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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제전환 과정에서 나타나는 국가-기업 간의 이익 연합과 지대추구 행위, 그리고 개혁 방식에 따른 경제 발전 및 부패 양상의 차이 doc_id PCY_201603150357188861_8

주제 (main_topic)
체제전환 과정에서 나타나는 국가-기업 간의 이익 연합과 지대추구 행위, 그리고 개혁 방식에 따른 경제 발전 및 부패 양상의 차이
답변 불가 (is_impossible)
False
문맥 (context)
그러나 이와 같은 시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베트남이 동아시아에서와 같은 “발전국가(developmental state)”에 근접하고 있다는 징후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도이모이 개혁을 통한 자유화 조치와 국영기업에 초점을 맞춘 발전전략은 이른바 “국가-사업 이익(state-business interests)”을 창출하 였는데, 이는 곧 합법적 및 비합법적 사업 간의 경계가 모호한 공적 이익과 사적 이익 간의 혼합을 의미하는 것이다. 사 부문의 기업가들은 국영기업 이나 개혁으로 생성된 상업적 기회를 이용하고자 하는 당 및 국가 관료기관 과 연계되었다. 이와 같은 “국가-사업 집단(state-business bloc)”은 주로 지방정부와 예산 외 수입을 창출하고자 하는 중앙 부처 기관들, 그리고 국영기업의 이윤을 축적해서 부를 전유하고자 하는 국영기업 경영자들로 구성되었다. 국가-사업 이익이 공산당 및 정부의 후견체제(patronage system)와 긴밀히 연계됨에 따라서 강력한 국영기업과 연계된 정부 관리들 뿐만 아니라 불안정한 규제체제를 통해서 이득을 볼 수 있는 자들 사이에서 지대추구 행위가 만연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서 1990년대 중반 이래로부터는 여전히 하노이에서의 계약이 중요하였지만, 외국 투자의 최종 기착지에 대한 중앙의 통제가 현저히 약화 되었다. 지방 기관들의 힘은 일련의 법률과 시행령으로 대폭 강화되었다. 예컨대 1996년 1월의 법령(Decree 852/TTg)은 외국직접투자를 지방 인민위원회의 관할하에 귀속시켰고 이는 베트남의 여러 지역에 걸쳐서 투자를 다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같은 해 중앙정부의 결정은 지방과 시들이 직접 외국 투자 프로젝트를 체결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이제 지방들은 규제 환경을 개선시킴으로써 투자를 유치하고자 하였고 투자자들은 더 많은 것을 요구했으며, 투자에 따라 늘어난 세금과 일자리는 이러한 투자자와 지방정부 간의 긍정적인 선순환을 더욱 강화하는 것이었다. 성공적인 지방들은 더 큰 몫의 재정 적자를 중앙정부로 이전시켰고, 이는 곧 중앙정부 에게는 지방의 투자 유치를 저해하지 않는 인센티브가 되는 것이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국영기업 그리고 외국 자본 간에 광범한 “발전 연합(developmental coalition)”이 형성되었으며, 노동자들 역시 일자리 창출과 경제 성장으로 혜택을 보게 되었다. 이와 같은 부패한 네트워크 구조(corrupt network politics)하에서는 공직과 인적 관계가 부의 창출과 긴밀하게 혼재하게 되며, 따라서 국가는 발전국가로서가 아니라 규제와 허가, 계약의 감독자 또는 국가가 통제하는 자원에 대한 접근을 감독하는 이른바 “통제국가 (gatekeeping state)”로서 경제에 개입하게 된다. 지대를 창출하는 이와 같은 행위, 그리고 이익의 연합은 곧 부패의 온상이 되는 것이다. 결국, 도이모이는 개혁 초기 발전연합(development coalition)이 형성 되는 기회를 제공하였으나, 이후 “분배연합(distributional coalition)”으로 변질되고 있다. 