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공데이터 · 도서자료 기계독해

강릉의 풍부한 관광 자원과 역사적·문화적 전통에 대한 소개 doc_id PCY_201707270408252601_4

주제 (main_topic)
강릉의 풍부한 관광 자원과 역사적·문화적 전통에 대한 소개
답변 불가 (is_impossible)
False
문맥 (context)
안목항에는 바다가 훤히 내다보이는 카페들이 줄지어 늘어서 색다른 정취를 자아낸다. 해변이라고 하면 으레 횟집이 늘어선 것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커피자판기가 줄지어 있던 안목 해변에 커피 전문점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10여 년 전. 손으로 직접 커피를 추출하는 핸드드립 방식 커피 전문점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인구 22만 명의 강릉에 커피전문점만 300여 개가 넘는 커피의 도시가 됐다. 해변 카페에 들러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푸른 바다를 마주하고 있자니 강릉이 커피도시로 자리 잡게 된 데는 낭만의 상징인 바다가 가깝다는 지리적인 특징도 크게 한몫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푸른 바다를 앞에 두고 즐기는 커피는 다른 곳에서는 즐길 수 없는 또 다른 풍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최근엔 오로지 커피를 즐기기 위해 강릉의 커피거리를 찾는 이들도 많아졌다. 종가밥상을 물리고 다시 경포호수를 따라 바우길을 걷다보면 예사롭지 않은 박물관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참소리 축음기 박물관·에디슨 사이언스 뮤지엄’이다. 이곳은 강릉에 놀러왔다가 의례적으로 들르는 곳이 아닌 강릉에 왔다면 반드시 들려야 할 박물관이다. 이곳에는 에디슨의 발명품 1,500여 점이 전시돼 있어 세계 최대를 자랑한다. 1877년 에디슨이 발명한 최초의 유성기 ‘틴호일’, 1889년 제작된 ‘클라스 엠’ 등 희귀 음향기기도 세계에서 가장 많다. 뿐만 아니라 축음기 이전의 소리통 등 세계 60여 개국에서 모은 각종 진귀한 소리명품들이 전시돼 있다. 안으로 들어서면 호두나무 몸체와 시계가 부착돼 있는 높이 99인치의 음악 상자 폴리폰(1850년·독일)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데, 보는데 그치지 않고 해설자의 설명과 함께 음악까지 직접 듣다보면 새삼 소리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된다. 또한 에디슨이 발명한 세계 유일의 극장용 영사기, 미국의 토머스 제퍼슨에 의해 기초된 독립선언서를 인쇄했던 당시의 등사기 등을 보노라니 저절로 지혜와 역사의 샘으로 쏙 빠져든다. 강릉향교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구조이다. 관학인 향교는 크게 제향공간과 강학공간으로 나뉜다. 제향공간(祭享空間)은 공자를 모신 대성전을 중심으로 양쪽에 공자의 제자와 우리나라의 성현을 모신 동무와 서무가 있다. 강학공간(講學空間)은 강의실인 명륜당과 학생들의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가 있다. 강학공간과 제향공간의 위치에 따라 향교의 구조는 전묘후학(前廟後學), 전학후묘 그리고 병립식(竝立式)이 있다. 이들 가운데 제향공간인 묘(廟)가 강학공간인 학(學) 보다는 상위에 있다. 향교가 건립되는 지형에 의해 그 위치가 결정된다. 일반적으로 평지일 경우는 앞쪽이 상위인 반면 경사지일 경우는 높은 뒷쪽이 상위이다. 따라서 평지 향교일 경우는 전묘후학의 구조이며, 경사지 향교일 경우 전학후묘의 구조이다. 화부산을 배경으로 경사지에 건립된 강릉향교는 상위의 제향공간이 뒤쪽 높은 곳으로 가고 강학공간은 앞쪽 낮은 곳에 자리한 전학후묘의 구조이다.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로(旅路)는 관동지방이라 했다. 국토의 등뼈를 이루고 있는 태백산맥과 망망한 동해가 펼쳐내는 풍광은 절경 아닌 곳이 없기 때문이다. 관동팔경은 아름답기로 이름난 관동의 경치 중에서도 특히 빼어난 여덟 곳의 명승지를 뽑아 이름 붙인 곳이다. 지금은 휴전선이 가로막혀 갈 수 없는 통천의 총석정과 고성의 삼일포, 간성의 청간정, 양양의 낙산사, 강릉의 경포대, 삼척의 죽서루, 울진의 망양정, 평해의 월송정이 관동팔경에 속한다. 이들 관동팔경은 가는 곳마다 정자나 누정이 자리 잡고 있어 옛 부터 많은 문인들이 찾아와 풍류를 즐기고 빼어난 경치를 시로 읊었으며 화가들은 화폭에 남기기도 했다. 