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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말기 일본의 제국주의적 '대동아공영권' 구상에 맞서, 식민지 지식인들이 보여준 비판적 성찰과 각 민족의 특수성 및 독립성을 수호하려는 다양한 아시아 담론의 양상 doc_id PCY_201703210456494901_2

주제 (main_topic)
제2차 세계대전 말기 일본의 제국주의적 '대동아공영권' 구상에 맞서, 식민지 지식인들이 보여준 비판적 성찰과 각 민족의 특수성 및 독립성을 수호하려는 다양한 아시아 담론의 양상
답변 불가 (is_impossible)
False
문맥 (context)
그러나 오카쿠라 덴신(岡倉天心)의 ‘아시아는 하나다’라는 슬로건을 남용하면서 식민지·점령지 국가를 일본과 동일한 위치로 승격시키고 공동책임 하에 전쟁에 복무하는 것이 곧 ‘아시아의 해방’으로 이어진다는 것이 자기기만적 논리라는 것쯤은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 성질의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대동아문학자대회’의 근본의미가 “문학성보다도 차라리 정치성에 있다”고 본 유진오의 지적은 일견 타당한 것이었다. 이와 함께 중국과 일본의 문화교류가 “임시적인 이익을 도모한다든가 개인적 명성을 얻기 위해 투기적 유행을 쫓는 속임수가 아니기를 바”란다는 타오캉더(陶亢德)의 우려 섞인 목소리는 이 대회에 참석한 대다수의 천편일률적인 발언에서 감지되는 노예의 언어 속에서도 사태의 본질을 잘 드러내준다. 1944년 11월 12-14일까지 난징(南京)에서 개최된 ‘제3회 대동아문학자대회’는 세 차례의 대회 중 중화민국 측의 활약이 두드러졌다는 점 외에 자료가 그다지 남아 있지 않아 본회의만 간략히 살펴볼 수 있다. 이른바 ‘남경대회’라고도 불리는 제3회 대회는 개최 바로 직전인 1944년 11월 5·6일 도조 히데키(東條英機)가 식민지와 종속·점령지 6개 국가를 상대로 한 국제정상회담이라 할 수 있는 ‘대동아회의’를 개최한 이후 그것의 연속선상에서 아시아의 해방과 공존공생에 대한 기획인 ‘대동아공동선언’을 심화하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주지하다시피 이 시기는 일본의 패망을 목전에 두고 ‘사상전’에 박차를 가했던 때였던 만큼, 제3회 대회의 취지는 ‘대동아공영권의 문화정책’에 대한 선전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명시했다( 文學報國 , 1944年 11月 1日). 중화민국의 활약이 요청되었던 제3회 대회의 풍경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이 글은 당시 일본 언론에 실렸던 대회 참석자들의 천편일률적인 발화의 이면에 어떤 갈등이 은폐되어 있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즉 중국인들은 패전에 임박한 일본의 절박함보다는 먹고 사는 일이 훨씬 더 절실했던 것이다. 실제로 ‘물자절약운동’으로 인한 “용지 관계로 상당한 지위에 있는 작가들도 차차 생활의 안정을 잃게 되어 진정으로 전직(轉職)을 고려하고 있”는가 하면 잡지의 분량이 줄어들면서 원고 량도 감소했던 저간의 사정은 작가들에게 있어 “사활의 문제”였다. “대체로 상대편은 책임의 소재가 일본만큼 강하지 않았고”, “중국 측의 열의가 충분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는 제3회 대회의 의장 나가요 요시로(長與善郞)의 불만도 여기에 있었다. 이런 점에서 참석자의 대다수가 ‘일본정신’에 입각한 ‘동양의 이상’을 반복하여 주창했다 손치더라도 “보다 진정으로 실질적인 마음과 마음의 결합을 요구하고 싶었”던 쪽은 오직 일본뿐이었다고 할 수 있다. 