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맥 (context)
다만 박대통령의 인식에는 불안감이 든다. 회견에서 한미일 연합제휴를 강조한 것은 미국의 의향을 의식한다는 측면이 강한 것으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박대통령은 미국 방문 중 강연에서 한 미 일보다도 ‘한 미 중 3국의 협력’을 강조했다. 이것은 일본보다 중국과의 협력을 중시하고 싶다는 속뜻이 아닌가 의구심을 낳는다. 한국 외교에 대해서는 원래 중국에 지나치게 치우쳐 ‘중국 경사론’이 얘기 되어왔다. 중국의 열병식(군사 퍼레이드)에 박대통령이 참석함으로써 이러한 우려는 한층 강화되고 있다. 중국과의 오랜 역사적 관계나 경제면에서 높은 비중, 중국이 지닌 북한에 대한 영향력 등 양국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중국에 대한 접근은 자연스러울 것이다. 그것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전제는 어디까지나 ‘중국의 평화로운 등장’이어야만 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중국이 국제규범을 위반하는 행동을 하면‘한국이 미국과 마찬가지로 목소리를 높일 것’을 촉구했다. 남중국해에서 해양 진출을 염두에 둔 것은 자명하다. 국제질서의 안정에 무관심하다는 인상을 주는 것은 한국의 국제적 평가를 저하시킨다. 북한정세에 대처하기 위해 기능해온 한미일 연합체제에도 영향을 미친다. 박대통령은 이러한 점을 감안하여 외교정책을 수행하길 바란다.
중국의 군사적인 대두에 더하여 북한은 핵미사일 개발로 한 일 뿐만 아니라 미국마저도 위협하려고 하고 있다. 주변 환경의 악화로 한일, 한미일의 결속이 보다 필요하다. 그것을 방해하고 있는 것은 역사문제에 얽매여 사실상 한일정상회담 개최에 조건을 내건 박근혜 대통령의 자세이다. 대국적인 견지에서 양국관계의 재구축에 나서길 바란다. 박정권의 탄생 전에 2012년 이명박 대통령(당시)의 독도상륙과 천황폐하에 대한 사죄 요구는 일본 국민의 감정을 크게 손상시켰다. 박대통령은 그것을 회복하고자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고, 오히려 위안부 문제 해결을 새삼스럽게 일본 측에 촉구하는 등 역사문제를 카드로 삼아 견제해왔다. 특히 염려되는 것은 역사문제로 중국의 시진핑 정권과 반일 전선을 형성하는 것 같은 언동으로 대일 비판을 전개한 것이다. 한국 경제는 수출입 모두 중국에 크게 의존하고 대중국 관계를 중시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한미일의 결속보다 공산주의 국가와의 우호에 경사하는 듯한 자세는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책임을 져야할 지도자가 취할만한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50주년을 맞이한 시기에 한국 측이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의 세계유산등록에 반발하여 저지하려고 하는 것도 관계개선에 대한 의사를 의심케 한다.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은 1일자 ‘3 1 독립운동’ 기념식 행사에서 연설하며, ‘올해는 한국과 일본이 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이하는 뜻깊은 해이다’고 말했다. 양국이‘보다 성숙한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고 미래지향적인 언급도 했다. 한편으로 현상에 대해서‘역사를 둘러싼 대립 때문에 마음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는다’고 표현했다. 일본 측에게‘용기를 갖고서 역사적 진실을 인정하는’자세도 촉구했다. 한국은‘올바른 역사인식’을 갖고 있고, 관계악화의 책임은 모두 일본 측에 있다. 그런 편향된 박씨의 외교기조는 과거와 변함없이 그대로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방문으로 악화된 한일관계는 박정권 2년간 그 정도가 심각해지고 있다. 최대 원인은 위안부 문제로 일본 측이 새로운 구체적 대안을 마련하지 않는 한 정상회담에 응하지 않는다는 경직된 박정권의 방침이다. 박씨는 이번 연설에서 전 위안부가 고령이고‘명예회복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며, 일본 측에 조속히 대응을 거듭 촉구했다. 전 위안부를 포함한 개인에 대한 보상 문제는 1965년 청구권 협정에서‘완전하고 최종적으로’해결했다. 일본 정부는 1995년 아시아여성기금을 설립하고 한국의 전 위안부 61명에게 수상 사죄 편지와 함께‘보상금’도 지급했다.
