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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수교 이후 비약적인 발전과 성과에도 불구하고, 변화하는 전략적 환경 속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갈등 요인을 극복하기 위한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외교적 지향점 모색 doc_id PCY_201612300331161281_4

주제 (main_topic)
한중 수교 이후 비약적인 발전과 성과에도 불구하고, 변화하는 전략적 환경 속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갈등 요인을 극복하기 위한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외교적 지향점 모색
답변 불가 (is_impossible)
False
문맥 (context)
1989년 천안문 사건에도 불구하고 중국에 대한 포용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한 미국 행정부의 전략적 결정, 천안문사태로 사회주의권의 대붕괴라는 세기적 위기에 직면하고도 개혁개방정책을 더욱 확대 추진한 덩샤오핑(鄧小平)의 역사적 결단, 그리고 베이징과 모스크바를 통해 평양으로 가려고 한 한국의 북방정책과 대북정책이 결국 1992년 한국과 중국의 국교정상화를 성사시켰고, 또 그 이후 양국의 비약적 교류 협력과 관계 발전을 실현할 수 있게 했다. 이처럼 탈냉전과 세계화시대가 제공하는 전략적 기회는 앞으로도 한국과 중국의 상호 협력관계의 확대 심화 발전에 필요한 조건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러나 부강한 중국의 등장과 더불어 아시아에서는 이른바 강대국 간 세력전이(power shift)의 상황이 조성되고 있고, 이와 같은 전략 환경의 변화는 아시아와 한반도 주변에서 미국과 중국의 복잡한 협력과 경쟁, 견제와 갈등을 촉발시키고 있다. 따라서 한중관계도 과거 20년과 같은 방식으로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없게 되었다. 이미 잘 알려진 바와 같이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한중관계는 그야말로 폭발적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특히, 경제적-사회 문화적 차원에서 한중 교류와 협력은 그야말로 놀랄만한 것이었다. 양국 교역 규모는 2010년 말에는 수교 당시보다 무려 33배가 증가된 2,072억 달러를 기록하였으며, 2010년 현재 양국 간 인적 교류는 약 600만 명에 달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은 우리에게 있어서 미국이나 일본보다 경제적으로 더 많은 교역을 하고 있는 제1의 교역 대상국, 제1의 투자 대상국이 되었다. 또 중국은 우리 국민들이 가장 많이 방문하는 국가가 되었으며, 가장 많은 한국 학생들이 유학하고 있는 국가이기도 하다. 이처럼 한중 양국관계는 경제-통상-인적 교류 영역에서 괄목할 만한 속도로 확대 발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정치-외교-군사적 차원의 교류도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한중 수교 이후 양국 정상들은 2012년 1월에 이명박 대통령이 베이징을 방문해 후진타오(胡錦濤) 주석과 제30차 한중 정상회담을 개최하기까지 매년 1.5회 꼴로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여기에 총리급의 고위회담이 2011년 11월 현재까지 28회 개최되었으므로 양국의 최고 지도자들은 연평균 3회 이상, 정규적으로 만나 현안문제를 협의하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수교 이후 한중관계는 모든 분야에서 놀라운 속도로 확대 발전하게 되면서 양국 관계의 성격도 격상되었다. 1992년 수교 당시 한중관계는 ‘우호협력관계’라고 정의되었지만, 김대중 정부시대에는 ‘협력 동반자 관계’로, 그리고 노무현 정부시대에는 ‘전면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확대 발전되었다. 그리고 2008년 이명박 대통령과 후진타오 주석의 한중정상회담에서는 한중관계를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격상 발전시켜 가기로 합의하였다. 당시 양국 정상들은 한중 수교 이후 양국관계 발전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앞으로 ‘양측은 외교・안보 분야에서 대화와 협력을 증진시켜 나갈 필요가 있으며, 한반도 및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실현하기 위해 긴밀한 한중 간의 전략적 협력이 필요하다는 점에 합의’하였다. 양국 정상은 한중관계가 단순한 경제적 이익과 문화적 동질성에 바탕을 둔 ‘전면적 협력 관계’의 차원을 넘어서 한반도와 동아시아 안보와 평화, 공동 번영과 관련된 전략적 협력을 모색하는 단계로 발전해야 한다는 방향을 제시하였다. 이와 같이 양국 정부의 최고위급 인사 교류가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양국 간 의회와 법원, 그리고 정당 및 사회단체 간의 교류 협력도 확대 발전하고 있다. 특히, 한동안 조심스럽게 접근했던 안보-국방 분야에서의 한중 교류도 점차로 확대되고 있는 추세이다. 1999년 8월, 한국의 조성태 국방장관이 중국을 공식 방문하고, 2000년 1월에 츠하오톈(遲浩田) 중국 국방부장의 답방이 실현된 이후 양국 국방 분야의 고위급 인사들의 상호 교류도 확대 실시되고 있다. 2011년 7월에 열린 김관진 한국 국방장관과 량광례(梁光烈) 중국 국방부장의 제8차 한・중 국방장관회담에서는 고위급 국방전략대화를 신설・정규화하고, 한반도의 역내 안정과 평화를 해치는 어떠한 (도발)행위에도 반대한다는 공동 입장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탈냉전과 세계화시대가 제공하는 역사적 기회를 활용해 국익을 극대화한다는 전략적 공감대에서 한국과 중국의 상호 협력관계는 모든 분야에서 폭발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지만, 한중관계 발전과정이 언제나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한중관계의 비약적 발전상에 가려 그동안 큰 주목을 받지 않았지만, 수교 이후 여러 이슈 영역에서 다양한 문제점과 모순, 갈등, 분쟁 요인들이 표출되고 있다. 2000년도의 마늘 파동에서부터 2003년의 동북공정으로 촉발된 역사 분쟁, 2010년도 천안함-연평도 사건을 둘러싼 한중 간의 심각한 이견과 갈등, 그리고 현재 진행 중인 탈북자 문제와 이어도문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슈 영역에서 한중 간의 마찰과 충돌,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한 국내 연구보고서는 한중 간 마찰과 갈등을 촉발시키는 일곱 가지 장애물이 있다고 정리하였다. 즉, 한국과 중국 사이에는 역사와 문화에서의 반목, 경제와 통상에서의 마찰, 규범과 가치관에서의 충돌, 북한과 북핵 문제를 바라보는 격차, 한미동맹을 둘러싼 갈등, 영토와 영해의 분규, 남북한 통일에 대한 이견 등 7가지 이슈영역에서 갈등과 긴장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다양한 갈등과 딜레마에는 경제 통상 문제와 같이 이익의 마찰과 충돌이란 성격을 띤 이슈들도 있고, 이념과 국민정서의 갈등도 있으며, 한미동맹이나 북한 문제 등과 같이 전략적 이익의 차이에서 발생되는 갈등도 있다. 즉, 이익마찰, 이념과 정서 갈등, 전략적 관점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분쟁과 갈등으로 대별할 수 있다. 이 가운데에서 양국의 실리적 이익이 가장 많이 걸려 있는 경제 협력 분야에서의 이익 갈등이 증가하고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양국의 경제관계가 확대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이익 마찰이 더욱 증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중국 경제가 한국 경제의 가장 중요한 대외변수로 등장하면서, 특히, 금융위기 후 한국과 중국의 이른바 경기 동조화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나면서 경제적 측면에서 중국 경제에 대한 지나친 의존도를 경계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리고 끝으로 20세기 당시와 마찬가지로 21세기에도 공포의 균형 효과가 여전히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이나 중국, 기타 강대국들이 파국적 대결보다는 실리적 차원에서 윈-윈 방식의 상호 협력과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이와 같은 탈냉전과 세계화-다원화 시대라는 21세기적 배경에서 강대국 간 관계, 특히, 미국과 중국의 관계도 기본적으로 대결과 갈등보다는 상호경쟁과 상호 협력을 중시하고 있으며, 이런 긍정적이고 협력적인 국제사회의 분위기에 힘입어, 한중 수교가 실현될 수 있었고, 또한 한중관계의 폭발적 발전도 현실화될 수 있었다. 이런 점에서 미국과 중국, 그리고 한국 등 주요 당사국의 국내 정치적 여건 변화와 실용주의적 지도부의 등장이 탈냉전과 세계화시대의 아시아에서 미국과 중국, 중국과 한국, 그리고 남북한의 협력관계가 발전할 수 있는 긍정적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먼저 지금까지 한국과 중국 관계를 뒷받침해 온 구동존이(求同存異)의 논리에서 한걸음 더 전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즉, 체제와 가치관의 차이, 전략적 핵심이익의 차이는 그대로 두고 실용적 이익을 확대해 가는 구동존이의 협력관계 발전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세력전이시대와 같이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요소가 많은 시기에는 오히려 핵심적 이익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밝히고, 상호간의 차이점을 인정하는 바탕에서 상호 협력과 상호 이익을 모색하는 이른바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외교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뿐만 아니라 미국에 대해서도 서로 다른 점을 분명히 하면서도 공동이익을 찾는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둘째, 화이부동의 외교를 추진하려면 먼저 상대방의 핵심 이익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전제에서 상호 공동 이익을 모색해야 한다. 즉, 한국은 북중 특수관계를, 그리고 중국은 한미 특수관계를 인정하는 바탕에서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 그리고 공동발전이란 포괄적 공동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한국-북한-미국-중국의 상호 협의와 협력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한중 관계의 발전 과정에서 나타난 관계 성격의 변화를 수교 당시부터 이명박 정부 시기까지 순서대로 기술하시오.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한중 관계의 성격이 시대별로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문맥에서 찾아 순차적으로 정리해야 한다.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문맥에서 각 정부 시기별로 정의된 한중 관계의 명칭을 추출한다.

