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공데이터 · 도서자료 기계독해

베를린 한인무용단의 운영 현황과 위기 요인을 통해 살펴본 정부와 시장의 통합적 문화정책 모델의 필요성 doc_id PCY_201609010610135541_3

주제 (main_topic)
베를린 한인무용단의 운영 현황과 위기 요인을 통해 살펴본 정부와 시장의 통합적 문화정책 모델의 필요성
답변 불가 (is_impossible)
True
문맥 (context)
준전문 무용단이 공연의 질 향상을 통한 무용단의 전문성에 초점을 둔 반면, 클럽 지향적 한인무용단은 공연보다는 한인간호사간 친목을 도모하는 데 무용단 운영의 중점을 두었다. 클럽 지향적인 한인무용단에는 연화무용단(1991)과 우리무용단(2003)이 속한다. 클럽 지향적 한인무용단의 역사는 아리랑무용단 출신의 단원들이 중심이 되어 창단한 연화무용단에서 시작한다. 연화무용단을 만든 단원들은 아리랑무용단의 단장 중심 운영체제와 사제지간의 엄격한 규율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이에 몇몇 단원은 1991년 아리랑무용단을 나와 연화무용단을 창단했다(현주 2011: 69-72). 연화무용단은 단장 중심의 무용단 운영을 지양하고 단원들의 친목을 중시하여 동호회 성격의 독일 클럽적 요소와 한국의 친목계적 성향(현주․나영일, 2011: 94)을 합한 독특한 무용단 문화를 형성했다. 단원의 대부분이 아리랑무용단 출신인 연화무용단은 더욱 분권화한 무용단 운영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아래는 연화무용단이 1993년 작성한 회칙인데, 이를 통해 무용단 운영이 상당히 분권적임을 알 수 있다.9) 연화무용단보다 늦은 2003년에 창단한 우리무용단은 클럽적인 요소가 보다 강한 형태를 보인다. 베를린의 한인간호사들이 고령화하기 시작하는 2000년 전후에는 한국무용에 대한 의미가 많이 변화했다. 과거 한인간호사들이 젊을 때에는 이들의 젊은 혈기와 한국무용에 대한 열정으로 헌신적으로 무용단 활동을 할 수 있었지만 점차 연금생활자가 늘고 대부분의 단원이 50대 후반이 되는 2000년 중반에는 과거와 같이 무용을 할 수 없는 물리적 한계가 나타났다. 이에 우리무용단은 한국무용을 통한 친목도모 외에 무용을 통한 건강증진이라는 목표로 2003년에 창단되었다(현주, 2011: 111-113). 클럽 지향적 한인무용단의 가장 큰 특징은 공연 중심의 운영을 하는 준전문 한인무용단과는 달리 공연보다는 단원들의 친목도모에 큰 비중을 두고 독일 현지의 스포츠 클럽제도를 받아들였다. 또한 클럽 지향적 한인무용단은 한국무용에 낯선 일반 한인간호사도 참여할 수 있도록 초보자반을 개설함으로써 한인무용단의 외연을 확장하려고 했다 엘리아스가 명료하게 밝히고 있듯이 결합태는 정태적 구조가 아닌 동태적 관계다. 이러한 인간 상호의존관계의 구체적 형태인 결합태는 구성원간의 경쟁을 통해 장기적으로 변한다. 결국 개인들이 상호의존하는 관계망인 결합태는 항상 시간의 흐름 속에 있다(Elias, 1996: 31). 베를린 한인무용단의 결합태 역시 예외는 아니다. 베를린의 한인무용단들은 각각의 무용단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서로 경쟁했다. 그러나 30년 동안 상호경쟁을 통해 발전해 온 베를린의 한인무용단은 최근 위기에 처해 있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베를린에서 총 6개인 한인무용단(가야무용단, 가야 청소년무용단, 연화무용단, 우리무용단, 아리랑 청소년무용단, 소나무무용단)이 활동했다. 그러나 2008년 아리랑 청소년 무용단이 해체되었고, 연화무용단과 소나무무용단은 단원 확보의 어려움으로 거의 활동하지 않고 있어 현재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한인무용단은 3개 무용단으로 줄어들었다. 이렇게 한인무용단의 수가 급격하게 줄어들고 활동이 위축된 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 첫째, 점차 고령화하는 베를린 한인사회의 구조다. 베를린 한인사회와 한인무용단의 주체인 한인간호사들의 연령은 50대 후반에서 70대 초반 사이에 분포하고 있다. 전통무용은 신체활동을 중심으로 한 예술이기 때문에 단원들의 고령화는 무용단 활동을 제한하는 직접적인 요인이다. 