한국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당한 산케이신문 전 서울 지국장에 대해 한국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했다. 언론의 자유를 보장한 법에 비추어보면 당연한 판결이다. 원래 대통령의 마음에 들지 않는 기사를 썼다 해도 검찰이라는 공권력이 기자를 기소하는 것 자체가 이상했다. 한국의 법원에서는 피해자인 박씨가 처벌을 바라지 않는다고 하니 소추는 면했다. 기소로부터 2년 2개월 동안 공판이 이어지고 판결까지 이른 것은 박씨 자신이 소추를 원했기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권력자의 의향에 따라 보도기관 기자를 소추하는 것이 한국의 민주주의에 어떤 화근을 남길지 생각해보지 않았나. 일본뿐만 아니라 해외 저널리스트 단체 등에서도 한국정부에 대해 강한 우려의 목소리가 잇달아 나온 것도 당연한 일이다. 원래 공소를 제기할 만한 사안이 아닌 문제를 스스로 정치문제로 만들어버린 책임을 한국정부는 반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 한일관계는 정치 관계 악화로 민간교류에도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쓸모없는 언쟁을 유발하고 외교문제에 휘둘리는 짓은 한일 양정부 모두 삼가야 한다.
21일에 처음 일본을 방문하는 한국의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외교책임자이면서도 자신이 제3국에서 일본을 비판하는 ‘고자질 외교’를 지속해왔다. 외교부 장관 취임하고 나서 2년 이상 이웃나라를 방문하지 않는다는 판단은 이상하다고 할 수 밖에 없다. 여기서 《아사히신문》은 경직된 한일 관계의 원인을 양국에 있다고 보고 양국의 대립을 개탄한다. 그러나 식민지 지배는 ‘불행한 역사’라는 말로 그 책임이 일본에 있다는 사실을 덮은 채 역사문제를 ‘낡은 장애물’이라는 말로 벌써 끝난 것처럼 표현한다. 게다가 한국의 사법제도나 외교자세를 ‘머리를 갸우뚱하지 않을 수 없다’거나 ‘고자질 외교’라는 말로 비판한다. 다음 사설에서도 박 정권의 방침 전환을 환영하변서도 한일 양국의 대립 원인과 그것을 해결할 책임이 대등하게 양국에 있는 것으로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한일 정상회담이 열린 직후의 사설을 읽어보자. 3개국 협력에는 큰 잠재력이 있고, 역사인식이나 영토 문제와는 별개로 미래지향적으로 진행해야 한다. 그것은 자명한 일인데도 공통 이익에서 눈을 돌리는 소극적인 태도로 정체를 초래한 데 대해 각국 모두 반성할 필요가 있다. 아베 수상은 정권 발족 당시‘역사수정주의자’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언동을 거듭해서 한중 양국의 경계심을 자극했다. 중국은 중일의 역사를 국제문제로 삼으려고 했고 센카쿠 주변의 일본 영해에 어선을 침입시키기도 했다. 역사나 영토에 강경한 태도를 드러냈고, 그것을 시진핑 국가 주석의 자국 내 권력기반 다지기에 이용했다는 지적도 있다. 박대통령은 위안부 문제 해결에 발전이 없으면 정상회담에 응하지 않겠다는 강경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대립이 있다고 해서 3개국 정상회담 개최를 중단하는 것을 다시 반복해서는 안 된다.