체제전환의 두 단계를 거치면서 베트남 경제는 국가의 직접 개입을 완화시키는 조치들을 통해서 발전해왔고, 이 과정에서 중앙 당 및 정부의 경제발전을 지휘하고 수행하는 능력과 더불어 지속적 발전을 위한 제도적 능력은 약화되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베트남에서의 초기 개혁의 성공은 오히려 훗날 퇴행의 씨를 뿌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베트남의 경제성장은 2008년 세계 경제위기 이전에 이미 약화되는 조짐을 보였고, 특히 국영 부문에서 부패가 만연하게 되었다. 무역과 더불어 투자 역시 통합의 추진 동인이 되었다. 이들 국가들에 대한 직접투자(FDI)는 두 가지 단계로 이루어졌는데 그 첫 번째는 사유화 과정에서의 투자이며, 두 번째는 사유화 이후 기업가들이 이 지역의 우수한 인적 자본을 서유럽의 자본 및 기술과 결합시키면서, 특히 소매 및 금융 부문에서 이루어졌다. 이들 국가들에게는 GDP의 5~6% 수준에 달하는 직접 투자 자본이 유입되고 있으며, 외국 자본이 투자의 주요 부분을 담당하는 성장 경로를 밟아오고 있다. 직접투자 자본의 대규모 유입은 중간재 생산 확장의 근원이 되고 이는 다시 이들 국가들을 유럽 부가가치 창출 체인의 일부로 만들고 있다. 직접투자는 한편으로는 대규모의 경상수지 적자를 부채 없이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대규모 기술 이전의 채널로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래로부터의 이른바 “울타리 타파(fence-breaking)”와 국가 정책이 상호작용을 하는 것이 베트남의 체제전환 과정의 중요한 특징이었다. 울타리 타파는 중앙계획경제의 틀 밖에서 일어나는 자발적인 상업화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이미 도이모이 개혁 이전부터 경제위기와 계획경제의 비 작동으로 점차적으로 일상화되었다. 울타리 타파 현상은 농업은 물론 산업 전반으로 광범하게 확산되었는데, 여기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었다. 첫 번째 유형은 기업들과 다른 생산 주체 들 간의 직접적인 수평적 접촉이며, 또 다른 유형은 통상 지방정부, 그리고 최고위층 기관들을 포함하는 상위 수준 기관들 간의 협력과 공모의 유형이다. 농업 및 산업 분야에서의 울타리 타파에는 지방정부가 연루되거나 지 방정부들의 주도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많은 경우 상위 기관들이 기업들의 교역 상대를 찾아주거나 울타리 타파를 조장하는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행위의 결과로 이미 1960년대 초 국가 가격과 시장 가격 간 상당한 괴리가 나타났고, 1975년경에 이르러서 북베트남 경제는 계획경제와 생산주체들 간의 자발적인 수평적 연계가 공존하게 되었으며 자유 시장이 존재하게 되었다. 체코슬로바키아의 경험은 사유화가 기업의 구조개혁이나 국내 자본이 등장하기 이전에 신속히 단행되어야 함을 시사하고 있다. 에스토니아에서도 체코슬로바키아에서와 같은 바우처 사유화를 도입하였지만, 국영기업의 공개적인 국제경매를 통해서 핵심 소유자가 될 외국 자본에 매각하고 소수 지분을 바우처를 통해서 국내에 매각함으로써 초기부터 외국 자본을 끌어 들였다. 에스토니아에서 두 번째 국면의 개혁은 1999년 총선으로 형성된 연립정부하에서 비롯되었다. 급진개혁 정책의 도입과 추진 여부는 중동부 유럽 및 발틱 국가들과 구소련 국가들의 체제전환 경로를 가르는 중요한 출발점이 되었다. 급진개혁은 무엇보다도 신, 구 엘리트들의 지대추구 기회를 급격히 줄였던데 반해서, 점진적 개혁이나 무 개혁 국가들에서는 지대추구가 만연하게 되었다. 2001년 경 GDP에서 차지하는 사(私) 부문의 비중이 벨라루스에서는 20%, 투르크메 니스탄에서는 25%에 달했던데 반해서, 헝가리, 체크 공화국, 슬로바키아에서 는 80%에 달하고 있었다. 불가리아에서와같이 사유화가 늦춰진 경우에 는, 구 정권의 엘리트들이 “자발적 사유화(spontaneous privatization)”를 통해서 국영기업을 사실상 통제하고 소유하는 현상이 초래되었다. 