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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시기별 목민서의 특징과 변천 과정 및 주요 저술의 구성적 개성 doc_id PCY_201709140316009761_11

주제 (main_topic)
조선 시대 시기별 목민서의 특징과 변천 과정 및 주요 저술의 구성적 개성
답변 불가 (is_impossible)
False
문맥 (context)
18세기에 나온 목민서는 책의 구성이나 성격으로 볼 때 크게 네 계통으로 나누어 살필 수 있다. 각 계통의 책들은 독자성을 가지면서도 앞 시기에 나온 자료가 뒷 시기에 작성된 자료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 이때에 나온 목민서는 그렇게 하여 뒤로 갈수록 보다 충실해진 내용과 체계를 갖추어 갔다. 첫 번째로 들 수 있는 책은 안정복의 「임관정요」다. 이 책은 1757년 안정복이 46세 되던 해 완성했는데, 정어(政語)·정적(政蹟)·시조(時措)의 3편으로 구성되었다. 정어·정적은 중국의 경서와 사서에 나온 지방 행정의 원칙 혹은 사례를 집중적으로 살폈으며, 시조 편에서는 수령이 지방 행정에서 수행해야 할 여러 사항을 정리해 두었다. 조선의 수령 행정과 관련해서 주목해야 할 것은 시조편이라 하겠다. 시조편의 특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지방 운영과 관련하여 볼 때 지방 정치세력의 집합체인 향소(鄕所)의 역할을 중시한 점을 주목할 수 있다. 「목민고」는 지방관에 임명되어 국왕에게 인사를 드리고 임지에 부임할 때부터 지방관을 마무리할 때까지 해야 할 일을 시간의 흐름에 맞추어 일목요연하게 제시했다. 조선의 정치 제도와 관행 속에서 수령이 움직이는 동선(動線)을 포착하고 이 움직임을 시간의 흐름 위에서 배치했다고 할 수 있겠다. 이 점은 다른 목민서와 구별되는 이 책만의 주된 개성이다. 세 번째는 「선각」류이다. 이 계통의 목민서는 18세기 말에 만들어져 유통되기 시작했는데, 「선각」, 「선각록」 등 다양한 이름의 이본이 나타났다. 그만큼 이 책이 널리 유통되며 활용되었다는 증거이다. 여러 이본들은 책별로 조금씩 차이가 나타나지만, 한결같이 「목민심감」의 여러 조항을 참고하는 한편, 이원익의 편지글 그리고 전정(田政)·군정(軍政) 등 실제 행정에서 활용하던 지침 등 세 유형의 자료를 엮어서 편찬한 특징을 보인다. 이 책이 앞의 「목민고」류와는 모습을 달리하는 점이다. 네 번째는 「목민대강(牧民大綱)」이다. 이 자료는 18세기 말, 평안도 감사였던 홍양호(洪良浩)가 저술한 것으로 「경국대전」의 ‘육전(六典)’ 체제에 맞추어 지방 행정의 원칙을 정리했다. 실려 있는 내용은 그렇게 풍부하지 않지만, 18세기 목민서 가운데 구성 상 가장 체계적이다. 여기에 「경국대전」의 체제를 목민서에 도입한 점도 큰 특징이다. 이것은 다른 목민서 계통에서는 찾을 수 없는 이 책만의 고유한 구성 방식이다. 이와 같이 18세기에는 다양한 형태의 목민서가 출현했다. 목민서가 유통된 시간, 각 책의 구성 방식 등이 서로 많이 달랐다. 그 가운데 널리 활용된 책은 「목민고」류와 「선각」류 목민서였다. 「목민고」류가 먼저 형성되고 「선각」류가 뒤늦게 나타났는데, 전자가 조선의 현실을 집중적으로 담고 있다면 후자는 중국 목민서와 조선의 지방 현실을 다양하게 참조했다. 어느 경우든, 18세기 이전의 여러 목민서에 비하면 내용이 풍부하고 체계적이었으며 조선의 현실과 밀착되어 있었다. 15세기에 활용된 중국의 목민서로는 원대 장양호(張養浩)의 「목민충고(牧民忠告)」, 명대 주봉길(朱奉吉)이 편찬한 「목민심감(牧民心鑑)」 등을 거론할 수 있다. 「목민충고」는 이미 1368년(공민왕 17) 진양 목사 민선(閔璿)이 간행하여 고려 사회에 소개된 바 있었는데, 조선 건국 후에도 주목받아 1398년(태조 7) 이신(李愼)이 밀양부에서 간행하여 유포하였다. 「목민심감」이 한반도에 언제 유입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1411년(태종 11)에 경기도 지평(砥平, 현 양평)의 감무(監務) 김희(金熙)가 목판으로 간행하여 보급하였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백성을 가까이 하는[近民]’ 사람이라면 마땅히 이 책을 강독해야 한다는 것이 김희의 판단이었다. 15세기 조선에서 활용된 다른 자료로는 「사사십해(四事十害)」가 있다. 송나라 유학자 진덕수((陳德秀)가 지방관으로 재직하면서 지었던 글들을 저본으로 하여 1459년(세조 4), 정척(鄭陟)의 요청으로 간행했다. 