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맥 (context)
독일연방공화국의 사법기관은 그 이후의 시기에도 오로지 독일형법을 기초로 나치 범죄를 처단하였다. 이때 핵심 주장은 국가사회주의 범죄는 행위 시에 효력이 있던 법에 따라 그 처벌여부를 가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로써 나치국가는 중대한 범죄를 범하기 위해 국내의 법률을 투입하였던 범죄국가였었다는 점이 올바로 인식되기 어려웠다. 국제형법 규범을 적용하였더라면 범죄국가에 대한 판단이 아주 분명하게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국가사회주의의 거대한 불법에 대한 통찰에 대한 거부적 태도와 뉘른베르크 국제형법에 대한 인정의 거부는 서로 맞물려 있었다. 하지만 국제법의 핵심범죄들 가운데 단지 집단학살(구 독일형법 제220a조!)만 1954년부터 국제형법의 핵심범죄로 이해되었고, 이는 집단학살협약의 지침을 국내법으로 이행한 것이었다. 반인도범죄와 관련해서는 특별한 범죄구성요건이 존재하지 않았다. 전쟁범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독일연방공화국은 이미 1954년에 제네바조약을 비준하였고, 이로써 원래는 이 조약에 위반한 중대한 범죄행위들을 처벌하기 위한 형벌규정을 공포해야 할 의무가 있었음에도 전쟁범죄에 대한 구성요건을 규정하지 않았다.
국제형법을 독일민주공화국 국가범죄에 적용하는 것은 독일 통일의 시점에 독일연방공화국 자체가 국제형법을 단지 불완전하게 독일형법전에 이행하였었다는 이유에서 이미 고려의 대상이 되지 못하였다. 이는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독일연방공화국이 1998년 로마에서 열린 조약국회의에서 국제형사재판소의 설립을 가장 강력하게 지지한 국가 가운데 하나였고 2002년에 국내법으로 국제형법전을 발효시킨 국가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놀라운 것일 수 있다. 하지만 독일연방공화국이 국제형법에 대해 취했던 태도는 항상 그렇게 긍정적이지만은 않았었고, 오히려 “거부로부터 참여로”라는 공식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국제형법의 탄생시점으로 여겨지는 1945/46년 뉘른베르크 주요전범재판 이후에 독일연방공화국에서 벌어진 공개적 논쟁은 곧바로 승자사법이라는 비난과 소급효금지원칙 위반 여부에 집중되었다. 1950년대 독일연방공화국에서 지배적인 입장은 다음과 같이 형성되었다. 즉 사람들은 “이른바 전쟁범죄자들에 대한 사면과 독일 군인에 대한 폄하를 종료”하라고 요구하였고, “동맹국 군사재판의 피해자”에 대해 논하였을 뿐, 집단살해범죄와 전쟁범죄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독일은 연합군에 의해 4개의 점령지역으로 분할되었고, 그 점령지역에 대한 행정은 각각 승리한 연합군의 국가가 담당하였다. 동쪽의 점령지역은 소비에트연합이 그에 대한 행정을 담당하였다. 동독 지역에서 사회주의 국가의 설립은 전쟁 직후인 이 시기에 소련 측에 의해 아직 최소한 가까운 장래에 설립할 것으로 계획되지는 않았을지라도, 행정과 사법의 핵심적 직책은 노선에 충실한 독일공산당(KPD) 당원이 맡았으며, 독일공산당 자체가 독일사회민주당(SPD)과 함께 독일사회주의통일당(SED)으로 융합되었다. 수많은 개인 산업체들이 국유화되었고 계획경제가 도입되었다. 냉전이 심화되면서 서부동맹국은 “세 구역”(미국, 영국, 프랑스의 점령지역)을 통합하여 서독일로 만드는 것이 더 이익이 된다고 판단하였다. 이러한 서독일 국가의 기능은 “공산주의에 대항하는 진지”, 즉 소련의 팽창정책에 대항하는 진지를 구축하는데 있었다. 1949년 5월 독일연방공화국(구서독)을 건설하기 위한 방식은 서부의 점령지역을 하나로 묶는 방식으로 이루어졌고, 이에 대항하여 1949년 10월 독일민주주의 공화국(구동독)이 건립되었다.
이와 달리 독일민주공화국은 건국 초기부터 뉘른베르크 원칙들을 승인하였고, 이를 기초로 나치범죄자들에 대해 수많은 절차를 진행시켰다. 하지만 특히 1950년대 초기에 이런 절차들에서 종종 체계적이고 매우 심각한 인권침해가 이루어졌다. 특히 1950년의 “발트하이머 재판들”이 이에 해당한다. 이 재판들에서 독일 영토 내 소재한 소련군 포로수용소에 수감되었던 3,000명 이상의 전쟁포로들이 보통은 단지 몇 분간 진행된 간이절차를 통해 유죄판결을 선고 받았다. 범죄에 대한 입증은 매우 형편없었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전체적으로 33건의 사형(그 중 24건은 집행되었다)과 146건의 종신자유형이 선고되었고, 1,901건에서 15년 이상 25년 이하의 자유형이 선고되었다. 이후 1968년 독일민주공화국 형법전에서는 하나의 장 전체(그것도 매우 상징적으로 각론의 첫 번째 장)가 “독일민주공화국의 주권, 평화, 인류와 인권에 대한 범죄”를 규정하였다. 하지만 이 장의 규범들은 일반적으로 인정된 국제법상의 범죄들과 매우 달랐다. “반인도범죄”는 독일민주공화국 형법전 제91조에 규율되어 있기는 하였지만, 실체법적으로는 “집단학살”에 상응하였다.