또한 베를린 한인사회의 고령화는 무용단의 신규 단원을 모집하는 데에도 영향을 미친다(현주, 2011: 138-139). 둘째, 한인간호사들의 고령화는 단지 단원들의 신체적 능력의 약화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한인간호사들의 고령화는 경제력 약화를 내포하고 있다. 현재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우리무용단의 경우, 단원의 반 이상이 연금생활자이다. 무용단 활동은 의상과 소품 구입비, 전문가 강습에 많은 비용이 필요하므로 경제력 약화는 무용단 활동의 위축으로 이어진다. 정부주도형은 문화정책에 있어 주로 정부가 개입, 조정하는 것을 중시하는 형태(이흥재, 2006: 395)인데 한인무용단의 사례에서 한국문화원의 역할을 통해 정부주도형 문화정책의 특징이 드러난다. 베를린 문화교류 결합태에서 정부 즉 행위자인 한국문화원은 베를린 한인무용단의 활동을 파독 간호사들의 개인 취미활동에 기초한 아마추어 수준의 예술 활동으로 인식하여 문화교류정책의 중요한 자산이라는 점을 인식하지 못했다. 또한 한인무용단 단원들 중에 무용을 전공한 사람이 한 명도 없기 때문에 문화원은 오랜 기간 동안 공연활동을 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한인무용단의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렇듯 정부 주도형 문화정책은 예술 및 문화의 기준을 공식성과 전문성에 초점을 두어 예술과 문화의 범위를 지나치게 좁게 정의함으로써 자생적이면서 역동적인 대중문화에 둔감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부주도형 문화 정책에는 소수의 엘리트 예술인들과 관료만이 참여하여 일반 대중의 다양한 문화 참여가 배제된 그들만의 리그가 될 가능성이 높다. 베를린 한인무용단의 사례는 지금까지 문화원으로 대표되는 정부주도형과 시장주도형 문화정책의 문제점을 동시에 보여준다. 특히 이 사례가 시사하는 점은 장기간 한인무용단을 중심으로 한 베를린의 문화교류 결합태에서 정부와 시장이 서로 소통하지 못한 채 각자 자신들의 게임(정부형 문화정책, 시장형 문화정책)에 따라 행위 하였다는 것이다. 정부와 시장의 소통 부재가 그동안 문제가 없었던 원인은 한인간호사들의 전통무용에 대한 열정과 경제력의 뒷받침으로 한인무용단의 자생적 발전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부와 시장간 통합 부재의 결합태에서 위기는 항상 잠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를 극복할 수 없는 구조를 띠고 있다. 한인무용단 단원들의 고령화와 경제력 약화는 베를린 한인무용단을 중심으로 한 그동안의 해외문화교류 결합태가 얼마나 위기에 취약한 것임을 잘 보여준다. 베를린 해외 문화교류의 결합태를 낙지에 비유하면 베를린 한인무용단, 베를린 한인회, 한인학교, 베를린 자유대학 한국학과, 베를린 병원협회, 베를린 간호요원회, 빌머스 도르프 구청 청소년회관, 베를린 한인 2세 조직 등의 행위자는 낙지의 발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문화정책에서 시장 영역에 해당하므로 다양한 행위자들은 낙지의 발처럼 자유롭게 행위한다. 이에 반해 베를린 주재 한국문화원은 낙지의 머리에 해당한다. 문화원은 낙지의 발에 해당하는 다양한 행위자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하는 한편, 이를 통합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문화정책의 낙지 모델이 강조하는 것은 다양한 행위자들의 활동 보장과 정부가 이를 적절하게 통제하여 문화정책에 있어 정부와 시장의 효과적인 통합이 가능함을 의미한다. 그러면 낙지의 머리와 다리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통합해야 하는가? 해석 인류학자 기어츠(Cliffort Geertz)는 문화를 낙지에 비유한다. 기어츠에게 있어 문화는 촘촘하게 얽혀 있는 거미줄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래알처럼 질서 없이 흩어져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문화는 낙지처럼 발은 항상 제각각 움직이면서 머리에서는 한데 뭉쳐 있는 부분적 통합이라는 특성을 지닌다(하영선·김상배, 2006: 456; Geertz, 2008: 477). 