관동팔경 중에서도 제일 아름답다는 경포대를 품고 있는 바우길은 백두대간 산맥에서 바닷가까지 이어지는 길이다. 강릉의 진면목을 느낄 수 있는 길로, 이 길 위에 서면 누구나 잠시 복잡한 마음 근심을 다 내려놓게 된다. 대관령에서 시작되는 바우길은 18개 구간, 350㎞의 길로 이어진다. 이중 거울처럼 맑은 경포호수를 품은 5구간(16㎞)은 동해의 정취를 물씬 느낄 수 있는 코스다. 5구간의 초입, 안목항에 들어서면 은은한 커피향이 먼저 반긴다. 강릉에는 하늘로 쭉쭉 뻗은 금강송이 숲을 이루고 있는 곳이 많다. 그래서 어딜 가나 솔향기 가득하다. 바닷가 또한 다르지 않다. 안목항을 지나 오솔길로 들어서면 해안길을 따라 울창한 해송 숲이 그늘을 드리우며 시원한 바람을 전한다. 솔숲에서 시원한 소나무 향에 숨을 고르고 연달아 이어지는 아름다운 해안 풍경을 감상하며 느릿느릿 걷다보면 어느새 경포해변과 수면이 거울처럼 잔잔한 경포호수에 닿는다. 사람들은 경포대 하면 흔히 해수욕장을 떠올리지만 사실 그 이름의 원래 주인은 따로 있다. 호숫가 제일의 전망을 자랑하는 정자, 경포대가 그것이다. 관동팔경의 하나로 잘 알려진 경포대는 이처럼 바다가 아닌 호수에 자리 잡고 있다. 잔잔한 호수 너머 바다풍경마저 품고 있는 경포대에는 천 년 전부터 강릉의 풍류가 흘러넘치던 곳이다. 군왕으로부터 무명의 선비에 이르기까지 여기 경포대에 시문을 남긴 이들이 줄을 이었고, 그리고 그 중심에는 경포호의 달밤이 있었다. 경포호수에서는 5개의 달을 볼 수 있다 하여 시인 묵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는데 하늘에 달이 뜨면 바다와 호수, 그리고 술잔과 임의 눈동자에도 똑같은 달이 뜬다는 말이다. 이 말에 마음이 동해 보름달이 뜬 경포대에 올라 술잔을 펼쳐놓고 다섯 개의 달을 기다려본 적이 있다. 특히 연등회를 할 때면 대궐과 도성에 밤새 등을 밝히고 통금을 해제하였다. 조명이 열악하고 통금이 철저했던 시대에 대낮처럼 환한 밤이 열려 있었으니 당시 사람들에게 연등회는 그야말로 비일상적 축제의 날이었던 셈이다. 고려문신 최자(崔滋)가 “수많은 등불이 하늘에 이어져 마치 대낮처럼 밝구나”라고 노래했듯이, 백성들은 야산에 올라 불야성의 도성을 감상하고 마음껏 거리를 돌아다니기도 하면서 다양한 뒤풀이를 즐겼다. 그런데 정월연등회가 시작되기 전부터 이미 민간과 사찰에서는 불 밝힘 풍습이 성행하고 있었다. 『삼국사기』에 신라 경문왕이 대보름날 황룡사에 행차하여 등을 구경하고 백관들에게 잔치를 열어주었다는 기록이 전하며, 민간에서도 이날 불 밝히는 풍습들이 전승되고 있었던 것이다. 대보름연등은 가장 밝고 풍요로운 보름달 아래 불을 환히 밝힘으로써 만월이 상징하는 풍요 와 재생을 지상으로 옮겨놓기 위한 주술적 기원을 담고 있다. 연등회가 다시 2월 보름으로 옮겨간 것은 2월이 본격적인 농사가 시작되는 농경축제의 기간이었을 뿐만 아니라, 이 날이 석가모니의 열반일이라는 점과도 관련이 깊다. 사월 초파일 연등회에 대한 기록은 고려 중기부터 등장해 공민왕대에 이르면 ‘나라풍속에 사월 팔일의 석가탄일이 되면 집집마다 연등하였다’고 하였다. 따라서 고려시대의 국가의례로서 연등회는 정월 연등 또는 2월 연등이었고, 초파일연등은 석가탄일을 맞아 사찰과 민간에서 자연스레 생겨난 것임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 이르면 초파일은 민간의 명절이 되어 연등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놀이와 풍습이 전승되었고, 언젠가부터 ‘연등회’는 ‘초파일’을 일컫는 말이 되었다. 『동국세시기』 등에 따르면, 초파일이면 집집마다 등간(燈竿)을 높이 세워 등을 달고 꼭대기에는 꿩의 깃이나 소나무가지로 장식하였다. 거리에는 가게마다 각양각색의 등이 즐비하였고 등간을 높이 세우려 경쟁하여 구경꾼들이 몰려들었으며, 강이나 바다에 등을 띄우는 유등제(流燈祭) 또한 장관을 이루었다. 아이들은 장대에 종이를 오려붙인 기를 만들어 거리를 돌며 쌀과 베를 구해 연등에 필요한 비용으로 삼았는데, 이를 호기(呼旗)놀이라 불렀다. 호기는 고려시대부터 행한 풍습으로 놀이인 동시에 아이들이 의식공간을 정화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또 이날 느티떡, 볶은 콩, 삶은 미나리 등의 절식을 만들어먹었는데, 부처님의 탄신일에 고기반찬 없이 먹는다고 하여 이를 소반(素飯)이라 하였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강릉향교가 '전학후묘'의 구조를 가지게 된 지형적 이유는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강릉향교의 구조가 '전학후묘'인 이유를 지형적 특징과 연결하여 파악해야 한다.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향교의 구조 결정 원리와 강릉향교의 지형 정보를 추출한다.

