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맥 (context)
1986년 전라북도 도립으로 전라북도립국악원이 설립되었다. 전북도립국악원에서는 교육, 공연, 연구 기능을 수행하는 세 개의 기구가 있다. 전라북도립국악원은 창극단·관현악단·무용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창극단은 단장, 지도위원, 단무장, 소품, 수석, 부수석, 단원의 직위를 두고 있다. 전주는 전통적으로 전주대사습놀이를 통하여 판소리 명창을 배출하고 판소리를 향유하는 계층이 두터운 판소리의 중심지였다. 수많은 명창들이 전주대사습에서 소리하는 것을 꿈으로 생각하였다. 전주대사습에서 판소리를 공연할 경우, 배우들이 유난히 긴장을 했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전주의 관객들의 비평적 안목이 높았으며, 좋은 광대에게는 갈채를 보냈지만 실력이 부족한 광대에게는 거침없이 비판했기 때문이었다. 이곳을 통하여 배출된 명창이 서울로 와서 크게 활약하였다. 전라북도립국악원에 창극부를 두어서 전주 창극 공연의 맥을 이어왔다. 1989년 제1회 창극단 공연으로 <심산의 별들>이 전북예술회관에서 무대에 올려졌다. 2000년대에 들어와서 창극부는 창극단으로 승격이 되어 창극을 적극적으로 공연하는 단체로 거듭나게 되었다.
남원의 춘향문화회관을 기반으로 창극을 제작하는 단체로 남원시립국악단이 있다. 남원시립국악단이 발족되기 이전까지 남원에서 본격적으로 창극을 만들거나 공연한 적은 없었다. 1950년대 이래, 남원국악원은 연원이 오래된 국악교육기관이었다. 강도근 명창이 남원국악원에서 후학들을 길러내고 있었는데, 1981년 시립국악원으로 승격되면서 공식적인 교육기관이 되었다. 1995년 3월, 남원시립국악원은 남원시립국악단으로 새롭게 출발하게 된다. 남원이라는 지역이 <춘향전>과 <흥보전>의 무대가 되고 있기 때문에 이 작품을 고정 레퍼토리로 삼아서 상설공연을 하고자 하는 것이 재발족의 큰 의미였다. 이 단체는 광한루에서의 상설공연을 목적으로 기악, 무용, 창악을 아우르면서 새롭게 구성되었다. 첫해에 15명 정단원으로 출발하여 창극 <흥부전>을 공연하였으며, 이듬해 창극 <춘향전>을 공연 하였다. 1997년에 35명의 정단원을 확보하게 되었다. 이 해에 <춘향가>와 <흥부가>를 공연하였다. 2002년부터 1년에 1회 창작창극을 제작하여 공연해오고 있다. 현재 남원시립국악단은 단장, 기획실, 연수부, 창악부, 기악부, 무용부로 편성되어 있다.
