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맥 (context)
1980년대 전반기에 이루어진 재정정책을 살펴 본 선행연구로는 조동철⋅강영욱(2013)이 있고, 당시의 재정정책 추진과정을 소개한 저서로는 육성으로 듣는 경제기적 편찬위원회(2014)에서 출간한 도전과 비상: 코리안 미러클 2이 있다. 하지만 조동철⋅강영욱(2012)의 연구는 1980년대 한국의 안정화 정책을 개략적으로 살펴볼 뿐, 1980년대 전반기 긴축재정 정책에 대한 구체적 설명과 세출 측면의 다양한 노력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편이어서 심도 있는 내용을 파악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그리고 코리언 미러클 2(2014)의 경우 인터뷰를 통해 경제 원로들의 중요한 증언을 채록했으나 단편적인 에피소드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어 1980년대 전반기 긴축재정 정책의 전모와 구체적인 내용을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다. 따라서 본 연구는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공식 문헌, 언론기사, 통계자료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하되, 특히 1980년도 전반기 재정정책 분야에서 이루어진 중앙정부 차원의 노력을 집중적으로 조명해 제시할 것이다.
이 연구는 특히 1980년대 전반기에 한국이 긴축재정 정책을 성공적으로 추진했던 사례에 주목하여, 재정 분야의 관련 시책들을 면밀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특히 당시 대중(국민)에게는 그다지 인기가 없었다고 할 수 있는 긴축재정 정책이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을 분석했다. 우선, 1980년대 전반기 우리나라가 긴축재정 정책을 성공적으로 추진할 수 있었던 이면에는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까지 경제기획원과 한국개발연구원 등을 중심으로 수립⋅추진한 경제안정화 시책이 그 기저를 이루고 있었다. 즉, 안정화 시책이 어느 정도 실효를 거둠에 따라 긴축재정정책을 실행해 나갈 수 있는 추동력이 생길 수 있었다. 우리나라는 이러한 긴축재정 정책의 성공적 운용을 바탕으로, 이후 재정건전성을 유지시켜나가는 전통을 확립함으로써, 한국경제가 ‘안정 속에 성장’을 달성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경제기획원은 1981년 5월부터 전두환 대통령에게 ‘경제사회발전 계획, 수출지원 축소, 수입 자유화 확대, 정책금융 축소, 실질 금리 보장, 과감한 재정 개혁, 중화학공업 지원 재검토, 이중곡가제 폐지’ 등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특별보고를 실시하고, 이를 통해 1980년대 전반기 경제정책의 흐름을 바꾸는 큰 전기를 마련했다. 대통령과 경제기획원이 재정 개혁의 필요성을 공감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경제기획원은 대통령에게 ‘국가예산개혁추진방안’을 보고하고, 영점기준예산 방식에 따라 1982년도 예산을 재점검해 낭비요인을 줄이고자 했다. 이어 1983년도와 1984년도 예산편성 시에도 낭비요인을 크게 줄일 수 있었다. 한편, 행정부와 입법부의 합리적 역할분담과 원활한 당정 관계가 1980년대 전반기 긴축재정 정책을 추진하는 데 큰 힘이 되었다. 당시 집권 여당은 안정적인 의석수를 확보하고 있었지만, 야당의 협조를 구하기 위한 노력도 적극 추진했다.
1980년대 전반기 예산개혁작업을 계기로 그동안 사실상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간주된 국방예산에 대한 대규모 조정이 이루어졌다. 제2차 율곡사업(1982~86년)은 제1차 율곡사업(1974~81년) 추진 시 적용한 목표지향형의 고정 계획으로부터 시행 중 발생하는 제반 변화요인을 반영하는 연동계획으로 변경했다. 1982~84년 국방비 지출을 운영 유지와 방위력 개선 부문으로 대별해 살펴보면 방위력 개선 예산비중이 크게 증가했고 운영유지 예산비중은 크게 감소했다. 1981년을 계기로 국방비가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5%에서 1988년 3.9%까지 점점 줄어들었다. 정부재정 대비 국방비는 1984년에 최초로 30% 이하인 29.6%가 되었다. 1983년과 1984년에는 전년 대비 국방비 증가율이 각각 4.9%와 1.0%에 불과했다.
