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맥 (context)
1995년 보건복지부는 의료 기술의 발달에 따른 새로운 보건의료 법률 수요에 대처하기 위해 「보건의료 기술 진흥법」을 제정했다. 이 법은 보건의료 체계의 하부 구조인 의료 자원 중 의료 지식과 관련된 사항을 명시적으로 규정한 최초의 법률이었다(손명세, 2000, p.12). 이 법은 보건의료 기술의 진흥에 관한 기본계획의 수립, 보건의료 기술 연구개발 사업의 수행 및 보건의료 정보 등에 관한 사항을 정함으로써 보건의료산업의 건실한 발전과 국민 건강 증진에 기여할 목적으로 제정 되었다. 이 법의 제정 당시 보건의료 기술의 정의는 의약품・의료용구・식품・의료 등 국민의 건강 및 생명의 유지・증진에 필요한 상품 및 서비스와 관련된 기술이었다. 2016년 현재 「보건의료 기술 진흥법」의 목적에는 보건 신기술 인증과 보건의료연구원 설립에 관한 내용도 추가되어 있다. 보건의료 기술의 정의 또한 “가. 의과학・치의학・한의학・의료공학 및 의료정보학 등에 관련되는 기술, 나. 의약품・의료 기기・식품・화장품・한약 등의 개발 및 성능 향상에 관련되는 기술, 다. 그밖에 인체의 건강과 생명의 유지・증진에 필요한 상품 및 서비스와 관련되는 보건・의료 관련 기술”로 확대되어 명시되어 있다.
1948년 정부는 공업 시설 구축과 기술도입을 추진했다. 그리고 교통부에 조선 산업 주무부서를 설치해 조선 산업 육성에 나섰다. 그러나 한국전쟁 발발로 주요 산업 시설이 사라졌다. 또 부산을 제외한 대부분의 조선 시설이 파괴됐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항만과 선박 복구사업이 수요를 창출했다. 또 유엔군 군수물자를 수송하는 수요가 급증하면서 해운업과 조선업을 재생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수리해야 하는 선박의 대부분이 용접선이어서 리벳공법을 사용하던 전래의 조선기술을 용접공법으로 자연스럽게 이전하며 용접 기술도 빠르게 향상시켰다. 1950년대 후반은 한국전쟁으로 파괴된 산업 전반을 복구하고 경제 발전을 위한 기반을 조성하던 시기다. 조선 산업도 이 범위 안에서 피해시설 복구와 소형선 건조에 참여한 시기다. 조선업체 수는 1945년 56개에서 1951년 79개로 증가했고, 1959년 조선소와 조선용 기계류 및 내장품 제조업체가 198개로 증가했다. 1960년까지 국내 조선 기업은 자체적으로 기술을 개발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또 외국의 선진 기술을 도입할 능력도 갖추지 못했다. 다만 조선공학과를 설치한 대학과 조선 관련 학회, KIST 조선해양기술연구실 등에서 한정적으로 소규모 기술 개발에 나섰다.
1990년대는 노후선을 대체하는 수요가 증가하며 세계 조선 산업 경기가 활발해졌다. 1998년 외환위기는 원화 약세를 초래해 국내 조선 산업의 가격 경쟁력을 상대적으로 높이는 결과를 만들었다. 그 결과 선박 건조 선수금과 결제 대금이 달러로 유입되면서 환차익이 발생했다. 이에 따라 경영환경이 크게 개선됐다. 철강 산업과 함께 생산성 향상과 조선기술 혁신, 원자재 비용절감 등으로 세계적인 수준으로 경쟁력을 갖춘 시기다. 특히 이중선체 유조선과 LNG 선박이 처음 건조되어 고부가가치 선박을 수출하는 국가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2000년 이후 조선 산업은 수주와 건조, 건조잔량 등에서 전체적으로 세계 1위에 올라서며, 세계를 선도하는 위상을 확보했다. 컨테이너선과 유조선은 세계 시장 점유율을 60% 이상까지 상승시켰다. 2003년에는 세계 시장 점유율 43.8%, 국내 제조업 비중의 3.3%에 도달하며 국가경제에서 큰 역할을 했다. 특히 무역수지 흑자 비중도 70.7%에 달하는 대표적인 흑자산업으로 국가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 2007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에는 세계적으로 물동량이 줄고 경기가 침체돼 조선 산업도 크게 줄어들었다.
현대중공업은 국토해양부의 플랜트 기술 개발 사업을 통해 2011년부터 2MTPA급 LNG-FPSO 탑사이드 FEED 패키지, 액화 공정 설비와 선박 기본 설계, 탑사이드 시설 모듈화와 안전설계 기술 개발에 나섰다. 1단계에 테스트베드 기반을 구축하고, 2단계에 LNG-FPSO 상용 설계기술을 확보하며, 3단계에 LNG-FPSO 상용화 기술을 확보한다는 전략으로 단계적으로 기술 개발을 추진했다. 연구팀은 LNG-FPSO의 FEED 패키지를 개발해 탑사이드 설비에 대한 자체 엔지니어링 능력을 확보했다. 특히 액화공정을 포함하는 LNG-FPSO의 주요 핵심공정을 개발해 상당한 수준의 기술 노하우를 확보했다. 국내 엔지니어링 기술 수준 향상으로 발주처의 요구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설계 유연성도 증가했다. 테스트베드 설계와 건설 경험을 활용해 플랜트 체질 전환(Scale-up) 전략을 수립했다. 이에 LNG-FPSO 엔지니어링에 대한 신뢰성을 확보하며 우리나라 엔지니어링 기술을 한 차원 높게 끌어 올리는 계기를 마련했다. 또한 삼성중공업의 프리루드(Prelude)는 실제로 건조된 세계 최대 규모의 해양플랜트인 LNG-FPSO이기도 하다.