책 제목 ‘사사십해’에서 ‘사사’는 수령이 갖추어야 할 네 가지 도덕성을, ‘십해’는 수령의 업무에서 제거해야 할 열 가지 폐단을 말한다. 「부현관잠(府縣官箴)」 또한 이 시기 목민서로서 읽혔다. 원나라 때 간행되었던 이 책은 진덕수가 동료들에게 이른 「사사십해」에 여러 내용을 덧붙여 담았다. 「사사십해」를 조금 더 확장하여 만든 자료라 할 수 있다. 1459년(세조 5), 정척이 교정하여 읽기 쉽게 만든 뒤, 인쇄하여 중외에 반포하도록 정부에 요청하였다. 정부에서 이 책의 인쇄를 허락했다는 기록이 없고 또 간행한 실물도 확인되지 않아 간행 여부를 확정할 수는 없지만, 「목민심감」과는 또 다른 형태의 책자를 조선의 관료들이 알고 활용하려고 했었던 점은 분명하다. 이들 책 가운데 이 시기 가장 널리 읽힌 것은 「목민심감」이었다. 성종대의 기록에 따른다면, 수령으로 나가는 사람들이 승정원에서 「경국대전」과 함께 이 책을 강론하는 것이 관례를 이루고 있었다. 1476년(성종 7)에는 「목민심감」을 강론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개천군사(价川郡事) 최함(崔涵)의 서용을 불허하기도 하였다. 「목민심감」이 조선 사회에서 인정받아 통용될 수 있었던 것은 목민서로 활용하기에 적절한 요소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16세기가 되면 목민서의 상황은 많이 달라진다. 앞서 나왔던 여러 목민서와는 달리, 조선의 구체적인 현실을 담은 책들이 만들어져 유통되기 시작한 것이다. 16세기 유희춘(柳希春)이 지은 「치현수지(治縣須知)」, 16세기 후반 정철(鄭澈)이 작성하여 활용한 「유읍재문(諭邑宰文)」, 17세기 이성기(李聖基)가 편집한 「청송지남(聽訟指南)」을 거론할 수 있다. 물론 이 무렵 수령의 사법 행정 지침서인 「청송제강(聽訟提綱)」, 「사송유초(詞訟類抄)」 등이 편집되어 유통되고 있었지만 이 책들은 수령의 행정·군정·사법 업무를 두루 포괄하는 목민서는 아니었다. 「치현수지」는 유희춘이 무장(茂長)에서의 수령 경험을 정리하여 만든 것으로, 모두 8조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목민충고」나 「목민심감」에 비하면 체재가 비교적 단순하고 분량이 적은 편이다. 수령이 갖추어야 할 도덕 규범을 ‘율신(律身)’이란 조항으로 정리하고 책의 첫머리에 두어 수령직을 수행함에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수령의 도덕성임을 천명하였다. 「청송지남」은 수령의 재판 업무에 참고했던 자료집인 「사송유취(詞訟類聚)」, 그리고 이 시기의 명 재상 이원익(李元翼)이 그의 조카와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제시한 수령의 수행 지침을 엮어 만들었다. 이미 16세기 후반에 간행되어 활용되고 있던 자료이지만, 「사송유취」를 포함하고 있고, 수령 업무 일반에 관한 이원익의 사적인 편지글을 동시에 엮은 점에서 이 책은 구성상 큰 개성을 지닌다. 행정, 사법, 군정 등 지방 행정과 관련한 권한을 두루 장악하고 있던 수령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내용을 이 책은 제공한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할 내용은 이원익의 편지글이다. 이 편지는 수령이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마음 가짐을 비롯하여, 소송 처리 및 부세 수취 등 수령 행정 전반에 관한 내용을 잡다하게 제시하고 있다. 비록 체계적인 저술의 형식을 취하지 않았지만 이 편지는 지방관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내용을 집약하고 있었고, 또 조선의 현실 속에서 수령의 역할을 고려한 내용으로 실제 활용할 수 있는 요소도 많이 있었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18세기 목민서 중 「목민고」와 「선각」류가 널리 활용되었던 이유와 각 책의 특징을 비교하여 설명하시오.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18세기 목민서 중 널리 활용된 「목민고」류와 「선각」류의 공통점(활용성)과 차이점(특징)을 비교 분석한다.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문맥에서 「목민고」와 「선각」류에 관한 정보를 추출한다.