그러나 낙지는 단순히 문화뿐 아니라 해외 문화교류 정책에서 정부주도형이냐 시장주도형이냐의 이분법을 극복할 대안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거미줄처럼 가 시적이고 형식적인 틀을 통해 문화를 이해하는 정부주도형과 다양한 행위자를 통합하는 데 약점이 있는 시장주도형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문화정책에서는 정부와 시장을 적절하게 통합하고 소통하는 낙지 모델이 필요하다. 이제 게임의 흐름을 바꾸기 위해 유능한 조커가 필요하다. 지금까지의 게임에서 정부 측 행위자인 한국문화원과 시장측 행위자인 한인무용단을 조정하는 관리자의 부재가 정부와 시장의 유기적인 통합을 가로 막았다. 베를린 한인무용단은 30년 이상 공연 활동을 했지만, 전문성의 부재는 이들에게 아무리 노력해도 아마추어 무용단이란 낙인을 찍는다. 또한 전문성 부재는 오래 활동한 단원들이 독립해서 자신의 무용단을 창단함으로써 베를린 한인무용단을 분열시키는 원인이기도 한다. 한국문화원 입장에서 한인무용단의 전문성 부재와 분열은 지원의 여지를 축소시키는 근거다. 따라서 결합태 관리자는 전통무용의 전문가여야 한다. 전통무용 전문가 출신 관리자는 분열되어 있는 한인무용단을 전문성이라는 카리스마를 통해 통합할 수 있다. 전통무용 전문가 출신 관리자는 한인무용단을 대상으로 무용을 가르침으로써 베를린 문화교류의 결합태에서 관리자와 단원들의 구성은 스승(결합태 관리자)과 제자(한인무용단)의 계서적 형태(Figuration mit zwei Hierarchieebenen)로 전환된다(Borschel, 2010: 92-93).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연화무용단이 1991년 창단될 당시, 아리랑무용단을 나와서 창단에 참여했던 구체적인 단원들의 명단을 제시하라.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질문은 1991년 연화무용단 창단에 참여한 구체적인 인물들의 명단을 요구한다.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문맥에서 연화무용단의 창단 배경과 관련하여 아리랑무용단 출신 단원들이 중심이 되었다는 사실을 추출한다.

    • 클럽 지향적 한인무용단의 역사는 아리랑무용단 출신의 단원들이 중심이 되어 창단한 연화무용단에서 시작한다.
    • 이에 몇몇 단원은 1991년 아리랑무용단을 나와 연화무용단을 창단했다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연화무용단이 아리랑무용단 출신 단원들에 의해 창단되었다는 근거는 있으나, 그 단원들의 이름이나 구체적인 명단은 언급되어 있지 않다.

    • 아리랑무용단 출신의 단원들이 중심이 되어 창단한 연화무용단
    • 몇몇 단원은 1991년 아리랑무용단을 나와 연화무용단을 창단했다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문맥을 종합하면 연화무용단이 아리랑무용단에서 이탈한 '몇몇 단원'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알 수 있지만, 그 '몇몇 단원'이 누구인지에 대한 정보는 결합할 수 없다.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질문에서 요구하는 핵심 정보인 '단원들의 명단'은 문맥 내에 존재하지 않는다.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제공된 정보만으로는 단원들의 이름을 확인할 수 없으므로 답변 불가능 판정을 내린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주어진 문맥만으로는 답을 확인할 수 없다.
분석 (analysis)
문맥에는 연화무용단이 아리랑무용단 출신의 몇몇 단원들에 의해 창단되었다는 사실은 명시되어 있으나, 해당 단원들의 구체적인 성함이나 명단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문맥 외부의 추가적인 정보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