1970년대 중반부터 성장을 거듭하던 건설 산업의 해외 진출은 1980년대 들어 최고의 활황기를 맞는다. 건설 산업의 외국 진출 성과에서 최고 정점은 리비아 대수로 공사 수주다. 리비아 대수로는 리비아 내륙 사하라 사막에 묻혀있는 지하수를 지하에 매설한 송수관을 통해 지중해 연안에 가까운 지역으로 끌어와 생활용수와 농업용수 등으로 활용하는 사업이다. 세계 8대 불가사의로도 불리는 놀라운 사건이었다. 리비아 대수로 공사는 총 4단계로 나눠 진행했다. 이 중 1, 2단계 공사인 총 3,624km는 2004년 12월 국내업체에 의해 완공했다(3, 4단계는 경제성과 지하수 고갈 논란 등으로 착공이 지연되고 있다). 이 공사는 총 102억 달러에 달하는 초대형 공사로 국내 업체가 수행한 외국 공사 중 단일 공사로는 최대 규모다. 지름 4m, 길이 7.5m, 무게 75t의 송수관 25만 개를 매설해 물길을 여는 고난이도 공사를 국내 기업이 주도하고, 미국과 영국 같은 세계 굴지의 대형 업체에게 하도급을 주고 시행했다. 우리 토목 기술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를 마련했다.
1980년대 후반에 나타난 중요한 성과로는 자체 기술 개발 역량이 축적되기 시작한 것을 들 수 있다. 1980년대에 국토 종합 개발과 산업 근대화를 위한 사회 간접 자본(SOC)의 확충이 활발히 일어남에 따라 건설 기술에 대한 수요가 늘었지만, 1987년까지는 주로 선진 기술을 도입하고 소화해 개량하는 데 치중했고 자체 기술은 정부 주도로 품질 시험을 공급하는 정도에 그쳤었다. 하지만 1987년 「건설기술 관리법」의 제정으로 자체 기술 개발을 위한 기반이 마련되었다. 이 법의 제정 이후 건설 분야 정부 출연 연구기관인 한국건설기술연구원(KICT), 국토연구원(KRIHS), 한국교통연구원(KOTI), 한국철도기술연구원(KRRI)을 발족시키며 본격적으로 자체적인 연구개발에 착수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또한 주택공사, 수자원공사, 토지공사, 그리고 주택공사연구소를 설립해 공기업에서도 연구개발을 활발하게 추진했다.
우리나라는 196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성장을 거듭한 건설 강국이다. 또 첨단기술을 매우 빠르게 발전시키고 있어 건설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기반도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10년간 건설기술 연구개발 투자 규모가 정체하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나라 건설기술 경쟁력 제고, 지속적인 경제 성장, 국민의 안전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해서는 건설기술 분야 연구개발 투자에 더 많은 사회적 관심과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 특히 쾌적한 환경과 재해로부터의 안전에 대한 국민의 요구가 커지고 있는 오늘날 신 건설기술의 개발 필요성과 중요성도 더욱 높아지고 있다. 21세기에 우리나라 건설 산업이 미래 국제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관건은 건설사업 전 주기적인 건설 산업체의 기술, 즉 시장분석, 금융설계 등을 포함하는 「조사 및 사전 기획 기술」, 구매 및 조달, 설계/엔지니어링, 시공 등 「건설기술」, 「운영 및 유지관리 기술」들의 경쟁력 강화에 달려 있다. 기존 시공위주의 관행과 건설업계 수익률 저하는 국내시장의 한계를 나타낸다. 때문에 해외 진출에 미래가 달려있는 건설 산업계에게는 기술 경쟁력에 입각한 고부가가치 시대로의 전환이 시급히 요구되고 있다. 건설 산업계의 건설 기술 개발에 대한 관심 부재는 단기적으로 수익 개선이라는 효과를 낸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1987년 「건설기술 관리법」 제정 이후 건설 분야에서 자체적인 연구개발을 위해 발족된 정부 출연 연구기관들은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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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과제 해석
task_interpretation1987년 건설기술 관리법 제정 이후 설립된 건설 분야 정부 출연 연구기관의 명칭을 찾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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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정보 추출
information_extraction건설기술 관리법 제정과 관련된 연구기관 설립 내용을 문맥에서 추출한다.
- 1987년 「건설기술 관리법」의 제정으로 자체 기술 개발을 위한 기반이 마련되었다.
- 이 법의 제정 이후 건설 분야 정부 출연 연구기관인 한국건설기술연구원(KICT), 국토연구원(KRIHS), 한국교통연구원(KOTI), 한국철도기술연구원(KRRI)을 발족시키며 본격적으로 자체적인 연구개발에 착수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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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근거 선택
evidence_selection질문에서 요구하는 정부 출연 연구기관의 구체적인 명칭이 포함된 문장을 선택한다.
- 한국건설기술연구원(KICT), 국토연구원(KRIHS), 한국교통연구원(KOTI), 한국철도기술연구원(KR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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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논리 통합
logical_integration추출된 기관 명칭들을 나열하여 답변을 구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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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결론 도출
conclusion_formulation선택된 기관들을 바탕으로 질문에 대한 최종 답변을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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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답변 생성
answer_generation한국건설기술연구원(KICT), 국토연구원(KRIHS), 한국교통연구원(KOTI), 한국철도기술연구원(KRRI)를 답변으로 생성한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한국건설기술연구원(KICT), 국토연구원(KRIHS), 한국교통연구원(KOTI), 한국철도기술연구원(KRRI)이다.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1987년 「건설기술 관리법」 제정 이후 자체 기술 개발을 위해 발족된 건설 분야 정부 출연 연구기관들을 문맥에서 찾아 나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