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맥 (context)
베블렌은 과거의 사회적 진화를 네 개의 넓은 단계로 구분했다. 최초의 단계는 신석기 시대 초까지 계속되었다. 베블렌은 이 기간을 ‘야만(savagery)’시대라고 불렀다. 이 시대에 대한 많은 다른 사람들의 가정과 반대로 베블렌은 그 시대가 “상당히 평화적이었다.”고 주장했다. 이 기간의 평화적 성격은 부모적 성향과 노동자 정신의 본능이 자유롭게 작용하도록 했다. 쓸데없는 호기심을 위한 여지가 거의 없었으므로 기술변화는 매우 완만했다. 완만한 기술변화라도 그것의 누적적 효과는 산업효율성의 향상이었다. 잉여는 자기중시 본능이 발휘되도록 했다. 잉여가 있으면 몇 사람들이 생산에 기여하지 않고 생존하는 것이 가능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약탈적 개인들은 잉여와 그것의 생산수단에 대한 지배를 얻으려고 한다. 베블렌은 두 개의 일차적 지배경로가 종교와 전투였다고 주장했다. 장기적으로 종래 평화로웠던 공동체가 ‘다소 습관적인 약탈적 착취의 태도’를 발전시킨다. 약탈적 습관은 소유제도가 발전하는 데 도움을 준다. 약탈적 문화에서 자기중시 본능이 전면으로 나오고, 더 많은 부가 축적된다. 전쟁노획물의 소유에 관한 관습이 발생한다.
역사의 설명에서 이 모든 것들은, 계급들의 경제적 이익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도록 우리에게 경고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한 계급의 성공은 그 계급의 이익이 아니고 그 계급이 기여할 수 있는 여러 다른 이익들의 범위와 다양성에 의하여 결정된다. 경제사학자들은 산업혁명 후 공장제도를 자본가의 노동자 착취를 통한 대중의 빈곤화의 원인으로 간주한 것이 사실을 호도한 것이라고 밝혔다. 의심할 바 없이 경제적 개선이 있었는데 어떻게 사회적 참사가 있을 수 있는가? 실제로, 사회적 참사는 일차적으로 수치로 측정될 수 있는 경제적 현상이 아니라 문화적 현상이다. 사회적 계급은 동일한 지역에 거주하는 사회의 일부를 형성하지만, 문화접촉은 통상적으로 상이한 지역에 정착한 사회들 간에 발생한다. 두 경우에 접촉은 약한 측을 황폐화하는 효과를 가질지 모른다.
하이에크(F. A. Hayek)는 자유를 ‘사회에서 한 인간에 대한 타인의 강제가 가능한 한 배제된 상태’라고 정의하였다. 이러한 개인적 자유의 관념은 개인주의와 밀접하게 연관된다. 개인주의는 확연하게 서구적인 관념으로 대부분의 다른 문명에서는 보편화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개인주의의 강세가 다른 변화요인과 함께 현대 유럽의 경제성장이라는 기적을 초래하였다. 이 기적이 서양에 부여한 물질적 번영을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 초래하려면 독특한 서양의 가치관도 이전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면 그렇게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가? 다시 말하면, 현대화(modernization)를 위해서 서양화가 필요한가? 하이에크는 시장경제가 개인주의에 입각한 ‘현대적’ 가치체계라는 형태의 문화적 기저를 필요로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나아가 문화진화가 공동체적 속박의식을 가진 석기시대문화로부터 법치와 공동체적⋅협동적 목적으로부터의 이탈과 같은 추상적 원칙에 관한 현대문화로 자연발생적으로 진화하여 왔다고 주장한다.
환경에 대한 특정한 문화의 관념을 물질적(material)인 것과 우주론적(cosmological)인 것으로 대별하는 것이 유용하다. 전자는 생계유지방법에 관한 것이며 물질적 세계 특히 경제에 대한 관념을 포함한다. 후자는 세계 안에서 인류가 갖는 위치의 이해에 관한 것으로서 인간이 자신의 목적⋅의미 및 타인과의 관계를 보는 시각을 결정한다. 여러 문화를 관찰하면, 물질관이 우주관보다 신축적이다. 우주관, 즉 플라톤의 표현을 빌리면,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관한 관념의 이력현상(hysteresis)이 더 크다. 더욱이 여러 문화를 횡단적으로 비교하면, 이러한 두 가지 세계관이 환경보다 언어집단(그리고 따라서 문화적 원천)과 좀 더 밀접한 상관관계를 갖는다. 물질관과 우주관은 각각 시장실패만이 아니라 정부실패를 설명하는 데 중요한 유형의 거래비용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두 가지 관념을 구별하는 것은 경제적 성과의 관점에서 중요하다.
