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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 일본의 식민지 역사와 냉전 체제의 연속성을 바탕으로, 과거의 기억과 정체성 문제를 직시하며 새로운 동아시아 연대와 평화의 방향성을 모색해야 한다. doc_id PCY_201703210456494901_5

주제 (main_topic)
제국 일본의 식민지 역사와 냉전 체제의 연속성을 바탕으로, 과거의 기억과 정체성 문제를 직시하며 새로운 동아시아 연대와 평화의 방향성을 모색해야 한다.
답변 불가 (is_impossible)
False
문맥 (context)
서구문명과 사상적 대립구도를 펼치고 있던 제국 일본의 자기완결적 서사인 ‘세계사의 철학’이 태평양전쟁에 미친 영향력을 ‘동아/동아시아’라는 개념사로 고찰한 고야스 노부쿠니(子安宣邦)의 연구는 메이지(明治)와 쇼와(昭和) 일본의 사상논리를 역사적으로 탐구함과 동시에 현재 일본의 대외적 입장을 조망해보는 데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주지하다시피 제국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패한 직후 천황의 인간선언에 이어 최강의 군사력을 자랑하던 군대를 해체하면서 갑자기 전후 평화주의와 민주주의로 급격한 이데올로기 전환을 꾀했던 데는 냉전체제라는 이데올로기 대립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식민지를 거느렸던 제국 일본이 전후 평화주의라는 놀라울 만한 전환을 이룬 사실만 본다면 급격한 단절로 파악될 수 있겠지만, 그것이 진행되는 과정에는 전전(戰前)의 사상이 은밀하게 작동해왔다는 사실, 그것이 바로 전후 일본의 자기기만이었다는 것은 이미 많은 연구자들의 공통의견이기도 하다. 예컨대 요시미 슌야(吉見俊哉)는 현대 일본이라는 역사적 주체는 19세기 이후의 서구를 중심으로 한 세계시스템의 전개 속에서 역사적으로 구축되었고 또 그 이후에 팽창한 문화적·사회적 제도를 통해 자신의 주체성을 보다 분명했다는 점을 공공연히 말해왔다. 특히 문학의 경우 근대형성기에 집중되었던 국민국가 연구의 틀을 넘어서 전후 동아시아 국가 담론, 로컬문학/소수자문학의 정체성 형성과정을 추적하려는 연구도 상당 부분 진행되었다. 이러한 연구들은 중일전쟁을 전후한 이른바 ‘15년 전쟁기’에 피식민자들이 스스로를 소수자 문학으로 인식하는 맥락을 탐구하거나, 전후 미군정기 등을 거치며 탈식민지를 범위로 하는 새로운 한국의 정체성이 구성되는 과정을 비롯하여 일본, 대만의 전후문학 형성기 등을 추적한 연구도 함께 진행되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특히 식민지 말기의 한국과 대만의 비교 연구를 대만의 학자들과 공동연구를 진행한 전쟁이라는 문턱: 총력전하 한국-타이완의 문화 구조 는 이 연구의 초석이 될 만한 것으로 평가해도 좋을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제국/식민지 연구는 주로 식민지 조선/제국 일본을 대상으로 한 연구가 중심이 되었고 또 다양한 방면에서의 제국 일본의 식민통치 연구가 진행되었음에도 대만과의 비교 연구는 여전히 소홀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전전에는 ‘무국가 민족’이었지만 전후에는 ‘분단체제’를 형성하게 된 조선에 비해, 대만은 민족 전체가 식민 상황에 편입된 것도 아니었고 또 국가 체제로 포스트식민 상황에 처하게 된 적도 없다. 다른 한편 일본의 패전 이후인 1959년 제국 일본의 ‘근대초극론’을 내재적으로 비판한 다케우치 요시미(竹内好)에 이어 1972년 중일국교정상화 이후 새로운 의미에서의 ‘대동아공영권’의 실현을 주창했던 곤도 야스오(近藤康夫), 그리고 1970년대 전 세계 신좌파운동의 조류 속에서 ‘근대초극론’을 비판적으로 재검토하면서 진정한 의미에서의 ‘동아신체제’를 호소했던 히로마쓰 와타루(廣松涉) 등 냉전체제를 중심으로 한 ‘전후’의 맥락에서 동아시아 연대의 새로운 바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문제의식은 당대 국제정세의 혼돈 속에서 심화되지 못했고 또 근대 비판의 시도 역시 또 다시 동아시아 담론으로 흡수되어 버렸다. 이후 노무현 정권에서 동북아시아의 지역협력을 추진하자 일본의 하토야마(鳩山由紀夫) 총리가 ‘동아시아공동체 구상’으로 응답했고, 또 현재의 박근혜 정부 역시 신뢰의 인프라를 통한 동북아평화협력 구상을 외교안보의 핵심정책으로 제안한 바 있다. 이렇듯 현재의 동북아시아 지역통합의 방향은 단선적인 정부 간 협력의 틀을 넘어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행위자(non-state actors)들이 협의와 협력을 모색함으로써 새로운 동북아시대의 복합적인 협력네트워크를 지향하고 있다. 이렇듯 전후-해방 시기 일본과 한국은 냉전체제에 조응하여 각자 유리한 입지에서 이념적으로 대응하면서 국가 재건과 새로운 국민 정체성의 모색과정을 운용해가는 가운데 수많은 자기모순을 노정해갔다. 특히 전후-해방의 긴박한 분위기가 서서히 안정기에 이르자 식민지 국민과 패전국 국민이 갖는 공통적 원체험으로서의 제국-식민지-전쟁이 과거에 대한 노스텔지어를 불러일으키면서 ‘회한의 공동체’를 형성해간 저간의 사정은 어쩌면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했다. 