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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적 치욕과 근대화 과정에서의 서구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전개되어 온 통치이념의 변화와 중화주의적 정체성 재건 노력 doc_id PCY_201703210440540521_3

주제 (main_topic)
중국의 역사적 치욕과 근대화 과정에서의 서구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전개되어 온 통치이념의 변화와 중화주의적 정체성 재건 노력
답변 불가 (is_impossible)
False
문맥 (context)
이처럼 중국의 부상과 더불어 다양한 성격을 가지는 민족주의로 변용 또는 구성(construct)되어온 관계적 성격을 가지는 중국 민족주의(relational nationalism)의 원점은 치욕의 역사에 대한 기억이다. 밍신페이(Minxin Pei)가 지적한 바와 같이 “중국의 민족주의는 사실상 부분적으로 서구 제국주의의 결과물이다.” 5000년이라는 유구한 역사를 가진 중국은 2000년간 아시아의 화이질서를 형성하고 지역질서를 지배했을 뿐만 아니라 인구와 경제총생산(GDP에서도 압도적인 우위에 있었던 역사적 패권국이었다. 그런데 16세기 산업혁명을 거친 서구열강이 끊임없는 전쟁과정에서 경쟁과 혁신을 통해 근대국가로 성장한 반면 중국은 근대적인 혁신에 실패하면서 서구 열강의 침략을 받게 된 것이다. 학문적으로 본다면 거대 제국을 통치했던 정치적인 통치와 문명적인 발견의 중심이었던 중국이 근대국가 건설 경쟁에서 뒤처지게 된 것은 오랜 질문이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치욕의 역사에 대한 집단적 기억은 중국의 국가 정체성의 형성에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작동했다. 그리고 역사적 치욕에 대한 기억과 담론은 신중국 건국 이후 지배적인 정치적 수사(mater narrative)이자 정치적 동력이었다. 둘째, 신중국 건국 이후 성취한 부흥(rejuvenation)의 성과는 역사적 대비를 통해서 그 정치적 의미가 강조된다. 무엇을 위한 부흥이라는 문제와 관련하여 치욕의 세기(century of humiliation)와의 역사적 대비를 통해서 중국이 이룩한 성공의 성과가 강조되는 것이다. 그리고 치욕의 세기에 대한 인식은 중화민족의 부흥이라는 정치적 수사가 특별한 동력을 가지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중화민족에 대한 자긍심과 서구와 일본에 대한 침략으로 인한 치욕에 대한 기억은 중국 민족주의를 구성하는 상호대립적인 구성요소로 작동해왔다. 5000년 이상의 유구한 영예로운 역사를 가진 중화문명에 대한 자긍심은 중화민족주의가 역사적인 의미를 가지는 이유다. 그러나 역사적 자긍심에 근거한 민족주의는 원초적으로 존재한 고정적인 관념일 뿐만 아니라 역사적 환경에서 주변국가와의 관계에 따라 지속적으로 변형되어온 관계적 민족주의(relational nationalism) 또는 가변적인 민족주의라는 양자의 의미를 내포한다. 20세기 초 전통중국이 붕괴하고 근대국가를 모색하던 시기 중국은 서구에서 유입된 근대적인 민족관념과 중화적인 요소를 결합하여 중화주의적인 근대 민족관념을 모색했다. 둘째, 위기의 원인으로서 ‘서구화(westernization)의 위기’에 대한 인식이다. 중국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위기의 본질적인 원인은 근대화 과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데 근대 이후 중국이 추진해온 근대화는 다름 아닌 서구적인 방식과 경로를 모방하는 서구화 과정이었다. 서구 제국주의의 침략에 대응하여 근대적인 국가를 건설하는 하는 중국의 꿈은 서구와 같은 강국으로 발전하는 것이었다. 청의 관료와 지식인은 19세기 후반 중국의 가치와 수단으로서 서구를 이용한다는‘중체서용(中體西用)’을 원칙으로 근대적인 중국 건성을 위한 개혁을 시작했다. 그러나 청일전쟁에서 일본에게 패배하는 역사적인 충격을 받으면서 다양한 개혁주의자들은 법치, 교육, 민주주의 등 서구적인 가치와 제도를 도입하여 급진적인 체제개혁(全變)을 시도했다. 근대 서구 제국주의의 침략의 위기에 대응하는 실천적인 정치운동으로 발전한 것은 1911년 손문이 주도하에 중화민국이 건국된 것이다. 중화민국이 표방한 ‘5권 분립’은 서구체제를 원칙으로 하면서도 중국 현실에 적용하려고 했던 시도였지만 이 역시 정치적인 혼란 가운데 실현되지 못한 것이다. 1949년 사회주의 중국의 건국은 19세기 이후 계속된 근대적인 민족국가 건설에 대한 중국사회의 논쟁을 정치적으로 실현한 것이다. 근대이후 중국의 민족주의 자들이 주장했던 근대화된 중국의 꿈이 실패한 가운데 공산주의가 근대적인 중국 건설의 이념으로 정립된 것이다. 건국이념으로서 사회주의가 가진 핵심 의미는 서구와 일본의 제국주의의 침략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하는 이념적인 토대였다. 그리고 1970년대 후반까지 사회주의 중국의 발전을 위한 통치이념이었다. 그런데 마오쩌둥의 사후 개혁개방 정책이 추진되면서 끊임없는 시작되었다. 논쟁의 핵심은 대외지향적인 개혁을 건국이념으로서 사회주의와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의 문제, 사회경제적인 변화에 따라 통치이념을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의 문제, 그리고 사회경제적인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새로운 통치이념을 개발하는 것이다. 