견제로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3개 이상의 강대국이 필요하다. 세력균형이 비강대국 또는 약소국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세력균형은 기본적으로 강대국 간 현상이며, 강대국의 외교정책이다. 더욱이 유럽식 세력균형체제를 본다면, 강대국들은 자신들의 세력균형을 위해 약소국을 주고받는 거래의 대상으로 보았다.
‘포괄안보(Comprehensive Security)’는 탈냉전기 들어 통용되는 새로운 국제안보 개념 중 하나이다. 포괄안보 용어가 일반적으로 통용되기는 하나, 아직 안보 ‘개념화’ 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종종 포괄안보를 말할 때, 안보 개념의 포괄성을 강조하면서, 안보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되는 모든 활동을 열거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OSCE는 포괄안보를 전면에 표방하고 있다. OSCE가 지향하는 포괄안보는 안보의 대상을 정치·군사뿐만 아니라, 경제, 환경, 인간 분야를 포함한다는 차원에서 전통적인 군사안보 중심의 안보 개념과 대조된다. 유럽, 중앙아시아와 미주의 57개국이 참가하는 안보기구인 OSCE는 스스로 ‘협력안보 및 포괄안보 기구’로 부르는데, 여기서는 ‘협력안보’는 회원국 간 협력 방식 또는 협력 필요성을 지칭하며, ‘포괄안보’는 안보 대상의 포괄성을 말한다. 특히 이와 관련, OSCE는 동 기구가 추구하는 안보 개념은 정치·군사, 경제·환경, 인간 등 ‘3개 차원(three dimensions)’을 포괄한다는 점을 부각한다.
세력균형과 동맹을 중심으로 하는 국제안보 개념과 대조적으로 일체의 세력균형과 동맹에서 벗어나서 안보를 지키고자 하는 ‘중립(neutrality)’ 안 보 개념이 있다.24 사실 중립은 세력균형이나 동맹만큼 오랜 역사를 갖는 다. 17세기 유럽식 국제체제와 빈발한 국제전쟁 속에서 탄생한 중립 개념은점차 법적 지위를 갖게 되었고, 20세기 들어 각종 국제협정을 통해 중립국의 권리와 의무도 명문화 되었다. 이에 따라 중립국이 전시 전쟁당사국에 대해 중립을 대가로 하고(일체 전쟁당사국에 영토 및 편의 제공 거부), 전쟁 당사국은 중립국을 침공하지 않고 영토 보전을 보장한다. 중립은 외교정책으로서 불관여 또는 고립주의와 다르다. 19세기 영국과 미국의 고립주의는 정치적 개념으로 자신과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어 보이는 국제관계에 개입하지 않으며, 자신에 대한 외부의 관여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정치적 선언 또는 정책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들 강대국은 국제법이나 협정보다는 자신의 힘으로 고립 정책을 강요할 수 있었다.
또 다른 유럽의 대표적인 중립국가인 오스트리아, 스웨덴, 핀란드는 각각 다른 연원으로 중립국이 되었다. 2차 대전 당시 독일에 속했던 오스트리아는 1955년 ‘오스트리아국가조약(Austria State Treaty)’에 따라 독립을 부여받자 곧 이어 ‘영세중립’을 선언하였다. 당시 점령국의 하나인 소련이 오스트리아의 서방 진영 가담을 우려하여 스위스 모델의 영세중립을 요구하 였고, 오스트리아는 이를 수용하여 중립을 선택하였다. 스웨덴의 중립은 국제협정이 아니라 자신의 정책 선언에 따라 추진된 것 이며, 1800년대 초반까지 그 역사가 거슬러 올라간다. 스웨덴은 2차 대전 당시에도 중립을 선언하였고, 종전 이후에도 소련의 침공 가능성으로 인한 안보의 취약성을 감안하여 중립을 유지하고 있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냉전기 미·소 양극체제에서 강대국 간의 전쟁이 발생하지 않았던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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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과제 해석
task_interpretation냉전기 미·소 양극체제에서 강대국 간 전쟁이 부재했던 원인을 문맥에서 찾아 답변을 도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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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정보 추출
information_extraction냉전기 미·소 관계와 전쟁 부재에 관한 내용을 추출한다.
- 냉전기 동안 미·소를 대신 한 대리전은 다수 있었지만, 강대국 간 세계대전은 없었다.
- 미·소 간 양극체제를 엄밀한 의미의 ‘세력균형’으로 보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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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근거 선택
evidence_selection전쟁 부재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명시된 문구를 선택한다.
- 미·소 간 전쟁의 부재는 세력균형 때문이 아니라, 전대미문의 폭발력을 가진 핵무기의 등장으로 인한 상호 ‘핵억지’가 작동하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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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논리 통합
logical_integration미·소 간의 전쟁 부재가 세력균형이 아닌 핵무기에 의한 핵억지 작용 때문임을 논리적으로 연결한다.
- 미·소 간 전쟁의 부재는 세력균형 때문이 아니라, 전대미문의 폭발력을 가진 핵무기의 등장으로 인한 상호 ‘핵억지’가 작동하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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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결론 도출
conclusion_formulation전쟁이 없었던 이유는 핵무기의 등장으로 인한 상호 핵억지가 작동했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 전대미문의 폭발력을 가진 핵무기의 등장으로 인한 상호 ‘핵억지’가 작동하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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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답변 생성
answer_generation질문에 대한 최종 답변을 작성한다.
- 전대미문의 폭발력을 가진 핵무기의 등장으로 인한 상호 ‘핵억지’가 작동하였기 때문이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전대미문의 폭발력을 가진 핵무기의 등장으로 인한 상호 ‘핵억지’가 작동하였기 때문이다.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핵무기의 등장이 상호 핵억지를 작동시켜 냉전기 미·소 양극체제에서 전쟁이 발생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