서양으로부터 독립한 ‘동양’이 세계사적 주체로서의 의의를 확립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각 민족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제국 일본적 동양’으로 수렴되는 것에 대한 우려를 표시한 미키 기요시의 발언에 조선의 지식인들이 공명했던 것은 일견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가령 마르크스주의자였던 김명식은 “동방적인 것과 서구적인 것과를 분별하는 것보다 시대적으로 초지역적의 의식을 발견” 해야 할 것을 주장했으며, ‘내선일체론’자인 인정식도 “조선인으로 하여금 일본 제국의 대륙정책에 백-퍼센트의 성의와 정열을 가지고 협동케 하기 위해서는 내지인과 동등한 국민적 의무를 다하게 한 후 내지인과 동등한 정치적 자격을” 부여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반해 서인식은 일본에서 발화된 ‘동아협동체론’이 중국의 강경항일노선의 장기화에 직면함에 따라 일본과 중국의 화해 및 제휴를 지향하기 위해 제국주의 정책을 궤도 수정한 것이라는 점을 간파하고 있었으며, 따라서 그것은 동아시아 각국의 정치·문화의 독립성을 인정함과 동시에 식민지 지배형식을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혈통과 풍토의 유사성을 동원하여 타자성을 부인하는 ‘협동체’의 구상을 ‘비합리주의’로 치부하면서 ‘협동’하는 구성원들이 동등한 위치에서 ‘공동의 운명’을 지향해야 한다는 박치우의 발언에는 일본발 아시아 연대에 대한 비판적 계기가 담겨 있다. 박치우가 굳이 ‘운명의 동일성’을 전제한 자율적 합일을 지향한 것은 특수를 방어하는 입장, 이를 테면 그것은 조선의 운명을 지켜내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고 할 수 있다. 조선은 처음부터 일본의 ‘제국헌법’이 적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내지’와는 본질적으로 구별되는 이법(異法) 지역이었다. 이것은 만인에게 동등하게 유효한 입법이라는 권위에 따라 이민족을 통치할 수 있었던 로마공화국의 그것과는 질을 달리한다. 더욱이 서인식은 ‘피와 흙’이라는 자연적 생명원리에 의거한 연대이념이 선택의지에 입각해 있는 근대 시민사회의 완성태인 ‘이익사회(Gesellschaft)’에서는 도저히 구성될 수 없는 개념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서인식과 박치우는 자신의 발화의 위치에 대해 철저히 자각적이었으며, 이것은 글쓰기(writing) 행위의 불가능성을 등에 업고 말하는 문학적 자세의 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파시즘이란 국가사회주의가 아니라 내셔널한 사회주의이다. 그것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에 대항하고 그것들을 넘어서는 열쇠를 네이션에서 발견한다는 점에서 ‘상상의 공동체’(Benedict Anderson)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게 볼 때 서인식은 일본이 식민지 조선을 ‘동아협동체’의 한 구성원으로 호명할 때 그것이 서구의 자본주의와 소련의 공산주의를 지양하는 제3의 원리로서의 전체주의·파시즘로 귀결될 것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서인식이 일본의 절박한 과제에 대한 응답의 형태로 제출한 ‘동아협동체론’을 결국 “가상적 체제”라고 규정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따라서 제국 일본의 의도가 현실에서 구현된다 하더라도 결국 ‘개체적 多’(식민지 민족)는 ‘전체적 一’(제국 일본)로 수렴됨으로써 모든 특수성과 정치성이 탈각될 것임은 분명한 일이다. 이것은 그야말로 ‘식민지 없는 제국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서인식이 주장한 ‘세계성의 세계’란 ‘개체적 多’가 갖고 있는 각각의 고유한 문화를 형성·발전시킴으로써 궁극적으로 ‘세계문화’가 형성되는 것이다. 그것이 실현될 때야말로 다양한 ‘세계’의 중심이 도처에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근대 국민국가 형성의 조류 속에서 우리는 상반된 두 가지의 아시아 담론과 조우한 바 있다. 