가령 일본 ‘전후정신’의 기원으로 간주되는 ‘평화문제담화회’를 비롯하여 반전평화사상의 확립을 통한 자기반성과 실천을 모색해가는 무리들이 생겨나고, 또 과거의 군국주의에 대항하는 근거로서 민주주의의 공고화를 천명하는 등 일본의 전후 평화주의가 점차 선진문명 국가의 도의적 이념으로 자리 매김 되는가 하면, 하루 빨리 열등한 식민지 민족성을 탈피함으로써 반만년 역사에 뿌리를 둔 우수한 국민으로의 변신을 꿈꿨던 한국의 내셔널 아이덴티티는 각각 어떤 한 시점에서 해결되지 못한 채 그대로 봉인되어버린 지점이 공통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주지하다시피 오늘날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수행되고 있는 과제는 과거와 현재를 연동시키면서 상호참조체계를 형성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동북아시아의 지역통합의 문제는 여전히 과거의 망령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여기에는 제국 일본과 식민지―전후 일본과 식민지 내셔널 아이덴티티의 형성과정―미·소 중심의 냉전체제―미·중 중심의 신냉전체제로 이어지는 기억과 억압에 대한 문제 군이 놓여 있으며, 이제 이것을 정면 돌파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시각이 팽배해지고 있다는 점에서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난제가 되었다. 더욱이 현재의 다문화주의, 공공성, 글리벌라이제이션 등에 수반한 내셔널 아이덴티티의 문제 군 역시 각각 주제는 달라 보이지만 식민지/제국 문제의 근저에 존재하고 있거나 또는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방향을 찾는 시도라는 점에서 하나의 통일된 문제영역을 형성한다고 생각한다. 즉 지금까지 한국문학사에서 진행된 동아시아 담론은 근대 국민국가로서의 한국, 일본, 중국, 대만 등의 일국사에 초점을 맞추었던 탓에 일본의 식민지와 점령지를 포함한 ‘제국’의 경계가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는 혐의가 없지 않다. 따라서 신자유주의적 글로벌화를 슬로건으로 하는 현재의 시점에서는 일본의 구 식민지와 전후 냉전체제, 그리고 현재의 글로벌리제이션의 전망까지 시야에 넣은 ‘동아시아적 시좌’에서 연속과 단절에 대한 종합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 본 연구의 의도라 할 수 있는데, 그중에서도 전후 27년간 미국의 군정 하에 있었던 오키나와 지역은 이러한 문제의식의 시금석이 된다. 즉 새로운 동아시아 연대의 조건이 막 싹을 틔운 현재, 일본의 식민지였던 조선, 대만과 만주 및 오키나와, 그리고 미국과 중국의 신냉전체제라는 헤게모니 재편과정 속에서 새롭게 도래해야 할 아시아 연대란 과연 어떤 종류의 것이어야 하는지를 캐물어야 할 중요한 국면에 접어든 것이다. 본 연구가 식민지/제국의 동아시아 문제의 인문학적 탐구에서 출발하여 신냉전시대 동아시아 평화에 대한 전망을 시도하려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이와 함께 냉전체제 하의 오키나와 미군기지의 정치적·사회적 의미를 태평양 전쟁기 총동원체제의 연속적 차원에서 고찰한 연구들 역시 지역과 국민국가의 차원을 넘어 동아시아 전역에 파급된 현재적 문제들을 차례로 짚어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유효한 참조점을 제공해준다. 주지하다시피 오키나와의 미군문제는 미군정 하 일본의 정치적 문제뿐만 아니라 1960년대 후반에 불거진 평화운동과 연동된 민족주의, 그리고 여기서 파생된 전후 평화주의와 민주주의를 위시한 시민운동, 환경이나 지역경제의 문제들과 밀접하게 연관된 대규모의 사안이었고, 또 주한미군 주둔 및 기지문제와 관련하여 한국에 미친 미국의 영향과도 중첩된 문제라는 점에서 중요한 시금석이 된다. 또한 최근에 불거진 중국의 동북공정 기획 관련 연구도 동아시아 전체의 현재성을 조망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다. 이러한 연구들은 일본의 고토회복전략과 중국의 동북공정기획을 비교하거나 중국의 인터넷 지도 현황 등을 분석하며 중국이 호출하는 ‘영토의 기억’이 과거의 그것과 같이 동아시아의 헤게모니를 차지하기 위한 전략임을 강조하고 있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제국 일본이 태평양전쟁 패전 직후 전후 평화주의와 민주주의로 급격한 이데올로기 전환을 꾀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제국 일본이 패전 후 이데올로기를 급격히 전환한 배경과 원인을 파악해야 한다.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문맥에서 일본의 이데올로기 전환과 관련된 구체적인 상황을 추출한다.

    • 제국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패한 직후
    • 전후 평화주의와 민주주의로 급격한 이데올로기 전환을 꾀했던 데는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전환의 원인을 직접적으로 명시한 문구를 선택한다.

    • 냉전체제라는 이데올로기 대립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일본의 급격한 이데올로기 변화가 단순히 내부적 결단이 아니라 당시의 국제적 상황인 냉전체제와 연결되어 있음을 통합한다.

    • 냉전체제라는 이데올로기 대립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질문에 대한 답으로 냉전체제라는 이데올로기 대립을 도출한다.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추출된 근거를 바탕으로 간결하게 답변을 작성한다.

    • 냉전체제라는 이데올로기 대립
최종 답변 (final_answer)
냉전체제라는 이데올로기 대립에서 기인한 것이다.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제국 일본이 전후 평화주의와 민주주의로 급격한 이데올로기 전환을 꾀했던 데는 냉전체제라는 이데올로기 대립에서 기인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