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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통일 달성을 위한 아데나워의 '힘의 정책'과 브란트의 '접근을 통한 변화정책'의 상호작용 및 그 과정과 시사점 doc_id PCY_201702060545422181_1

주제 (main_topic)
독일의 통일 달성을 위한 아데나워의 '힘의 정책'과 브란트의 '접근을 통한 변화정책'의 상호작용 및 그 과정과 시사점
답변 불가 (is_impossible)
False
문맥 (context)
독일은 어떻게 통일을 달성했는가? 아데나워는 “힘의 정책”을 통해 통일하고자 하였다. 동독의 후견국인 소련과의 협력을 증진하여 소련으로 하여금 동독의 포기를 감수할 수 있는 만큼 서독과의 협력 이득을 느낄 수 있게 하려고 노력하였다. 브란트는 “접근을 통한 변화정책”을 통해 동독에게 경제적 지원을 하는 대가로 동독을 변화시키려고 하였다. 독일통일은 아데나워와 브란트의 노력이 함께 맞아 떨어진 시점에 이루어졌다. 1989년이 되었을 때, 접근을 통한 변화정책은 그동안 동독을 내부적으로 변화시켰고, 소련의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자신의 개혁정치에 필요한 서독의 대규모 지원을 받기 위하여 동독을 포기하였다. 독일의 이러한 통일방식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이 글은 독일이 어떠한 접근방법으로 통일을 달성하고자 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아데나워는 소련에 대하여 어떠한 정책을 취했으며, 브란트는 동독에 대하여 어떠한 정책을 취했는지 알아보고, 이러한 정책노선이 분단기간 동안 어떻게 실천되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독일의 통일방식을 한반도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를 검토할 것이다. 북한의 인권탄압은 ʻ인류 양심에 대한 심각한 도전ʼ입니다. 다행히 이번 유엔총회에서는 에볼라, 테러 대응 문제와 함께 북한인권이 가장 큰 화두가 되고 미국이 주도하는 ʻ북한인권 장관급 회의ʼ가 열릴 정도로 국제사회의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전 세계가 이처럼 북한 인권 현실을 우려하고 그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조건에서 정작 한민족인 우리는 헌법상 같은 국민인 북한 주민의 참혹한 인권 현실에 대해 어떤 모습을 보여 왔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올해는 독일 통일의 출발점이 된 동독 평화혁명 25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독일 통일은 당시 소련을 포함한 동유럽의 개혁 및 민주화 열풍과 동독의 정치·경제적 후진성이라는 배경이 있었지만 근본 동력은 동독 주민들의 자유와 번영을 위한 용기 있는 행동에서 비롯됐다고 저는 믿습니다. 독일 브란트 총리를 비롯해 많은 독일 정치인들이 과거 한국을 방문해 ʻ독일보다 한국의 통일 빠를 것ʼ이라고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현재 독일은 통일된 지 24년째이지만 우리는 여전히 분단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2014년 11월 독일은 베를린장벽 붕괴 25주년을 기념한다. 2015년 10월에는 통일 25주년을 기념할 것이다. 그러나 남북한은 여전히 분단된 상태이며, 대립과 갈등의 기본구조가 바꾸지 않았다. 독일의 통일은 1972년 12월 동서독 기본조약이 체결된 이후 20년만의 일이다. 남북한은 1992년 2월 남북기본합의서를 발효시킨바 있다. 동서독 기본조약은 전문과 10개의 조항, 그리고 경계선 문제(제3조)와 관련한 위원회 구성과 교류협력 문제(제7조)와 관련한 추가사항을 담은 추가의정서로 구성되어 있다. 남북기본합의서는 전문과 화해, 불가침, 교류·협력, 그리고 수정 및 발효에 관한 조항 등 25개의 조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동서독 기본조약보다 남북기본합의서의 내용이 더 자세하다. 남북한은 남북기본합의서의 화해, 불가침, 교류·협력 분야의 이행·준수를 위한 각각의 부속합의서를 1992년 9월에 발효시켰다. 초대 수상인 아데나워는 독일 통일을 달성하기 위한 방안으로서 “힘의 정치”를 추구하였는데, 여기서 힘이란 군사력이 아니라 경제력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기민당은 먼저 유럽통합을 추진하여 서독의 전후 경제력을 회복하고 강화한 다음, 그 힘으로 통일을 이룩하겠다는 구상을 제시하였다. 아데나워는 동독을 소련의 위성 국가로 보았고, 독일의 통일은 동독의 후견국인 소련의 양보를 통해서만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서독은 경제적 우월성과 영향력으로 소련을 서독 편으로 끌어들여야 한다고 보았다. 그렇게 되면 소련으로서는 서독과의 관계악화를 불사하면서 동독을 수호하는 것보다 동독을 포기하는 것이 이득이 된다는 입장에서 분단문제를 처리하는 결정을 내리게 될 때가 올 것이라고 보았다. 아데나워의 “힘의 정치”는 당시 서독국민들이 요구하였던 두 개의 정반대 요구를 동시에 수용하려고 고민한 결과 나온 정책이었다. 분단직후 서독국민은 유럽 편입을 주장하는 세력과 동독과의 통일을 주장하는 세력으로 양분되었다. 이러한 딜레마를 해결하는 방법으로서 아데나워는 국민의 두 가지 요구에 우선순위를 부여하여 선 유럽 편입, 후 독일통일이라는 정책을 추진한 것이다. 서독은 1955년에 소련과 국교를 정상화하고 경제적 협력관계를 수립하였다. 이것은 동독과 수교한 나라와는 외교관계를 갖지 않겠다는 “할슈타인 독트린”을 소련에게는 예외로 한 것이다. 서독이 할슈타인 독트린을 선언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동독의 종주국인 소련과는 외교관계를 수립한 것은 동독을 고립시키면서 동독의 후견국과는 긴밀한 협력관계를 맺는다는 아데나워의 “힘의 정치” 구상을 따른 것이다. 전후 동서냉전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소련은 서독이 미국 및 서유럽과 긴밀한 관계를 강화하는 것을 우려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전후 10년이 된 1955년 9월 소련 공산당 서기장 후르시초프는 아데나워 수상을 모스크바로 초청하여 독일군 전쟁포로 송환 문제와 외교관계 정상화에 관하여 논의할 것을 제의하였다. 이에 따라 아데나워 수상은 대규모 사절단을 이끌고 소련을 방문하였고, 정상회담 다음 달인 10월에 600명을 시작으로 독일군 포로들이 단계적으로 귀환하였으며, 양국 간에 대사관이 개설되었다. 동독 지도부는 서독이 독일을 대표하는 유일한 정부임을 주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소련이 서독과 대화 협력을 하는 것에 대하여 우려와 불만을 나타내었다. 아데나워는 냉전이 그리 아주 오래 지속되지 않을 것으로 보았고, 또한 소련은 사회주의 체제의 결함 때문에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되어 동구 사회주의 진영의 지배를 언젠가는 포기할 것으로 전망하고, “힘의 정치”에 큰 기대를 하였다. 특히 1953년 동독 노동자 항거는 아데나워를 매우 고무시킨 사건이었다. 동방정책은 사민당의 정치가 에곤 바에 의해 설계되었다. 그는 그 유명한 1963년 투칭(Tutzing)에서의 연설에서 “접근을 통한 변화”를 주장하며 동독과의 화해 협력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브란트 또한 베를린 시장 시절 동방정책의 정신 하에 동독 정부와 통행협정을 체결하여 동서 베를린간의 통행을 크게 개선한 바 있다. 아데나워의 “힘의 정책”이 소련과의 협력을 추구하였다면, “접근을 통한 변화정책”은 동독을 협력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독일과 소련간의 협력이 새로운 발전단계로 접어들게 된 것은 대규모 경협 사업이었다. 사실 1950년대 말에 서독의 철강기업은 소련이 필요로 하는 파이프라인 건설용강관을 공급하고자 하였으나, 미국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미국은 1962년에 나토 수출금지법(NATO Embargo)을 주도적으로 만들어 서독의 대소 교역이 크게 제한을 받았다. 1960년대 후반에 이르러 소련은 유전개발 과정에서 생산하게 된 천연가스의 판매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프랑스 그리고 서독 정부에게 제안하였고, 브란트는 이러한 민간경제 차원의 협력이 양국간 신뢰를 구축하는 밑거름이 될 것으로 보았다. 그리하여 1970년 루르가스(Ruhrgas)는 연간 300억 입방미터의 가스를 향후 20년간 수입하기로 장기도입 계약을 체결하였다. 이와 동시에 독일의 철강기업이 2,000 킬로미터에 달하는 가스관을 소련에 대응수출하기로 계약하였다.7) 당시 소련의 체코 침공으로 동 서간의 대립이 악화된 상황이었지만 서독은 가스를 통해 동서대립이 완화될 것으로 기대하였고, 에너지 외교는 소련과의 정치적 협력관계를 지지하고 때로는 선도하였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아데나워의 '힘의 정치'와 브란트의 '접근을 통한 변화정책'은 각각 무엇을 주요 협력 및 변화의 대상으로 삼았는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아데나워와 브란트가 추진한 두 가지 서로 다른 정책의 핵심 대상이 무엇인지 비교하여 파악한다.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아데나워의 정책 내용과 브란트의 정책 내용을 문맥에서 추출한다.