국립민속국악원은 1992년 남원에서 개원하였다. 개원한지 20년만에 민속국악원이 이루어낸 창극에 관한 성취는 주목할만하다. 민속국악원이 맡아서 장려해야할 중요한 소임은 판소리와 창극기관으로 특성화하는 것이었다. 한때 남원민속국악원의 정체성에 관한 혼란과 갈등을 겪었지만 애초의 설립취지에서부터 판소리와 창극을 전적으로 특성화하려는 목표가 있었다. 민속국악원에서 제작해온 창극은 단원들의 창극에 대한 사랑과 책임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민속국악원은 완성도 높은 창극을 공연하는 공연단체로 자리잡았다. 민속국악원은 네 개의 단체로 구성되어 있다. 민속국악원 창극단, 기악단, 무용단, 사물단이 한편의 완성도 있는 창극을 짜내기 위하여 서로 협조한다. 민속국악원 창극단은 31명, 기악단은 26명, 무용단은 17명, 사물단은 7의 인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남원민속국악원에서는 ‘춘향’, ‘흥보’, ‘변강쇠’까지 주요한 판소리 인물을 지속적으로 창극의 소재로 삼아 무대화시켜왔다. 특히 최근 10년 동안 <춘향전>, <흥보전> 등의 완판 창극과, 판소리 오대가를 옴니버스식으로 구성한 <신판놀음>, <오락가락> 등을 무대에 올려, 민속국악원 제작 창극에 일정한 성과를 거둔 바 있다.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허규는 일찍이 판소리를 통해 민속극이 갖는 새로운 연극적 가치를 발견해야 함은 물론이고, 서구의 연극과 우리나라의 현대연극이라 하는 것들이 상실한 연극의 본질과 기능을 되살리는데 우리의 민속극이 큰 몫을 할 것으로 보기도 한다. 초기창극연출을 많이 했던 이진순은 “창극은 무(無)형식이다. 일본의 노(能)나 가부키, 중국의 창희(唱戱)는 무대예술로서 오랜 세월 갈고 다듬어서 전형적인 고유의 형식으로 굳어졌는데 비해, 우리의 창극은 이러한 과정을 겪지 못했기 때문에 전통적인 형식을 갖지 못했다”라고 말한다. 즉, 창극의 양식을 구축하는 전형적인 연기술은 그때나 지금이나 아직 개발되지 못하고 있다. 허규는 1979년 국립중앙극장 소극장에서 국립창극단 제31회 정기공연으로 공연했던 <가로지기 타령>에서 그가 보여주고 싶은 많은 민속들을 보여준다. 허규의 연기는 초기 신파극적인 연기에서 서구연극의 영향으로 사실주의 연기를 위주로 해왔다. 즉, 해방 후 국극의 난립 속에서 신파적인 극성이 강하고 소리가 약화되는 것에 대한 우려로 창극정립운동이 이루어져 다섯 바탕의 판소리를 충실히 살리고, 사실주의 서구극 원리를 통해 프로시니엄 무대극화 하였다.
허규의 연출방향을 보면 철저히 판소리를 창극의 바탕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는 소리도 창극소리가 아닌 판소리의 더늠을 쓰려 하였고, 연기도 판소리의 발림식으로 하려 하였다. 무대까지도 판소리 공연무대와 같은 간소한 무대를 만들려 노력하였다. 그러면서 창극정립의 중심과제로 판소리 전 바탕을 창극으로 만드는 작업에 착수하게 된다. 이는 서구식의 연기술을 지양하고 우리의 몸짓과 창극 언어를 개발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이었다. 1990년대까지 허규의 전성시대를 통해 민속연희적 연기와 표현을 위주로 하던 사실주의 창극은 한마디로 판소리 화법의 확대를 통한 창극의 민속화에 힘쓴 결과, 프로시니엄극장의 한계 속에서 사실주의적 연기가 결합된 미완의 연기양상으로 인상 깊은 업적을 남겼다. 2000년대에 들어 몇몇 오페라 연출가와 뮤지컬 연출가, 연극 연출가들에 의해 창극이 공연되면서 연기양상은 크게 변함이 없이 프로시니엄 극장에 걸맞는 서구적 사실주의 연기를 해오고 있다. 이는 아직 창극만의 고유한 연기술, 극술이 존재하고 있지 않음을 보여주는 단서이다.
음악극인 창극은 연극과 마찬가지로 연출가의 역할이 중요하다. 20세기 전반기의 창극에는 연출이라는 개념이 특별히 존재하지 않았다. 단체의 대표자가 지시한 대략의 동선에 배우들의 움직임에 의존하였다. 1960년대 국립창극단이 창단되면서 본격적인 연출시스템이 도입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창극은 연출가의 배경에 따라 작품의 특색이 정해지는 경향이 있다. 창극은 중국의 경극이나 일본의 가부키처럼 무대와 연기와 연출이 일정한 형식으로 양식화되어 계승 발전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한국적인 양식미로서의 창극 형식의 창조는 하나의 예술장르를 창조하는 것에 비견되고 어려운 작업이다. 국립창극단은 지금까지 주로 외부 전문 연출가를 초빙하여 왔다. 장르 배경에 따라, 즉 마당극 연출가, 서양극 연출가, 오페라 연출가, 뮤지컬 연출가에 따라 창극 작품의 경향이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지금까지 다양한 연출적 성향에 의한 양식적 시도가 창극 양식을 정립하기 위한 실험이었다면, 향후에는 이런 다양한 실험을 지휘할 전문 연출가 양성이 필요하다.