    • 향교가 건립되는 지형에 의해 그 위치가 결정된다.
    • 일반적으로 평지일 경우는 앞쪽이 상위인 반면 경사지일 경우는 높은 뒷쪽이 상위이다.
    • 화부산을 배경으로 경사지에 건립된 강릉향교는 상위의 제향공간이 뒤쪽 높은 곳으로 가고 강학공간은 앞쪽 낮은 곳에 자리한 전학후묘의 구조이다.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지형에 따른 구조 결정 원칙과 강릉향교의 실제 지형을 나타내는 문구를 선택한다.

    • 경사지일 경우는 높은 뒷쪽이 상위이다.
    • 화부산을 배경으로 경사지에 건립된 강릉향교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경사지에서는 높은 뒷부분이 상위(제향공간)가 된다는 원칙과 강릉향교가 화부산 배경의 경사지에 위치한다는 사실을 결합한다.

    • 경사지일 경우는 높은 뒷쪽이 상위이다.
    • 화부산을 배경으로 경사지에 건립된 강릉향교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강릉향교는 화부산을 배경으로 하는 경사지에 건립되었기 때문에, 상위인 제향공간이 뒤쪽 높은 곳에 위치하게 되어 전학후묘 구조를 띠게 된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도출된 결론을 바탕으로 최종 답변을 작성한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강릉향교는 화부산을 배경으로 하는 경사지에 건립되었기 때문이다. 경사지에서는 높은 뒷쪽이 상위가 되는데, 강릉향교는 상위인 제향공간이 뒤쪽 높은 곳에 자리하고 강학공간이 앞쪽 낮은 곳에 위치하여 전학후묘의 구조를 갖게 된다.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향교의 구조는 지형에 따라 결정된다는 원칙을 바탕으로, 강릉향교가 화부산 배경의 경사지에 위치하여 상위 공간인 제향공간이 뒤쪽 높은 곳에 배치되었음을 추론하여 답을 도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