    • 아데나워는 “힘의 정책”을 통해 통일하고자 하였다.
    • 브란트는 “접근을 통한 변화정책”을 통해 동독에게 경제적 지원을 하는 대가로 동독을 변화시키려고 하였다.
    • 아데나워의 “힘의 정책”이 소련과의 협력을 추구하였다면, “접근을 통한 변화정책”은 동독을 협력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두 정책의 대상을 명확히 구분해주는 문장을 선택한다.

    • 아데나워의 “힘의 정책”이 소련과의 협력을 추구하였다면, “접근을 통한 변화정책”은 동독을 협력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아데나워의 정책은 소련의 양보를 이끌어내기 위해 소련과의 협력을 중시했고, 브란트의 정책은 동독을 변화시키기 위해 동독을 대상으로 삼았음을 결합한다.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아데나워는 소련을, 브란트는 동독을 각각의 주요 대상으로 삼았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질문에 대해 간결한 서술형으로 답을 작성한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아데나워의 '힘의 정치'는 소련과의 협력을 추구하여 소련의 양보를 이끌어내는 것을 목표로 삼았으며, 브란트의 '접근을 통한 변화정책'은 동독을 협력의 대상으로 삼아 경제적 지원을 통해 동독을 변화시키고자 하였다.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아데나워의 정책은 동독의 후견국인 소련을 대상으로 협력을 추진한 것이고, 브란트의 정책은 동독 자체를 변화의 대상으로 삼았음을 비교하여 도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