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공데이터 · 도서자료 기계독해

제국 일본의 '대동아공영권' 구상과 그 이데올로기적 재편 과정에서 나타난 식민지 일본어 문학의 정치적·문화적 변용 및 연대 논리에 관한 연구 doc_id PCY_201703210456494901_1

주제 (main_topic)
제국 일본의 '대동아공영권' 구상과 그 이데올로기적 재편 과정에서 나타난 식민지 일본어 문학의 정치적·문화적 변용 및 연대 논리에 관한 연구
답변 불가 (is_impossible)
False
문맥 (context)
전후 동북아시아의 지정학적 내러티브가 조선의 ‘반도정치성’을 중심으로 하여 일본의 ‘해양정치성’과 중국의 ‘대륙정치성’으로 변주됨과 동시에 전후의 민족담론이 냉전체제의 이데올로기와 연동되면서 구축되었다는 사실은 현재의 시점에서 볼 때 매우 주목해야 할 사안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 연구는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진행하고자 한다. 첫째, 제국 일본의 식민지 일본어문학을 경험적인 분석도구로 삼음으로써 ‘15년 전쟁기’ 식민지 문학연구의 보편적인 문제 틀과 종합적인 분석방법론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둘째, 과거 ‘대동아공영’의 논리를 제국 일본의 주변적 시각을 재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특히 ‘대동아전쟁’ 시기의 조선, 대만, 중국 점령지, 오키나와의 일본어문학을 동시대적으로 검토함으로써 ‘대일본제국’의 사상편제 하에서 각 문화의 방향전환과 전유의 시도 및 협력의 논리 등을 살펴보되, 각각의 비교를 통해 종합적 구성의 이론적 틀을 모색해볼 것이다. 여기서 먼저 ‘15년 전쟁기’(1931-1945) 제국 일본의 식민지문학을 1차 대상으로 삼는 이유는 통상적인 일본어 문학과 달리 이 시기의 일본어 문학은 제국/식민지의 문제와 착종된 근대 비판의 형태, 즉 정치적 편제와 문화적 변용, 그리고 언어와 민족의 혼종성이 함의하고 있는 특수한 의미가 집약되어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미국과 중국을 축으로 한 ‘신냉전시대(Bipolar system)’가 도래하고 국민국가 시스템의 붕괴를 예고하고 있는 다국적주의가 전 세계의 지배원리로 등장한 현재, 과거 ‘대동아공영’의 슬로건이었던 아시아 연대의 기획이 글로벌화와 함께 동아시아 지역통합의 시도로 다시 호출되고 있다는 점은 본 연구의 문제의식에 시의성을 더해준다. 물론 현재의 시공간으로 회귀한 동아시아 지역 통합의 의도는 아시아 연대에 있다기보다 국익 중심의 논리, 즉 국가와 자본의 주도로 추진되는 국가 전략의 일환이다. 하지만 현재의 동아시아 담론을 이끌고 있는 비판적 지성은 이러한 새로운 헤게모니 편성에 대해 여전히 무방비 상태에 있고, 또 과거의 주술에서 여전히 해방되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주지하다시피 일제 말기에 일본은 “서양에 의존하지 않는 안전보장의 새로운 방법, 서양에 굴종하지 않고 일본의 지위를 승인하는 방법, 일본의 이익과 일본의 정의 관념을 일치시키는 국제적 권력행사의 정당한 방식에 대한 새로운 규정을 탐색”하면서 아시아 국가들과 연대하는 ‘대동아공영권’을 구상했다. 이것은 19세기 말 “마음으로부터 동방의 악우(惡友)를 사절”하고 서양의 문명을 수용함으로써 서구 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 ‘탈아입구(脫亞入歐)’를 선언했던 일본이 ‘아시아로의 회귀’로 방향전환을 단행한 결과였다. 다시 말해 절대적인 동경과 모방의 대상이었던 서양이 돌연 대결의 대상으로 급변하게 되자 일본의 세계사관적 지평을 전환한 것인데, 이런 점에서 ‘대동아공영’은 ① 서구의 근대를 초극한다는 사명과 ② 아시아에서의 지도권을 주장하는 일본 대외관의 원리적 배리가 현재까지도 아포리아로 남게 된 원인을 제공한 셈이 되었다. 이렇게 일본이 내세운 서양 중심의 일원론적 세계사를 대신하는 ‘대동아공영’은 중국에게는 ‘서양으로부터의 동양 해방’이었고, 조선에게는 ‘황국신민화’ 라는 유기체적 공동체를 표방한 ‘동아신질서’의 이념으로 표상되었다. 제국 일본의 ‘세계사의 철학’이란 비서구 세계를 식민지화한 근대 유럽이 ‘세계사’의 단독주체로 자리 매김 된 이래, 제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유럽이 몰락한 뒤 필연적으로 비서구 세계가 대두할 것이라는 구상, 즉 다원적 세계를 주창한 일본적 자기인식이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때의 ‘세계사’란 “자기완결적 고립체계”로서의 유럽사라는 지리적 공간의 역사가 아니라 그동안 비주류로 간주되었던 동양적 “구조의 역사, 통일의 역사”를 가리킨다. 