하나는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정책으로 인해 전개된 ‘식민주의적 아시아 구상’이고, 다른 하나는 민족해방과 사회주의운동을 중심으로 전개된 ‘아시아의 사회혁명’이 그것이다. 전자는 동양과 서양이라는 이원론적 대립구도에서 ‘아시아/동아’라는 개념 구축으로 이어졌고, 후자는 국제주의적 안목에서 식민지와 민족문제를 다루어야 한다는 당위로 이어졌다. 여기에는 필연적으로 서구 중심의 ‘근대 초극’이라는 포스트모더니즘 담론이 개입될 수밖에 없는데, 이러한 형국은 어쩐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형태로 하나의 총체적 질서가 구축된 이래 새롭게 아시아의 지역통합이 모색되어가고 있는 점, 그리고 그러한 통합과정에서 요청되는 실천으로서의 다민족·다문화 담론과 같은 현재의 국제정세와도 매우 닮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서인식이 일본의 '동아협동체론'을 '가상적 체제'라고 규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서인식이 '동아협동체론'을 '가상적 체제'라고 정의한 근거와 그 이유를 파악해야 한다.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서인식이 동아협동체론의 본질을 어떻게 파악했는지와 그에 따른 결론을 추출한다.

    • 서인식은 일본에서 발화된 ‘동아협동체론’이 중국의 강경항일노선의 장기화에 직면함에 따라 일본과 중국의 화해 및 제휴를 지향하기 위해 제국주의 정책을 궤도 수정한 것이라는 점을 간파하고 있었으며
    • 서인식이 일본의 절박한 과제에 대한 응답의 형태로 제출한 ‘동아협동체론’을 결국 “가상적 체제”라고 규정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동아협동체론이 일본의 정책 수정 결과물이라는 점과 그것이 전체주의/파시즘으로 귀결될 것이라는 인식을 핵심 근거로 선택한다.

    • 일본과 중국의 화해 및 제휴를 지향하기 위해 제국주의 정책을 궤도 수정한 것
    • 그것이 서구의 자본주의와 소련의 공산주의를 지양하는 제3의 원리로서의 전체주의·파시즘로 귀결될 것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인지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동아협동체론은 일본의 정치적 필요(중국의 항일 노선 대응)에 의해 수정된 정책이며, 이것이 결국 개별 민족의 특수성을 말살하고 일본 중심의 전체주의로 귀결될 것이기에 실질적 체제가 아닌 가상적 체제라고 본 것이다.

    • 제국 일본의 의도가 현실에서 구현된다 하더라도 결국 ‘개체적 多’(식민지 민족)는 ‘전체적 一’(제국 일본)로 수렴됨으로써 모든 특수성과 정치성이 탈각될 것임은 분명한 일이다.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서인식은 동아협동체론이 일본의 정책적 수정안일 뿐이며, 실제로는 각 민족의 특수성을 제거하고 일본 중심의 전체주의·파시즘으로 귀결될 것이라고 판단했기에 이를 가상적 체제로 규정했다.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질문에 대한 최종 답변을 작성한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서인식은 '동아협동체론'이 중국의 강경항일노선에 대응하여 일본이 제국주의 정책을 궤도 수정한 결과물임을 간파하였다. 그는 이 체제가 서구 자본주의와 소련 공산주의를 지양하는 제3의 원리로서 전체주의·파시즘으로 귀결될 것이며, 결국 '개체적 多'(식민지 민족)가 '전체적 一'(제국 일본)으로 수렴되어 모든 특수성과 정치성이 탈각될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이를 '가상적 체제'라고 규정하였다.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서인식이 동아협동체론을 가상적 체제로 본 이유는 해당 이론이 일본의 정치적 필요에 의한 정책 수정안에 불과하며, 실제로는 식민지 민족의 특수성을 말살하고 일본 중심의 전체주의로 귀결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