중국의 통치이념 논쟁은 크게 네 번의 역사적인 계기를 통해 전개되었다. 1차 논쟁은 1978년에서 1982년까지 전개된 개혁개방 논쟁이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은‘효율’의 문제를 해결하는 전환점이었다. 덩샤오핑이 추진한 개혁의 목적은 마오경제의 실패를 극복하는 것이다. 계획경제의 비효율은 시장질서로 대체되었고, 대내적으로는 경쟁의 촉진, 대외적으로는 개방의 확대를 통해 경제적 효율을 증진할 수 있었다. 농촌에는 농가생산도급제가 도입되어 경쟁이 촉진되었고 국유기업의 경제적 비중을 축소하는 대신 비공유 경제가 확대되었다. 동부 연안지역을 개방하여 화교자본과 외자기업을 유치했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비교열위에 있는 기술과 자본을 도입하는 대신 비교우위에 있었던 노동을 활용했기 때문이다. 2000년대 중반까지 외자기업은 중국 전체 수출의 60%를 점유하면서 중국의 대외지향적인 발전을 주도했다. 중앙정부가 독점하던 계획기능이 분권화되고 행정적 효율성도 증대되었다. 더구나 지방정부가 경쟁적으로 시장규제를 완화하면서 시장경쟁과 대외개방이 촉진되었다. 그러나 시장에 의한 효율의 증대는 필연적으로 정치에 대한 갈등을 높일 수밖에 없었다. 1990년대‘사회주의 시장경제’이념이 등장하고 계급해방에 대한 사회주의 기본원칙의 중대한 수정을 가한 ‘삼개대표사상’은 경제적 효율을 위한 정치적 변화의 결과인 셈이다. 시진핑 체제의 중화주의와 아베 내각의 보수주의에 대한 연구는 사회과학적인 시각에서 민족주의의 문제를 분석하는 것과 인문학적 시각에서 담론지형을 분석하는 연구가 진전되어 왔다. 시진핑 체제 출범이후 강화되고 있는 중화주의의 문제는 통치이념(governing ideology)로서의 연속성을 강조하는 시각, 강대국화 하는 중국의 정치 전략으로서 단절성을 강조하는 시각, 그리고 담론주체와 내용에 따라 담론지형을 분석하는 차원에서 논의되어 왔다. 첫째, 5세대 지도자인 시진핑 체제가 내세우는 ‘중국의 꿈’이라는 정치수사(political rhetoric)가 가진 연속성을 강조하는 시각이다. 중국의 정치체제는 10년을 주기로 하는 중국공산당의 권력교체와 일당지배를 특징으로 한다. 모택동 이후 중국 지도자는 각 시대가 직면한 과제와 지도자의 인식에 따라 통치권력을 정당화하고 미래비전을 제시하는 차별화된 통치이념을 제시해왔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론은 마오쩌둥 시기 문화혁명의 경험으로부터 비롯된 중국식 사회주의 건설 경로의 획기적인 변화였다. 장쩌민의‘사회주의 시장경제’와‘삼대개표론’은 개혁개방 이후 중국사회가 직면한 사회경제적 모순을 수용하기 위한 변화였다. 마지막으로 중화주의를 포함하여 중국사회에서 논의되어 온 다양한 담론지형을 역사적 시각에서 분석하는 것이다. 개혁개방, 천안문 사태, 그리고 탈냉전 이후 시장개혁이 촉진되면서 중국사회의 특수성을 발견하려는 논의가 광범위하게 진행되어 왔다. 중국 재발견 논의는 포스트주의, 신좌파, 자유주의, 유교주의 등과 같은 다양한 담론이 다양한 스펙트럼에서 논의되어 왔다. 전후 재발견의 과제는 근본적으로 중화문명의 재건이라는 역사적 측면, 사회적 위기에 대응해야하는 정치적 차원, 그리고 사회주의와 시장경제가 혼재된 중국의 특수성을 발견하려는 체제적 차원에서 논의되어 왔다. 특히 자오팅양과 같은 중국학자들은 ‘중국의 꿈’이 전후체제 에서 이룩해온 근대화의 성과에 대한 전면적인 재평가의 측면에서 접근하고 있다. 신중국 이후 중국이 이룩한 근대화의 꿈(dream of modernization)은 서구화된 꿈( westernized dream)일 뿐이며 이로부터 비롯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중화성(Chineseness)를 획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중국 민족주의를 구성하는 두 가지 상호대립적인 요소는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중국 민족주의를 구성하는 상호대립적인 두 가지 요소를 찾아 기술해야 한다.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중국 민족주의의 구성 요소와 관련된 문장을 추출한다.

    • 중화민족에 대한 자긍심과 서구와 일본에 대한 침략으로 인한 치욕에 대한 기억은 중국 민족주의를 구성하는 상호대립적인 구성요소로 작동해왔다.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상호대립적 구성요소로 명시된 '자긍심'과 '치욕에 대한 기억'을 핵심 근거로 선택한다.

    • 중화민족에 대한 자긍심
    • 서구와 일본에 대한 침략으로 인한 치욕에 대한 기억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추출된 두 요소가 서로 대립하며 민족주의를 형성한다는 논리적 관계를 확인한다.

    • 중국 민족주의를 구성하는 상호대립적인 구성요소로 작동해왔다.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자긍심과 치욕의 기억이라는 두 요소를 정리하여 답변을 구성한다.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질문에 대한 최종 답변을 작성한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중화민족에 대한 자긍심과 서구 및 일본의 침략으로 인한 치욕에 대한 기억이다.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중국 민족주의를 구성하는 상호대립적인 두 가지 요소는 중화문명에 대한 자긍심과 서구 및 일본의 침략으로 인한 치욕에 대한 기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