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맥 (context)
맛 좋은 풍천장어라 할지라도 지금과 같은 대중적인 별미나 별식 같은 구이나 탕으로 먹지는 않은 듯하다. 지역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아도 풍천장어를 푹 고아서 보양식 정도로 먹었다는 것이다. 신재효(申在孝, 1812∼1884)의『 퇴별가(토끼전)』 완판본에서도 미뤄짐작할 수 있는데‘ 용왕이 병이 나서 임금 자리에 높이 누워 여러 날 신음하여 용의 소리로 우는구나. 수중의 온 벼슬아치들이 정성으로 구병할 때… 양기가 부족한가 해구신도 드려보고 폐결핵을 초잡는지 풍천장어 대령하고’라는 대목을 보면 풍천장어를 약리음식 정도로 먹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약리음식이던 풍천장어가 장어의 대명사로 명성을 얻게 된 것은 1970년대부터로 동백나무숲이 병풍처럼 감싸 안은 천년고찰 선운사禪雲寺 덕택이라 할 수 있다. 당시 선운사 연기교 옆의‘연기식당’과 길 건너 선술집 형태의‘신덕식당’등에서 장어구이를 처음 팔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풍천장어를 구이나 탕 같은 전문 메뉴로 판 것도 아니고‘ 끼워넣기’식의 메뉴 정도여서 이때만 해도 풍천장어의 풍미와 진가가 알려지지 못했다. 풍천장어에 대한 본격적인 명성은 1990년 대 들어 장어가 스테미너 식품으로 각광받기 시작하고 선운사가 전국적인 관광지로 알려지면서 국민보양 음식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47년 전인 1968년, 육군본부에는 정부 방침에 따라 한글타자기가 새로 보급됐다. 수정된 자판 기준에 따라 네벌식 타자기가 들어왔다. 군대나 상업고등학교에서는 수정된 KS규정인 네벌식 자판을 가진 타자기로 교육을 받게 됐다. 그러나 ROTC 출신인 이소위는 대학생 때 시중에 가장 많이 보급된 세벌식 타자기로 타자를 배운 것이다. 영문 자판은 한글 세벌식이나 한글 네벌식이나 같으므로 영문 서류는 이소위가 대신 쳐줄 수 있었다. 60~70년대에는 이와 비슷한 상황이 많이 있었다. 당시 회사에서는 공병우 세벌식 타자기와 김동훈 오벌식 타자기의 두 종류를 사용했다. 빠른 속도와 정확성을 자랑하는 세벌식 자판과 속도는 느리지만 글꼴 모양이 예쁜 오벌식 자판이 용도에 맞추어 사용됐으므로 상업고등학교에서도 두 한글자판을 모두 교육시켰다.
요새는 갤럭시폰과 아이폰의 한글이 같은 것이 당연하다. 한국산 노트북과 중국산 노트북의 한글코드도 같다. 맥컴퓨터 한글과 삼성컴퓨터 한글코드도 같다. 삼성컴퓨터 한글과 LG컴퓨터 한글이 같다. 그러나 1980년대는 맥컴퓨터 한글과 삼성컴퓨터 한글이 달랐고 삼성컴퓨터, 현대컴퓨터, 금성(LG)컴퓨터, 삼보컴퓨터, 세운상가 컴퓨터 한글이 각기 달랐다. ‘어느 컴퓨터나 어떤 단말기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완전한 한글을 출력할 수 있는 한글코드 제정’이 목적이었으므로 ‘디지털 시대의 한글 살리기 운동’의 성공은 개인용 컴퓨터는 물론 스마트폰에서도 현대 한글 음절 1만 1,172자를 모두 표현할 수 있게 하였다. 매일 더 진보된 모습으로 IT기기가 나타나도 우리는 수천 년 활자 역사가 있기에 콘텐츠가 무궁무진하다는 장점이 있다. 유구한 역사성을 지닌 우리 한글 활자가 스마트 모바일 기기의 지원 등 다양한 힘을 얻는다면 막강한 경쟁력을 가지게 될 것이다.
이 철학이 ‘홍익인간 재세이화弘益人間 在世理化’라는 단군의 건국 이념이다. 이는‘사람 안에 하늘과 땅과 사람이 모두 들어있다'는 조화와 상생의 천지인天地人사상을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생활철학으로 구체화 한 것이다.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하리라’라는 단군의 뜻은 단순한 통치이념이나 지배 이데올로기가 아니었다. 한민족이 처음 나라를 세웠을 때 “이렇게 한번 살아보자. 다같이 이런 나라를 한번 만들어 보자”며 품었던 민족의 첫 마음, 우리 선조들이 공동체와 국가, 그리고 개인의 삶을 통하여 실현하고자 했던 염원과 이상,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에 대한 우리 조상들의 대답, 그들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했던 삶의 가치와 존재 이유가 바로 홍익이었다. 한편 『태백일사』 「한국본기」중 에 오훈五訓이 있는데, 오훈의 다섯 번째 항목인‘겸화불투謙和不鬪’는 겸손하고 화복하여 싸우지 아니한다고 이르고 있다.