판소리와 달리 여러 극중 인물이 한 무대에서 활동하는 창극의 경우, 등장인물들의 활동무대에 대한 고려가 필수적이다. 창극정립위원회의 무대배경 경향은 소담한 분위기를 지향하고 있었다. 판소리가 탁 트인 공간에 멍석을 깔고 공연을 하거나 뒤에 병풍을 치는 정도만의 배려를 함으로 써 오히려 상상의 폭을 넓혔던 것과 마찬가지로, 판소리를 그대로 살리려는 노력은 자연히 창극무대를 간소하고 추상적이 되도록 이끌었다. 허규는 첫 연출 작품인 <심청가> 공연에서 십장생도병풍이나 기와집 병풍을 사용하여 판소리 무대를 연상토록 하였다. 하지만 점차 판소리와 창극이 다르다는 것을 의식하면서 등장인물이 활동하는 공간으로서의 기능을 살리는 무대를 지향하게 된다. 그 결과 58회 공연인 <춘향전>에서는 설명적 장치를 과감히 생략하고 무대 공간을 상징적으로 설정함으로써 무대를 자유롭게 활용하고, 무대의 변화를 용이하게 하였다. 또한 66회 <춘향전>공연에서는 마당극적 요소를 가미하고 장면전환으로 인한 극적 단절감을 피하기 위해 망사막처리와 기타효과를 이용했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남원시립국악단이 재발족될 당시 가졌던 큰 의미는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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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과제 해석
task_interpretation남원시립국악단의 재발족 목적과 그에 따른 의미를 파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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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정보 추출
information_extraction남원 지역의 특성과 남원시립국악단의 재발족 배경에 관한 정보를 추출한다.
- 남원이라는 지역이 <춘향전>과 <흥보전>의 무대가 되고 있기 때문에
- 이 작품을 고정 레퍼토리로 삼아서 상설공연을 하고자 하는 것이 재발족의 큰 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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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근거 선택
evidence_selection재발족의 의미를 직접적으로 설명하는 문장을 선택한다.
- 이 작품을 고정 레퍼토리로 삼아서 상설공연을 하고자 하는 것이 재발족의 큰 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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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논리 통합
logical_integration남원 지역이 <춘향전>과 <흥보전>의 배경이라는 점과, 이를 고정 레퍼토리로 삼아 상설공연을 하려 했다는 점을 결합한다.
- 남원이라는 지역이 <춘향전>과 <흥보전>의 무대가 되고 있기 때문에
- 이 작품을 고정 레퍼토리로 삼아서 상설공연을 하고자 하는 것이 재발족의 큰 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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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결론 도출
conclusion_formulation남원 지역의 특색인 <춘향전>과 <흥보전>을 고정 레퍼토리로 삼아 상설공연을 하고자 했던 점이 재발족의 핵심 의미임을 도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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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답변 생성
answer_generation질문에 대한 최종 답변을 작성한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남원 지역이 <춘향전>과 <흥보전>의 무대라는 점을 활용하여, 해당 작품들을 고정 레퍼토리로 삼아 상설공연을 하고자 했던 것이 재발족의 큰 의미이다.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남원시립국악단은 남원이 <춘향전>과 <흥보전>의 무대가 되고 있기 때문에 이 작품들을 고정 레퍼토리로 삼아서 상설공연을 하고자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