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맥 (context)
1970년대 초까지 국제 석유시장은 이른바 일곱자매(seven sisters)라고 불린 석유메이저들이 상류 및 하류 부문을 모두 통제하고 있었다. 석유메이저들이 진출한 국가의 정부는 생산 및 가격 결정에 참여하지 못했고, 단지 원유채굴권을 판매하여 세금과 사용료를 받는 역할에 머물렀다. 석유메이저들은 탐사·개발·생산·수송·정제·판매 등 수직적 일관체제를 배경으로 수급과 가격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Penrose(1968)는 석유메이저들이 수출 및 재고 조절 등을 통해 자신들의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가격을 통제할 수 있었던 것으로 평가하였다. 이 시기 국제유가는 석유메이저들이 결정하고 발표하는 공시가격(Posted Price)에 의해 결정되었다. 산유국들에게 지급하는 사용료 및 세금을 계산하는 기준에도 공시가격이 활용되었다. 공시가격은 시장에서 형성되는 가격이 아니었기 때문에 수급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였고 투명성도 결여되었으나 현물시장이 미비한 탓에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석유메이저들은 과점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공시가격 체제를 선호하였다.
1950년대 후반 이후에는 독립계 석유기업들(Independent Oil Companies)이 등장하면서 석유메이저들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다. 독립계 기업들은 베네수엘라, 리비아, 이란 등에서 상류부문에 대한 투자와 생산을 확대하였다. Parra(2004)는 1965년까지 베네수엘라 생산의 15%를 독립계가 담당했으며, 리비아에서 독립계의 생산은 1965년 59만b/d에서 1968년 110만b/d로 두 배 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평가했다. 같은 시기 러시아의 증산도 석유메이저들에게는 위협이 되었다. 독립계의 약진에도 불구하고 전체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아 석유메이저들의 지배력은 흔들리지 않았지만, 새로운 경쟁자의 등장은 1959년과 1960년 공시가격 인하의 계기가 되었다. 때마침 미국이 의무석유수입쿼터(Mandatory Import Quota)를 시행하면서 수입을 규제함에 따라 유가 하락 압력이 더욱 커졌다.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1960년 9월에 결성되었다. OPEC은 현재 2015년 12월 재가입한 인도네시아를 포함해 13개국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초기에는 이란, 이라크, 쿠웨이트, 사우디, 베네수엘라 등 5개국으로 시작하였다. 설립 당시 OPEC은 석유메이저들의 가격 인하 공세에 대응하기 위한 무역연합의 성격이었으나, 세계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고 세계 석유시장이 판매자시장(seller's market)으로 전환됨에 따라 OPEC은 석유메이저를 제치고 새로운 강자로 부상하였다. 1970년 리비아와 독립계 회사인 Occidental 간의 계약은 국제석유시장의 패권이 OPEC으로 넘어가는 전환점이 되었다. 리비아와 Occidental은 인상된 공시가격을 기준으로 세금을 계산하고 과거 손실분을 소급하여 지급하기로 계약을 체결하였는데, 곧이어 리비아에서 활동하던 모든 석유기업들은 동일한 조건을 받아들였고, 다른 중동 산유국들도 리비아 사례를 참고로 석유기업들에게 비슷한 계약조건을 제시하였다.
영향력 약화와 더불어 OPEC의 내부분열도 표면화되었다. 목표 생산량을 할당하여 유가 하락에 대응하려던 시도는 대부분의 회원국들이 이를 준수하지 않아 무산되었고, 단지 사우디만이 생산량 조절자(swing producer)로서 감산에 나섰다. 사우디는 회원국들이 아라비안라이트 가격 대비 할인경쟁을 이어가면서 자국의 시장점유율이 감소하는 것에 대해서도 불만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이에 사우디는 1986년 시장점유율 회복을 위해 구매자에게 일정 수익률을 보장해 주는 네트백 시스템(netback pricing system)을 도입하였고 다른 회원국들도 곧 이 시스템을 받아들였다. 네트백 시스템 도입으로 석유제품 공급이 확대된 상황에서 사우디는 생산량 조절자로서의 역할을 포기하고 증산에 나섰고, 이에 따라 국제유가는 폭락세로 접어들었다. 사우디 아라비안라이트 가격은 1985년 12월 $28/배럴에서 1986년 7월 $8.6/배럴까지 하락하였고, 걸프전이 발발했던 1990년을 제외하고는 2000년 초까지 $10~20/배럴의 저유가가 장기간 이어졌다. 유가 급락은 다른 한편으로 시장과 연계된 가격결정 체제가 출현하는 계기가 되었다.