‘누구나 태양과 같이 밝은 본성을 지니고 있어 사람 안에 하늘과 땅과 사람이 하나로 녹아 있다. 본심본태양앙명本心本太陽昻明 인중천지일人中天地一’이라는 문구가 최치원 선생이 한자로 번역한『천부경』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처럼 우리 민족은 고대로부터 사람은 누구나 태양처럼 밝은 본성, 신성, 얼을 지닌 존재로 보았다. 사람이 본성을 깨달으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게 되고, 본성의 이치에 따라 세상을 두루 이롭게 하며 얼을 키우는 것을 삶의 목적으로 두었다. 그리하여 어린이는 얼이 어리기 시작한 상태, 얼이 덜 성장한 사람을 말하고, 어른은 얼이 큰 사람, 어르신은 얼이 커서 신과 같은 사람을 뜻한다. 이는 육체가 나이 들어 그냥 늙은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죽는 순간까지 계속 성장하는 존재라는 가르침을 담고 있다. 이런 문화 속에 자연스레 어린이는 어른과 어르신을 공경하고 겸손한 예를 갖추어야 함을 알게 되는 것이다.
겸손은 예로부터 심신의 수양과 대인관계에서 갖추어야 할 덕목으로 중요시해왔다. 다른 사람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낮추는 것, 무조건 자신을 깎아내리거나 모자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타인에 대한 존중에 바탕을 둔 것이 바로 겸손이다. 존중하는 마음에서 겸손이 자라고, 겸손에서 예의와 질서가 생기며, 예의와 질서를 통해 공동체가 유지된다. 겸손은 공동체를 유지하는 기본 토대가 되는 것이다. 우리 민족은 아버지를 소개할 때 ‘내 아버지’가 아닌 ‘우리 아버지’라고 한다. 우리가 영어나 서양의 언어를 배울 때도 이해하기 어려운 게 언어적으로 미국은 항상 ‘my father’라고 한다. 우리는 항상 ‘우리’라는 말을 쓴다.‘ 우리가 잘 살아야 돼’라고 해야지 내가 잘 살아야 돼’하면 문제가 된다. ‘우리’라는 굳건한 공동체 의식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우리 민족의 공동체 의식은 국채보상운동이나 IMF 금 모으기 운동, 태안기름유출 사건으로 발휘되었고 대한민국의 저력으로 세계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일찍이 노자(老子, BC 570~479)는 『도덕경』제66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강과 바다가 온갖 계곡 물의 왕이 될 수 있는 까닭은 / 잘 낮추기 때문이다 / 그러므로 온갖 계곡 물의 왕이 될 수 있다 / 이러하기 때문에 백성들 위에 서고 싶으면 / 반드시 자신을 낮추는 말을 써야 하고 / 백성들 앞에 서고 싶으면 / 반드시 자신을 뒤로 해야 한다’ 노자는 강과 바다가 자신을 낮춤으로써 자기보다 훨씬 높은 곳에서 흘러오는 계곡 물의 왕 노릇을 한다는 사실을 말했다. 이러한 자연의 원리와 마찬가지로 성인은 자신을 낮추는 태도로 백성을 통치할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을 낮추라는 노자의 말은 오늘날에도 그대로 유효하다. 더욱 이 현대사회는 갈수록 다원화되고 복잡해지고 있다. 게다가 모바일시대가 낳은 소셜네트워크 서비스(SNS)의 급격한 확산은 이제까지의 수직적 위계사회를 수평적 네트워크 사회로 변모시켜 놓았다. 과거의 사회는 정치적 권력이나 경제적 부에 따라 질서가 구축되는 수직적 위계사회였다. 그 사회의 의사결정은 상층에 속해있는 사람들에 의해 전적으로 이루어졌고 그것이 아래로 전달되는 하향식 구조였다.
맹사성이 처음부터 그토록 겸손했던 것은 아니다. 맹사성이장원급제하여 지방의 군수로 부임했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그는 근처의 무명 선사를 찾아 스님에게 질문했다. “스님, 이 고을 수장으로 제가 최고로 삼아야 할 좌우명이 무엇이라 보오?”그러자 스님은“착한 일 많이 하시면 됩니다.”라고 답했다. 너무나 당연한 대답에 맹사성은 “아니, 그것은 삼척동자라도 다 아는 사실이 아니오? 이런 말을 들으려고 찾아온 것은 아니외다.”라며 버럭 화를 냈다. “녹차나 한 잔 하고 가시구려.” 그는 못 이기는 척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스님은 찻잔이 넘치는데도 계속 차를 따르고 있었다. “스님, 찻물이 넘쳐 방바닥이 다 젖습니다.” 맹사성이 소리치자 스님은 이렇게 말했다. “찻물이 넘쳐 방바닥을 적시는 것은 아시면서, 지식이 넘쳐 인품을 망치는 것은 어찌 모르시오.” 이 한 마디에 맹사성은 그만 얼굴을 붉히고 말았다. 그는 황급히 방문을 나서다 문틀에 그만‘쿵’하고 머리를 부딪쳤다. 스님이 빙그레 웃으며 한 마디 했다. “고개를 숙이면 부딪치는 법이 없지요.” 머리를 한 대 더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이 겸양지덕을 맹사성은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았다. 그래서 그는 명재상이 될 수 있었다.