여기에는 유럽중심주의의 일원적 세계관의 부정과 함께 19세기적 서구의 근대를 초극하는 사상형성의 의도가 내포된 것이었다. 그러나 중일전쟁이 항일노선을 취한 중국 국민정부와의 장기지구전으로 치닫고, 식민지 조선이 대륙병참기지의 역할을 떠맡은 상황에서 일본에서 발화된 ‘동아의 통일’은 식민지인들에게 기만적인 이데올로기일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식민지 민족문제에 대해 가장 먼저 날카로운 의견을 개진한 것은 바로 미키 기요시(三木淸)였다. 고노에(近衛文麿) 내각의 씽크탱크(thinktank)인 ‘쇼와연구회(昭和硏究會)’의 혁신 지식인들이 제기한 ‘동아협동체론’의 시초는 식민지와 제국주의의 대립을 극복하고 각 민족이 자주 협동함으로써 새로운 동아시아의 지역질서 형성을 도모하기 위한 일종의 ‘전시변혁론’(米谷匡史)이었다. 따라서 처음 ‘동아협동체론’은 일본의 사회대중당과 사회주의 세력의 지지를 받았다. 이와 함께 중국의 민족문제에 직면하면서부터는 일본 제국주의의 내부적인 자기비판과 사회주의적 동아시아 형성을 지향한 논의로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에 따라 총력전하에서 통제경제로 전환된 것을 계기로 하여 어쩌면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수정되면서 사회주의로 전환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제기되기도 했다. 요컨대 애초에 ‘동아협동체론’은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국가권력의 내부에서 현실적인 저항의 시도로서 제기되었던 것이다. 이렇듯 초기의 ‘동아협동체론’은 동아시아의 민족과 국가를 초월하여 아시아 해방과 연대를 실현하는 광역권의 이념적 비전으로 제시되었다는 점에서 ‘내지연장주의(內地延長主義)’로 대표되는 여타의 동화주의와는 전혀 다른 특질을 지닌 것이었다. ‘제2회 대동아문학자대회’는 1943년 8월 25일 ‘제국극장’에서 개회식을 거행하고, 8월 26·27일 이틀에 걸쳐 본회의가 진행되었다. 일본의 전황(戰況)이 매우 불리해진 상황에 따라 원래 중화민국의 쌍십절에 개최할 예정이었던 계획을 앞당겨 특별히 ‘결전회의’ 혹은 ‘결전문학자대회’로 지칭되었던 만큼, 제2회 대회의 취지는 ‘대동아전쟁’의 승리를 위한 문화협력의 실천방책을 이끌어내는 데 있었다. 이 시기는 일본이 미드웨이해전(1942.6)에서 참패한 이래 과달카날전투에서 패하고(1943.2) 또 에투 섬의 일본수비대가 전멸했으며(1943.5), 1943년 7월 연합군이 시칠리아 섬에 상륙하면서 무솔리니(Benito Mussolini) 정권의 붕괴를 가져왔던 만큼 일본으로서는 어느 때보다 중화민국의 협조가 절실한 때였다. 이러한 대외정세가 반영된 제2회 대회는 중화민국 측의 문인 참석률이 가장 높았고, 그런 점에서 다케우치 요시미는 이 대회를 “일본문학 대표와 지나문학대표의 회합”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애초에 연4회 ‘국어판’, 연8회 조선어판으로 기획되었던 국민문학(國民文學) 지가 1942년 5·6월 합병호부터 전면 ‘국어판’으로만 간행되었다든가, ‘국어’로서의 일본어가 ‘대동아공영어’로 승격되어 보급되고, 이광수와 최재서가 일본의 전통·고전세계로 침투하거나 최재서가 때늦은 창씨개명을 단행(1944.1.1.)하는 등 조선 문인들의 신념이 급격히 하강하게 된 계기가 바로 이 세 차례에 걸친 ‘대동아문학자대회’였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요컨대 식민지 조선의 ‘국민문학’이 하나의 지방문학으로서 일본문학의 일익을 담당하고 ‘황국신민’이 되기 위한 목적에 의거한 것이었다면, ‘대동아문학’은 일본이 중추가 된 아시아의 민족이 함께 연대하여 ‘성전’을 완수함으로써 ‘대동아’ 세계를 구축하기 위한 문학의 재편이었다는 점에서 본 연구는 ‘대동아문학자대회’를 ‘국민문학’이라는 상위개념 내부의 단층으로 자리매김하고자 한다. 예컨대 1942년 이후 이른바 ‘국민문학 작가들’의 글쓰기가 일본의 고대세계에 집중되어 있는 것은 ‘대동아문학’으로의 재편에 따른 ‘일본정신’의 보급·강화에 따른 주문이었고, 또 그것은 ‘대동아문학자대회’에서 채택된 결정사항을 수행하는 일환이었다는 것이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일본이 과거 '탈아입구(脫亞入歐)'에서 '아시아로의 회귀'로 방향전환을 단행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일본의 세계사관적 지평이 '탈아입구'에서 '아시아로의 회귀'로 변화하게 된 원인과 배경을 파악해야 한다.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일본의 과거 태도와 변화된 태도에 관한 정보를 추출한다.