이런 배경을 고려해 보면 체제의 생존을 위한 억압적 장치의 의미가 분명해진다. 가벌성의 한계가 없는 정치적 범죄구성요건과 극도로 가중된 법정형을 규정한 대량의 안전입법이 제정되기 시작했었는데, 이런 경향을 뚜렷이 알 수 있는 예로는 1950년 공산주의진압법을 들 수 있다. 이 반공법은 예를 들어 단지 금지된 공산주의당의 당원만을 겨냥했던 것이 아니고, 공산주의적 목표를 지지하고 방어하거나 후원하는 모든 사람들을 겨냥했다. 결과적으로는 인종주의 체제에 반대하는 모든 움직임들이 “공산주의적”이라고 낙인찍혔다. 이 법은 예를 들어 통행증법의 폐지를 요구했던 목사들뿐만 아니라, 인권과 보편적 선거권을 쟁취하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들에게도 적용 되었다. 이런 정책 가운데 가장 파급효과가 컸던 변화는 경찰폭력에 대한 제어장치를 제거해버린 것이었다. 형사처벌은 공개적인 공판절차가 필요하였으므로, 이 과정에서 정부에 대한 평판이 실추되거나 패배할 위험에 처하곤 했다. 법률과 형사절차에 의존하는 것이 정부에 부담이 되자, 1960년 초부터 법원의 통제를 받지 않고 행정부가 자유 박탈을 부과할 수 있는 전권을 부여받았고, 이는 점차 확대되었다. 사람들이 갑자기 사라져 버리고, 어딘가에서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독일민주공화국에서 시작된 절차를 지속시키려 한 노력들은 결과적으로 찬성할만하다. 변모한 독일민주공화국 사법은 형법전의 적용을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였으며, 이를 통해 국가권력자들에 대한 형법적 특권에 종지부를 찍었다. 변모한 독일민주공화국의 법실무를 이어 받아 이미 개시된 절차를 지속시키는 과정에서 독일연방공화국의 사법도 법적으로 일관성 있게 이를 처리하였다. 동시에 이를 통해 독일민주공화국 말기에 검찰의 활동에서도 드러난 독일민주공화국 시민들의 분명한 정치적 의지가 통일의 전환기를 넘어 지속되는데 기여하였다. 하지만 여기서 간과되어서는 안 될 점은 이러한 발전과정은 독일 통일 과정의 특수성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중대한 인권침해행위에 대한 처벌 요구와 달리 직권남용과 선거조작의 영역에서 이루어진 형사소추의 연속성은 일반화될 수 없고, 다른 나라의 과거청산작업에 수용되는데 한계가 있다.
형사소추의 연속성이라는 지도원칙에 근거했던 절차들에서는(직권남용, 부패, 선거조작) 진실규명 기능이 강조되었다. 바로 직권남용과 부패 및 선거조작에 대한 의혹들이 독일민주공화국 말기 시민운동의 중요한 추동력을 제공하였다. 1989/90년에 동독에서 이런 영역에서 발생한 범죄행위들을 규명하고 처벌했던 것도 바로 이런 의미를 갖고 있었다. 결과를 살펴보면, 선거조작 절차들을 통해 독일민주공화국에서 선거조작이 어떤 구조를 갖고 있었고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몇몇 사례를 통해 밝혀졌다. 이전에는 단지 추측에 그쳤던 것들이 이런 절차들을 통해 입증되었다. 예를 들어 많은 증인들의 진술을 통해 증명된 선거득표율에 대한 “협상”은 유권자의 의지를 냉소적이고 체계적으로 무시했다는 점을 인상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선거조작에 대한 형벌이 상대적으로 낮았다는 점이나 독일연방공화국 선거조작 구성요건의 적용에 관해 법적 의심이 남아 있었다는 점 때문에, 선거조작 재판의 의미가 약화되지는 않았다. 선거조작에서와 마찬가지로 직권남용과 부패의 영역에서도 이전에 단지 추측될 수 있었을 뿐인 행위들이 입증되었다. 이를 통해 이러한 절차들은 전환기뿐 아니라 그 이후에도 시민의 의식 형성에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독일민주공화국이 1968년 형법전에서 규정한 '반인도범죄'는 실체법적으로 무엇에 상응하는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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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과제 해석
task_interpretation독일민주공화국 형법전 제91조에 규정된 '반인도범죄'의 실체법적 의미를 파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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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정보 추출
information_extraction독일민주공화국의 형법 규정과 관련된 문장을 추출한다.
- “반인도범죄”는 독일민주공화국 형법전 제91조에 규율되어 있기는 하였지만, 실체법적으로는 “집단학살”에 상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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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근거 선택
evidence_selection질문에서 요구하는 '반인도범죄'와 '실체법적 상응 관계'가 명시된 문구를 선택한다.
- “반인도범죄”는 독일민주공화국 형법전 제91조에 규율되어 있기는 하였지만, 실체법적으로는 “집단학살”에 상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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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논리 통합
logical_integration문맥에 따르면 독일민주공화국 형법전 제91조의 반인도범죄는 실체법적으로 집단학살과 동일한 의미를 가진다.
- 실체법적으로는 “집단학살”에 상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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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결론 도출
conclusion_formulation독일민주공화국 형법전의 반인도범죄는 집단학살에 상응한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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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답변 생성
answer_generation최종 답안으로 '집단학살'을 제시한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집단학살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독일민주공화국 형법전 제91조에 규정된 반인도범죄는 실체법적으로 집단학살에 상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