1978년 12월 OPEC의 일방적인 14.5% 유가 인상 발표, 1979년 이란의 이슬람 혁명과 원유수출 중단 선언, 1980년 이란-이라크 전쟁 등 일련의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는 2차 석유위기를 촉발하였다. 사우디의 아라비안라이트 가격은 1979년 초 $14/배럴에서 그 해 12월 $26/배럴로 상승했고 1980년 4월에는 $30/배럴을 넘어서는 초강세를 나타냈다. $30/배럴대의 유가는 1983년 상반기까지 이어졌다. 그런데 2차 석유위기는 역설적으로 OPEC의 세력 약화와 관리가격 체제의 붕괴를 초래하였다. 유가 급등으로 세계 경기가 침체 국면에 빠지고 원유수요가 급감하였으며, 북해 등 비OPEC의 생산 증가와 대체에너지 개발을 위한 각국의 노력 등으로 OPEC 원유에 대한 의존도(call on OPEC)가 줄어들었다. 특히 비OPEC의 생산 증가는 공급자의 증가와 다양화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었으며, 가격도 시장의 수급 상황을 반영하여 결정되기 시작하였다.
글로벌 원유거래에서 미국 달러화만이 결제통화로 사용된다. 서방의 경제제재 하에 있던 이란이 유로화로 결제한 적이 있고 러시아 베네수엘라 등 미국의 적대 국가들이 유로화 등 달러화 이외 통화 거래에 관심을 보인 경우는 있었지만, 미국 달러화가 거의 모든 원유거래에 있어서 결제통화로서 역할을 수행하여 왔다. 미국 달러화 결제 시스템의 연원은 197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미국의 닉슨 대통령은 사우디에 원유 결제통화로 달러화만 사용하고 원유수익을 미국 국채에 투자할 것으로 요구하는 대신, 소련 이란 이라크 등으로부터 사우디의 안보를 보장해 주겠다고 제안하였다. 사우디는 이 제안을 받아들였고, 1975년부터는 모든 OPEC 회원국들이 달러화로만 원유를 결제하였다. 이에 따라 원유거래 통화로서 달러화, 즉 페트로달러(Petrodollar) 체제가 공고히 자리 잡게 되었다.
페트로달러 시스템은 미국에게 많은 경제적 이득을 가져다주었다. 전 세계 모든 국가들은 원유를 사기 위해서 달러화를 매입해야 했고, 이는 브레튼우즈 체제 붕괴 이후 하락하던 달러화 가치를 높여주고 기축통화로서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달러화가 금 본위제(gold standard)에서 원유 본위제(crude oil standard)로 바뀐 것이다. 산유국들이 원유수출로 벌어들인 달러화를 미국 국채 등 달러화 자산에 재투자함에 따라 경상수지 적자로 빠져나간 달러화가 결국 미국으로 회수되는 페트로달러 리사이클링(Petrodollar recycling) 시스템도 형성되었다. 또한 결제통화로서의 수요 증가와 이에 따른 달러강세로 미국은 수입물가와 국내 인플레이션 압력을 낮게 유지할 수 있었고 저물가는 소비자들에게 실질적으로 보조금을 지불하는 역할을 하였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1970년대 초 국제 석유시장에서 석유메이저들이 가격을 통제할 수 있었던 배경과 당시 가격 결정 방식의 특징은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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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과제 해석
task_interpretation1970년대 초 석유메이저의 가격 통제 배경과 당시 가격 결정 체제의 특징을 파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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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정보 추출
information_extraction석유메이저의 구조적 특징과 가격 결정 방식에 관한 정보를 추출한다.
- 석유메이저들은 탐사·개발·생산·수송·정제·판매 등 수직적 일관체제를 배경으로 수급과 가격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 이 시기 국제유가는 석유메이저들이 결정하고 발표하는 공시가격(Posted Price)에 의해 결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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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근거 선택
evidence_selection가격 통제의 원인인 수직적 일관체제와 가격 결정 방식인 공시가격에 관한 문구를 선택한다.
- 석유메이저들은 탐사·개발·생산·수송·정제·판매 등 수직적 일관체제를 배경으로 수급과 가격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 이 시기 국제유가는 석유메이저들이 결정하고 발표하는 공시가격(Posted Price)에 의해 결정되었다.
- 공시가격은 시장에서 형성되는 가격이 아니었기 때문에 수급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였고 투명성도 결여되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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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논리 통합
logical_integration수직적 일관체제를 통해 수급과 가격에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시장 가격이 아닌 메이저가 결정하는 공시가격 체제를 사용했음을 결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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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결론 도출
conclusion_formulation석유메이저들은 수직적 일관체제를 바탕으로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공시가격 체제를 통해 가격을 결정했으나 이는 수급 반영과 투명성이 부족했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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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답변 생성
answer_generation추론된 내용을 바탕으로 최종 답변을 작성한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석유메이저들은 탐사, 개발, 생산, 수송, 정제, 판매를 아우르는 수직적 일관체제를 구축하여 수급과 가격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당시 가격은 석유메이저들이 결정하고 발표하는 공시가격(Posted Price)에 의해 결정되었는데, 이는 시장에서 형성되는 가격이 아니었기에 수급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투명성도 결여되어 있었다.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석유메이저가 수직적 일관체제를 통해 시장 지배력을 가졌음을 확인하고, 시장 원리가 아닌 공시가격 체제로 유가가 결정되었던 당시의 특징을 결합하여 답변을 구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