    • 19세기 말 “마음으로부터 동방의 악우(惡友)를 사절”하고 서양의 문명을 수용함으로써 서구 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 ‘탈아입구(脫亞入歐)’를 선언했던 일본
    • ‘아시아로의 회귀’로 방향전환을 단행한 결과였다.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방향전환의 직접적인 원인이 명시된 문구를 선택한다.

    • 절대적인 동경과 모방의 대상이었던 서양이 돌연 대결의 대상으로 급변하게 되자 일본의 세계사관적 지평을 전환한 것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서양을 동경하던 대상에서 대결의 대상으로 인식하게 된 변화가 방향전환의 핵심 원인임을 연결한다.

    • 절대적인 동경과 모방의 대상이었던 서양이 돌연 대결의 대상으로 급변하게 되자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서양에 대한 인식이 동경의 대상에서 대결의 대상으로 급격히 변화함에 따라 일본의 세계사관이 전환되었음을 결론짓는다.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추론된 내용을 바탕으로 최종 답변을 작성한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절대적인 동경과 모방의 대상이었던 서양이 돌연 대결의 대상으로 급변하게 됨에 따라 일본의 세계사관적 지평이 전환되었기 때문이다.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일본이 서양을 동경하던 '탈아입구'의 태도에서 '아시아로의 회귀'로 선회한 이유는 서양을 대결의 대상으로 인식하게 된 세계사관의 변화에 기인함을 설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