천연자원으로 인한 자원지대가 부재하고 이에 따라 현재의 재정수익이 불안정, 불확실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수요 자원을 충당해 줄 대체 공급원도 부재하는 상황에서 이들 국가의 새로운 정치 지도자들은 오히려 미래의 불확실성을 선택하였다. 즉 이러한 경우에는 국가 경제의 효율성을 제고하는 경제 개혁을 통해서 국민 대다수의 소득 수준을 향상시키고 이들로부터 세금을 징수함으로써 재정수입을 확보하는 전략이 합리성을 갖게 되며, 따라서 이들 국가들에서는 경제 개혁과 민주화가 사회적 지지를 얻기 위한 중요한 정치적 어젠다로 등장하였다. 선거를 통해서 다수표를 획득하는 것이 정치적 경쟁의 핵심이 되었고 이러한 정치적 경쟁의 과정에서 경제개혁이 주 이슈로 부각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불가리아와 루마니아에서는 공산당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사실상의 위로부터의 쿠데타가 일어났고 아래로부터의 항거에 의해서 결국 민주 총선을 치렀지만, 외형을 바꾼 공산당이 사실상 재집권함으로써 중동부 유럽 국가 중 유일하게 공산당이 사실상 권력을 유지한 두 국가가 되었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베트남의 도이모이 개혁 과정에서 나타난 '발전 연합(developmental coalition)'이 이후 어떤 성격으로 변질되었으며, 그 결과로 나타난 국가의 역할 변화는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도이모이 개혁 이후 형성된 발전 연합의 변질 양상과 그에 따른 베트남 국가의 경제 개입 성격 변화를 파악해야 한다.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발전 연합의 변질에 관한 내용과 국가의 역할 변화에 관한 문구를 추출한다.

    • 결국, 도이모이는 개혁 초기 발전연합(development coalition)이 형성 되는 기회를 제공하였으나, 이후 “분배연합(distributional coalition)”으로 변질되고 있다.
    • 국가는 발전국가로서가 아니라 규제와 허가, 계약의 감독자 또는 국가가 통제하는 자원에 대한 접근을 감독하는 이른바 “통제국가 (gatekeeping state)”로서 경제에 개입하게 된다.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질문에 직접적으로 대응하는 '분배연합으로의 변질'과 '통제국가로의 역할 변화' 근거를 선택한다.

    • “분배연합(distributional coalition)”으로 변질되고 있다.
    • “통제국가 (gatekeeping state)”로서 경제에 개입하게 된다.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초기 발전 연합이 분배 연합으로 변질됨에 따라, 국가가 경제를 주도하는 발전국가가 아닌 규제와 접근권을 감독하는 통제국가로 기능하게 되었음을 연결한다.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발전 연합은 분배 연합으로 변질되었으며, 국가는 발전국가가 아닌 통제국가로서 경제에 개입하게 되었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도출된 결론을 바탕으로 최종 답변을 작성한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도이모이 개혁 초기 형성되었던 발전 연합은 이후 '분배연합(distributional coalition)'으로 변질되었다. 이로 인해 국가는 경제를 이끄는 발전국가가 아니라, 규제와 허가, 계약의 감독자 또는 국가가 통제하는 자원에 대한 접근을 감독하는 '통제국가(gatekeeping state)'로서 경제에 개입하게 된다.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도이모이 개혁 이후 발전 연합이 분배 연합으로 변질됨에 따라, 베트남 국가의 역할이 발전국가에서 규제와 자원 접근을 감독하는 통제국가로 변화했음을 추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