서구의 발흥은 6세기 대교황 그레고리(Gregory) 1세부터 11세기 교황 그레고리 7세에 이르는 기간에 카톨릭 교회가 처음에는 가족문제 그리고 나중에는 경제적 관계에 대하여 조장한 개인주의를 매개로 하여 이루어졌다. 교회는 11세기 그레고리 7세의 교황혁명(papal revolution)의 결과로서 시장경제의 모든 법적⋅제도적 요건을 도입하였다. 두 번에 걸친 교황혁명은 원시교회 시대부터 교회의 특색이었던 유산(bequest)탐색이 초래한 의도되지 않았던 결과 때문에 발생하였다. 교회는 초기부터 특히 부유한 과부의 증여와 기부를 통하여 속세적 권력으로 성장해 왔다. 교회가 이 방법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하자 370년에 발렌티누스(Valentinus) 황제가 교황에 칙령을 발행하여 남성 성직자와 미혼 수도 승이 부녀자와 과부의 집 부근에서 배회하거나 부녀자의 가족과 혈족의 희생 위에 그 유산을 자신과 자신의 교회가 차지하려고 하는 비열한 행동을 금지하였다. 초기 교회가 처녀성을 예찬하고 재혼을 억제한 것이 교회에 유산을 주려는 독신녀의 수를 늘리는 데 도움이 되었었다.
이처럼 가족의 재산보유를 억제하고 재산의 양도를 촉진한 과정이 597년에 최초의 캔터베리(Canterbury) 대주교인 오거스틴(Augustine)이 자신의 새로운 혐의에 대하여 제기한 몇 가지 질문에 교황 그레고리 1세가 만든 답신에 의하여 가속되었다. 이 9개 질문 가운데 4개는 성과 결혼에 관한 것이었다. 그레고리의 답신은 가정 내부의 법적⋅관습적 행위에 관한 지중해와 중동지역의 전통을 뒤집는 것이었다. 전통적 제도는 가족재산을 상속하는 상속인의 선정에 관한 것이었다. 그것은 근친혼, 근친의 친인척이나 미망인과의 결혼, 양자, 이차적 결혼형태인 축첩을 허용하였었다. 놀랍게도 그레고리 1세는 이 네 가지 관행을 모두 금지하였다. 그 결과, 예컨대 영국에서는 입양이 19세기까지 허용되지 않았다. 성경이나 로마법이나 기독교를 신봉하는 지역의 기존관습에는 이러한 금지의 근거가 없었다.
인간사회의 초기 단계에서는 저 생산성 때문에 노동자 정신의 우월성이 생존을 위한 사회적 필요조건이 되었다. 재산은 사회적인 것이지 개인적인 것이 아니었다. 생산 효율성이 현저하게 상승하고 기술적 지식과 도구들이 사회적으로 축적된 다음에야 약탈적 착취가 가능하게 되었다. 사회의 상이한 구성원 간의 불공평한 구별도 그 시점에서만 가능하게 되었다. 생산성이 향상되면서 사람들은 폭력적 몰수와 약탈적 착취에 의해 생활할 수 있게 되었다. 달리 말하여, 사유재산이 존재하게 되었다. 사유재산의 발달과 함께 산업적 고용에 종사하는 사람들과 전쟁⋅정부⋅스포츠⋅종교의식 등의 비산업적 활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계급분할 사회가 불가피하게 발생했다. 사유재산과 약탈적 본능은 노예 시대와 봉건 시대의 약탈적이고 계급 분할적인 사회를 초래했다. 자본주의는 서유럽에서 봉건주의로부터 생성된 것이었다. 약탈적 본능은 노예제와 봉건주의에서 사회를 총체적으로 지배했던 반면, 자본주의에서는 노동자 정신의 본능이 중요하게 성장했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베블렌이 정의한 '야만(savagery)' 시대의 기술 변화가 완만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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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과제 해석
task_interpretation베블렌의 '야만' 시대에 기술 변화가 완만하게 일어난 원인을 파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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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정보 추출
information_extraction문맥에서 '야만' 시대의 특징과 기술 변화에 관한 언급을 추출한다.
- 베블렌은 이 기간을 ‘야만(savagery)’시대라고 불렀다.
- 쓸데없는 호기심을 위한 여지가 거의 없었으므로 기술변화는 매우 완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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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근거 선택
evidence_selection기술 변화의 완만함과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나타내는 문구를 선택한다.
- 쓸데없는 호기심을 위한 여지가 거의 없었으므로 기술변화는 매우 완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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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논리 통합
logical_integration기술 변화가 완만한 이유는 해당 시대에 쓸데없는 호기심을 가질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라는 인과 구조를 도출한다.
- 쓸데없는 호기심을 위한 여지가 거의 없었으므로 기술변화는 매우 완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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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결론 도출
conclusion_formulation질문에 대한 답으로 쓸데없는 호기심을 위한 여지가 거의 없었다는 점을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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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답변 생성
answer_generation최종 답변을 작성한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쓸데없는 호기심을 위한 여지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베블렌이 정의한 '야만' 시대에는 쓸데없는 호기심을 위한 여지가 거의 없었으므로 기술 변화는 매우 완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