지난 해 한국을 다녀가면서 우리 국민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 시대 겸손한 리더십의 전범이라 할 만하다. 미국 ≪타임≫지는 2013년의 인물로 프란치스코 교황을 선정했는데‘ 겸손한 자세’로 변화의 물결에 동참해 새로운 천주교 수장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실제로 프란치스코 교황은 선출 직후부터 교황의 권위 같은 것은 던져버리고 몸을 낮춰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는 2013년 열린 교황 즉위 미사 강론에서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모든 피조물, 특히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날 미사에서 교황은 차에서 내려 병자를 축복하고, 경호원이 데려온 아기에게 입을 맞추는 등 성경 속 예수를 떠올리는 모습을 보였다. 평생을 약하고 어려움에 처해있는 사람들에게 소탈하고 겸손하게 다가갔던 프란치스코 교황의 모습은 지난해 한국을 방문했을 때도 이어졌다. 공항에 환영 나온 많은 군중들 속에서 세월호 유족을 만나자 손을 잡아주며 위로의 말을 건넸고 광화문 시복미사 때는 차에서 내려 유족의 손을 잡아주어 세계의 이목을 모았다.
결국 겸손한 리더는 소통을 할 줄 알아야 한다. 자신의 생각에 대해 다른 사람들은 어떠한 의견을 갖고 있는지를 가슴을 열고 주고받아야 하고, 그 같은 쌍방향 소통의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리더들 가운데는 자기 얘기만 열심히 해놓고는 ‘열심히 소통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소통에 대한 잘못된 이해이고, 겸손하지 못한 자세이다. 소통은 자신의 생각을 타인에게 주입하려는 것이 아니라, 피드백을 통해 자신을 성찰하고 고쳐나가는 지점까지 이를 때 비로소 의미가 있는 것이다. 시대는 권위와 격식에서 벗어난 겸손의 리더십을 요구하고 있다. 세상이 달라졌는데 과거시대의 고리타분한 고정관념에만 갇혀 있는 리더십은 사람들의 동의를 얻지 못한 채 도태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어느 곳이든 리더십이라는 것은 사람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고, 그 리더가 제 역할을 할 수 없음은 당연한 얘기이다. 권위에만 의존하여 군림하고 다스리려는 리더십으로 사람의 마음을 과연 얻을 수 있을까? 변화된 사회에서 진정 힘 있는 것은 제왕적 리더십이 아니라 자기를 낮추는 겸손한 리더십이다. 자기를 낮출 때 사람들의 마음이 그 낮은 곳으로 흘러들어올 것이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맹사성이 무명 선사로부터 받은 가르침 중, 지식이 넘쳐 인품을 망치는 것을 경계하라는 말과 연결되어 그가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게 된 덕목은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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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과제 해석
task_interpretation맹사성이 선사에게 받은 가르침의 내용과 그 결과로 얻게 된 평생의 좌우명을 파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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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정보 추출
information_extraction맹사성이 무명 선사를 찾아가 질문을 던진 상황과 선사의 답변 내용을 추출한다.
- 맹사성이장원급제하여 지방의 군수로 부임했을 때의 일이다.
- 스님은 찻잔이 넘치는데도 계속 차를 따르고 있었다.
- 찻물이 넘쳐 방바닥을 적시는 것은 아시면서, 지식이 넘쳐 인품을 망치는 것은 어찌 모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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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근거 선택
evidence_selection선사의 꾸짖음 이후 맹사성이 깨달음을 얻고 좌우명으로 삼았다는 문장을 선택한다.
- 이 한 마디에 맹사성은 그만 얼굴을 붉히고 말았다.
- 이 겸양지덕을 맹사성은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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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논리 통합
logical_integration선사의 가르침(지식이 인품을 망치지 않도록 낮추는 것)이 맹사성에게 '겸양지덕'이라는 구체적인 덕목으로 귀결되었음을 연결한다.
- 이 겸양지덕을 맹사성은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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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결론 도출
conclusion_formulation맹사성이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은 것은 겸양지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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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답변 생성
answer_generation질문에 대한 최종 답을 작성한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겸양지덕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맹사성이 무명 선사의 꾸짖음을 통해 지식보다 인품을 중시하며 자신을 낮추는 태도의 중요성을 깨닫고, 이를 겸양지덕이라는 좌우명으로 삼았음을 확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