사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새로운’사과, 일본 정부 차원의 재정 부담, 그러면서도 일본 정부가 부담스러워 하는‘법적 책임’은 회피하며, 이 한 번의 합의로 위안부 문제를 완전하게(once and for all) 해결한다는‘합의’의 기본적인 내용은 미국의 언론들이 주장한 절충적인 해결방식이 현실화된 결과로 볼 수 있는 측면도 있다. 이렇듯 미국 언론들은 한일 양국이 위안부 문제를 논의하는 국면에서 단순한 수동적 관찰자로 머물렀던 것이 아니라 미국의 아시아 지역에 대한 정책 구상을 바탕으로 자신들이 생각하는‘바람직한’해결 방식을 지속적으로 제시하는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따라서 12 28 합의가 나오게 된 지금까지의 국제정치적 배경을 이해하고 한국 정부 및 시민사회의 위안부 문제에 대한 앞으로의 대응방안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일본 언론은 물론 미국 언론이 위안부 문제를 어떻게 인식하고 보도했는지를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시아에서 오늘날 일어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일본이 분명하고, 포괄적이며, 가능한 한 애매모호하지 않은 방식으로 완전한(once and for all) 사과를 하는 것이다. 이것은 독일의 빌리 브란트(Willy Brandt) 수상이 바르샤바(Warsaw)게토 근처의 기념물 앞에서 무릎을 꿇었던 일이나,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Richard von Weizsaker) 대통령이 10여년 전 ‘집단 책임’의 문제를 언급했던 것과 같은 일을 의미한다. 일본 제국의 범죄는 나치 독일의 범죄와 같은 수준의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민주 국가 독일은 자신의 과거사에 대한 열려있고 변명하지 않는 태도로 많은 것들을 얻었던 만큼, 일본 또한 그와 같이 할 것이다. 일본에 의해 희생당한 국가들은 그들 몫의 정당한 고충들을 포괄적으로 밝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슬프게도 이런 일은 벌어질 것 같지 않다. 이 문제와 관련된 국가들의 정치인들은 과거사의 문제를 계속해서 거론함으로써 얻을 것이 매우 많다. 일본의 이웃 국가들 또한 현재의 목적을 위해 과거를 이용한다는 면에서 잘못이 있다. 중국의 정치인들은 희생자라는 카드를 가지고 노는 것이 국내에서 아주 잘 먹힌다는 것을 안다.
11월 초 아베 신조 수상과 박근혜 대통령의 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은 위안부 문제의 조기타결을 위해 교섭을 가속화하기로 협의했다. 아베 수상은 이때‘장래 세대의 장해가 되지 않겠다’고 말하고, 그밖에 전후(戰後) 70년 담화에서도 다음 세대에게 ‘사죄를 되풀이하는 숙명을 부담시켜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신년의 박대통령의 일본 방문 등도 고려하여 조기 타결을 시도할 것이다. 하지만 우선 고려해야 할 것은 신속함보다 확실한 해결로 연결되는가이다. 특히 유의해야 할 점은 한국 측이 지금까지 몇 번이나 정상 차원에서 ‘결착(매듭지음)’을 공언했는데도 정권이 바뀌어 정치 정세가 달라질 때마다 위안부 문제 등을 반복해서 들고 나와 대일 외교 카드로 이용해온 것이다. 일본 측은 배상과는 관계없이 전 위안부들에게 아시아여성기금을 통한 ‘배상금’ 지급을 해왔고 역대 수상이 사죄를 표명해왔다. 그럼에도 해결되지 못한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중국의 군사적인 대두나 북한의 핵 미사일 개발 등 동북아시아 정세의 불안정을 생각하면 함께 미국의 동맹국인 한 일의 관계가 정체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러한 현실적인 관점에서 한국이 위안부 문제에 고집하는 자세를 전환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문맥에 따르면, 일본 정부가 1995년에 전 위안부 61명에게 제공한 조치는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
1과제 해석
task_interpretation1995년 일본 정부가 전 위안부 61명에게 행한 구체적인 조치 내용을 파악해야 한다.
-
2정보 추출
information_extraction문맥 내에서 1995년, 일본 정부, 전 위안부 61명과 관련된 정보를 추출한다.
- 일본 정부는 1995년 아시아여성기금을 설립하고 한국의 전 위안부 61명에게 수상 사죄 편지와 함께‘보상금’도 지급했다.
-
3근거 선택
evidence_selection일본 정부의 조치를 명시한 문장을 근거로 선택한다.
- 일본 정부는 1995년 아시아여성기금을 설립하고 한국의 전 위안부 61명에게 수상 사죄 편지와 함께‘보상금’도 지급했다.
-
4논리 통합
logical_integration추출된 근거를 바탕으로 아시아여성기금 설립, 수상 사죄 편지 전달, 보상금 지급이라는 세 가지 요소를 결합한다.
-
5결론 도출
conclusion_formulation일본 정부는 1995년에 아시아여성기금을 설립하였으며, 이를 통해 전 위안부들에게 수상 사죄 편지와 보상금을 지급하였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
6답변 생성
answer_generation질문에 대한 답변을 정리하여 출력한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아시아여성기금 설립, 수상 사죄 편지 전달, 보상금 지급이다.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일본 정부는 1995년에 아시아여성기금을 설립하고 한국의 전 위안부 61명에게 수상 사죄 편지와 함께 보상금을 지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