    • 그 가운데 널리 활용된 책은 「목민고」류와 「선각」류 목민서였다.
    • 「목민고」는 지방관에 임명되어 국왕에게 인사를 드리고 임지에 부임할 때부터 지방관을 마무리할 때까지 해야 할 일을 시간의 흐름에 맞추어 일목요연하게 제시했다.
    • 「목민고」류가 먼저 형성되고 「선각」류가 뒤늦게 나타났는데, 전자가 조선의 현실을 집중적으로 담고 있다면 후자는 중국 목민서와 조선의 지방 현실을 다양하게 참조했다.
    • 여러 이본들은 책별로 조금씩 차이가 나타나지만, 한결같이 「목민심감」의 여러 조항을 참고하는 한편, 이원익의 편지글 그리고 전정(田政)·군정(軍政) 등 실제 행정에서 활용하던 지침 등 세 유형의 자료를 엮어서 편찬한 특징을 보인다.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비교를 위해 「목민고」의 시간적 배치 특징과 조선 현실 반영 측면, 그리고 「선각」류의 자료 구성 방식과 참조 범위를 선정한다.

    • 조선의 정치 제도와 관행 속에서 수령이 움직이는 동선(動線)을 포착하고 이 움직임을 시간의 흐름 위에서 배치했다고 할 수 있겠다.
    • 전자가 조선의 현실을 집중적으로 담고 있다면 후자는 중국 목민서와 조선의 지방 현실을 다양하게 참조했다.
    • 「목민심감」의 여러 조항을 참고하는 한편, 이원익의 편지글 그리고 전정(田政)·군정(軍政) 등 실제 행정에서 활용하던 지침 등 세 유형의 자료를 엮어서 편찬한 특징을 보인다.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두 책 모두 18세기에 널리 활용되었으나, 「목민고」는 수령의 동선을 시간 흐름에 따라 배치하여 조선의 현실을 집중적으로 담은 반면, 「선각」류는 「목민심감」, 이원익의 편지, 행정 지침 등 다양한 자료를 엮어 중국과 조선의 현실을 모두 참조했다는 차이점을 도출한다.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활용성이라는 공통점과 구성 방식 및 참조 범위라는 차이점을 정리하여 결론을 도출한다.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질문에 대한 최종 답변을 작성한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18세기에 널리 활용된 「목민고」류와 「선각」류는 모두 실용적인 가치를 지녔으나 구성 방식에서 차이를 보인다. 「목민고」류는 수령이 임지에 부임하여 임기를 마칠 때까지의 움직임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배치하여 조선의 현실을 집중적으로 담아낸 것이 특징이다. 반면, 뒤늦게 나타난 「선각」류는 「목민심감」의 조항, 이원익의 편지글, 전정·군정 등의 행정 지침을 엮어 편찬하였으며, 중국의 목민서와 조선의 지방 현실을 다양하게 참조했다는 특징이 있다.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18세기 목민서 중 널리 쓰인 두 계통의 활용 양상을 파악하고, 「목민고」의 시간적 배치 및 조선 현실 집중성, 「선각」류의 다각적 자료 활용 및 중국·조선 현실의 혼합적 참조라는 차이점을 비교하여 답변을 구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