    • 1992년 수교 당시 한중관계는 ‘우호협력관계’라고 정의되었지만
    • 김대중 정부시대에는 ‘협력 동반자 관계’로
    • 노무현 정부시대에는 ‘전면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확대 발전되었다.
    • 2008년 이명박 대통령과 후진타오 주석의 한중정상회담에서는 한중관계를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격상 발전시켜 가기로 합의하였다.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수교 시점,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 이명박 정부의 관계 정의를 모두 선택한다.

    • ‘우호협력관계’
    • ‘협력 동반자 관계’
    • ‘전면적 협력 동반자 관계’
    •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추출된 정보를 시간적 흐름에 따라 나열하여 관계의 격상 과정을 구성한다.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1992년 우호협력관계에서 시작하여 김대중 정부의 협력 동반자 관계, 노무현 정부의 전면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거쳐 이명박 정부의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발전했음을 정리한다.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질문에 부합하도록 리스트 형식으로 최종 답변을 작성한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1. 1992년 수교 당시: 우호협력관계 2. 김대중 정부 시대: 협력 동반자 관계 3. 노무현 정부 시대: 전면적 협력 동반자 관계 4. 이명박 정부 시기(2008년 합의):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문맥에 명시된 각 정부별 한중 관계 정의를 시간 순서에 따라 추출하여 관계의 격상 과정을 정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