예산동결의 두 번째 배경은 외채의 증가를 억제하자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이채는 지불 능력 면에서 문제가 없으나 최근 3~4년간의 경상수지 적자폭의 확대로 1982년 말 현재 372억달러 규모로 늘어남으로써 세계 제4위의 채무국이 되어 있는 실정이다. 국제수지의 균형은 수출증대 및 수입절감으로 이룩되는 것이며 수입절약은 경제운용 전반에 걸친 자제와 절약으로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향후 외채증가를 억제하기 위하 여는 에너지 절약을 비롯한 산업구조조정과 기술개발 국민소비 생활의 건전화가 이룩되어야 하며 재정적자의 축소도 중요한 관건이 된다. 재정지출을 억제하고 재정적자를 축소하게 되면 가계저축을 민간투자 재원으로 전환 활용케 되어 국내 투자재원의 부족을 해소해 줌으로써 외채 수요를 감소시키는 효과를 가져온다. 또한 정부 스스로도 내자 부족의 충당을 위한 공공차관도입 소요를 축소할 수 있고 공기업 부문에서의 외자의존도도 개선할 수 있는 여력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예산안 편성작업은 8월이 고비이다. 예산안은 각 부처에서 넘어온 내년도 사업계획을 취합, 세출규모 동결 및 건국 이래 최초의 흑자예산 편성이라는 기본방향에 맞춰 투자우선순위를 조정하는 작업을 한창 진행하고 있다. 특히 내년도 예산편성작업은 동결을 목표로 하고 있어 더욱 어렵다. 복중에도 휴가를 잊은 채 각 부처의 예산 깎기에 여념이 없다. 각종 서류철을 펴놓고 계산기를 두드리고 주판알을 튕기느라 여념이 없는 사무실에 찾아드는 외부인사들은 하루 1백명에서 많을 때는 2백명까지 이른다. 방문객들은 각 부처 예산담당관들이 대부분. 장관이나 차관이 담당국장들에게 알아서 예산을 확보토록 엄명을 내린 일부 부처에서는 국장급들이 거의 매일 출근 상주하는 경우도 눈에 띄고 있다. 이들은 자기 부처 담당 과장 또는 국장을 붙잡고 내년도 사업계획의 정당성과 합리성을 설득, 예산을 삭감치 말아줄 것을 통사정하는 모습도 보인다. 평소 상오 회의가 끝나면 하오 2시~6시까지 2차 회의가 열린다. 2년 전부터 예산개혁작업이 실시된 이후 예산을 집행 편성 획득하는 과정에서 공무원들의 자세가 획기적으로 개선됐다고 한다. 안정 기반 구축을 위한 절약 운동에 정부가 솔선수범 한다는 생각은 각 부처가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1983년 8월 31일 경제기획원은 당시 전두환 대통령에게 1984년도 예산안에 대한 중간보고를 했다. 이후 정부는 1983년 9월 14일 하오 집권 여당인 민정당과 민정당사에서 1984년도 예산안에 대한 당정협의회를 열고, 1984년도 세출예산은 1983년도 수준으로 동결하는 한편, 세입예산은 세율구조를 그대로 유지해 편성하고 경기의 활성화 등으로 세출을 초과하여 징수되는 흑자예산을 편성키로 합의했다. 이후 경제기획원은 1983년 9월 20일 대통령에게 1984년도 예산안을 최종 보고했다. 1984년도 예산안의 구체적인 내용을 가지고 언론의 보도 기사와 칼럼이 이어졌다. ‘정부 내년 예산안 올 수준 동결(동아일보, 1983. 8. 22)’, ‘인건비 등 억제 경제단체도 내년 예산 동결(동아일보, 1983. 9. 23)’, ‘유럽 각국 내년 긴축예산 편성(매일경제, 1983. 9. 28)’과 ‘유럽 각국 긴축예산 편성(매일경제, 1983. 9. 29)’이 대표적이다. 특히, 동국대 장원종 교수는 매일경제 칼럼(1983. 9. 22)을 통해 ‘세출구조의 과감한 개혁’을 정책당국에 주문했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1980년대 전반기 우리나라가 긴축재정 정책을 성공적으로 추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무엇이 있었는지 기술하시오.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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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과제 해석
task_interpretation1980년대 전반기 한국의 긴축재정 정책 성공 요인을 문맥에서 찾아 설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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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정보 추출
information_extraction긴축재정 정책의 성공과 관련된 경제적 배경 및 추진 동력을 추출한다.
- 1980년대 전반기 우리나라가 긴축재정 정책을 성공적으로 추진할 수 있었던 이면에는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까지 경제기획원과 한국개발연구원 등을 중심으로 수립⋅추진한 경제안정화 시책이 그 기저를 이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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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근거 선택
evidence_selection경제안정화 시책이 긴축재정 정책의 추진력으로 작용했음을 보여주는 문구를 선택한다.
- 안정화 시책이 어느 정도 실효를 거둠에 따라 긴축재정정책을 실행해 나갈 수 있는 추동력이 생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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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논리 통합
logical_integration1970년대 후반부터 추진된 경제안정화 시책이 실효를 거두면서 긴축재정 정책을 실행할 수 있는 동력이 마련되었다는 인과관계를 연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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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결론 도출
conclusion_formulation경제기획원과 한국개발연구원 등이 추진한 경제안정화 시책의 실효성이 긴축재정 정책의 성공적 추진을 가능하게 한 기저 요인임을 결론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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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답변 생성
answer_generation추출된 근거를 바탕으로 질문에 대한 답변을 작성한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1980년대 전반기 긴축재정 정책의 성공적 추진 이면에는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까지 경제기획원과 한국개발연구원 등을 중심으로 수립 및 추진한 경제안정화 시책이 기저를 이루고 있었다. 이러한 안정화 시책이 어느 정도 실효를 거둠에 따라 긴축재정 정책을 실행할 수 있는 추동력이 생길 수 있었다.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1980년대 전반기 긴축재정 정책의 성공 요인을 파악하기 위해 문맥 내 경제안정화 시책과 정책 추진력 간의 인과관계를 분석하여 답변을 도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