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맥 (context)
2013년 박근혜 정부가 시작되면서 추진한 대표적 산업기술 개발 사업은 「13대 산업 엔진 프로젝트」였다. 착용형 스마트 기기, 지능형 로봇, 스마트 바이오 생산 시스템, 가상훈련 시스템, 스마트 자동차, 수직 이착륙 무인기, 신재생 하이브리드, 초소형 발전 시스템, 첨단 소재 가공 시스템 등 13개 신기술 분야를 선제적으로 개발하는데 초점을 두었다. 이 분야는 향후 미래부의 성장 동력 분야와 일부 중복되어 통합・조정되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산업엔진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기술 수준이 높으면서도 민간 투자가 많은 분야의 지원과 대기업의 지원 금액을 축소했고 대신 중소기업의 지원 범위를 확대했다. 연구개발의 책임성을 강조하는 시스템도 도입했다. 첨단 기술 개발을 위한 연구개발 지원 시스템을 추진하면서도 우리 경제의 걸림돌이 되었던 것은 제조업의 경쟁력 약화와 일자리 창출을 위한 창업 지원 시스템의 부족이었다. 2014년 정부는 제조업 경쟁력 강화 정책에 대응할 수 있는, 1만 개 스마트 공장을 건설하여 제조업의 패러다임 혁신을 추진하는 「제조업 혁신 3.0 전략」을 발표했다(미래창조과학부, 2015).
이명박 정부에 들어서는 교육과학기술부 체제가 신설됨에 따라, 국가과학기술위원회의 역할은 부처별 예산안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는 것으로 축소되었다. 실질적인 예산 편성 권한은 과학기술혁신본부의 일부 기능이 이관된 기획재정부로 넘어간 것이다. 2011년 3월부터 대통령 직속으로 상설화된 국가과학기술위원회는 주요 국가 연구개발 사업에 대한 예산배분・조정권을 가졌으며, 기획재정부로부터 성과 평가 업무를 이관 받았다(안승구 외, 2017, p.41). 국가과학기술위원회는 분야별 전문위원회를 두었는데, 생명공학 분야와 관련해서는 2008년 12월 민간 위원으로 구성된 BT위원회가 설치되어 보건의료 분야를 함께 검토했다. 이후 BT위원회는 생명복지전문위원회로 바뀌었다(미래창조과학부, 2013, p.6).
참여정부에 들어서 2004년 10월 18일 과학기술관계장관회의가 신설되어 국가과학기술위원회와 함께 과학기술 정책 조정의 핵심 역할을 맡았다(성지은, 2006, p.255). 또한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사무국 조직으로서 과학기술혁신본부를 과학기술부 내에 설치하고, 차관급 본부장이 국과 위의 운영위원장을 겸직했다. 과학기술혁신본부 내에는 연구개발 조정관을 두었고, 그 아래 생명해양심의관이 연구 분야별로 업무를 관장했다(김성수, 2005, p.12). 당시 보건의료 분야와 관련해서, 생명해양심의관은 국장급 개방형 직위로 민간 전문가를 발탁하여 보건의료를 포함한 생명 과학 전체 분야에 대한 부처별 예산 배분 및 조정의 역할을 맡았다. 참여정부에서는 대통령 직속기구가 활발하게 운영되었는데, 보건의료 분야와 관련해서는 2005년 의료산업선진화위원회가 설치되었다. 이 위원회는 의료 산업을 차세대 성장 동력 산업 으로 육성하여 국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범정부적인 발전 전략을 마련하고 강력하게 추진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만들어졌다(의료산업발전기획단 외, 2007, p.192).
우리나라의 국방 연구개발은 1948년 국군의 설립과 함께 시작되었다. 1948년 말 정부는 국군의 독자적인 무기 개발과 생산을 위해 육군 특별부대 산하에 육군병기공창을 창설하고, 육군, 해군, 공군과 경찰의 무기에 대한 정비 지원과 탄약 생산 업무를 수행했다. 이후 국방부 장관 직속의 국방부 병기행정본부로 개편하고, 산하에 제1조병창(부산)과 제2조병창(인천)을 두었다. 그리고 서울에 과학기술연구소를 신설하여 본격적인 무기 생산과 연구개발 기구로 새롭게 출발했으나, 불과 10일 후 6.25 전쟁을 맞이했다(국방과학연구소, 1989, pp.40~41). 이후, 과학기술연구소와 제1, 제2조병창은 여러 번의 조직 변화를 거친 후 1954년 7월 국립 국방부 과학연구소로 발전하였다. 국방부 과학연구소의 설립 시 중점 연구 분야는 무기와 탄약이었으나, 1950년대 후반 소유즈 위성 발사의 영향을 받아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1,2,3단 로켓을 개발하고 1959년 7월 27일 인천 앞바다에서 발사시험도 성공하였다. 국방부과학연구소는 1961년 8월 6일부로 해체되어 이후에는 육군, 해군, 공군 중심으로 무기에 대한 연구개발이 이루어졌다(국방과학연구소, 1989, pp.46~47).
1960년대 말이 되면서, 우리나라는 국방 연구개발을 강화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 무엇보다 북한은 1960년대 초 ‘4대 군사노선’(전 인민의 무장화, 전 국토의 요새화, 전 군의 간부화, 전 장비의 현대화)을 내세워 1961년부터 10여 년 동안 매년 GNP의 11~18%가 넘는 막대한 군사비를 투입, 군사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하면서 1.21 무장공비 침투 등 다양한 도발을 하고 있었다. 한편 1969년 7월 25일 미국은 “미국은 아시아에서 맡아온 역할을 수행하되 아시아 각국의 안전은 자국의 자위와 지역의 협력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는 닉슨 독트린을 발표했고, 이로 인해 주한 미군의 철수 가능성이 고조되었다. 이런 대외 안보 환경의 변화에 따라 자주 국방이 시급한 과제로 등장했으며, 방위산업 육성과 국방 과학기술 연구개발의 필요성이 대두 되었다(국방과학연구소, 1989, pp.57~69).
이에 정부는 1970년 초 KIST와 같은 민간 주도 국방 과학기술 연구소 설립을 추진하고, 그해 8월 특수법인으로 국방과학연구소(ADD)를 설립하였다(국방과학연구소, 1989, pp.57~69). ADD 창설 이후 박정희 대통령은 방위산업과 중화학공업을 동시에 추진하기 위해 1971년 말 청와대에 경제 제2비서관을 임명하고 국방 연구개발에 대한 컨트롤타워로 하였다. 이에 따라 ADD는 1970년 말에 1차 번개사업과 1972년 초에 2차 번개사업을 추진하면서 기본 병기 국산화를 추진하여 우리도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이때 각 군의 유능한 초급 장교들을 품질 검사 요원으로 차출하여 ADD에 복무하게 하였으며, 풍산금속 한화 등의 방산 전문 업체를 지정하여 정부가 지원하는 방위산업체 제도를 시작 하였다.
또 재래식 병기 국산화에 자신감을 가진 정부는 당시로서는 무모한 도전이었던 장거리 지대지 미사일(백곰) 개발을 1973년부터 추진하여 추진제 공장, 기계가공공장, 풍동, 장거리 미사일시험장 등을 건설하고, 전문가 초빙 제도 및 전문 연구원제도를 도입하여 우수 연구 인력을 확보하여 1978년 9월 27일 역사적인 시사회를 가졌다. 연구개발 조직 측면에서도 ADD의 서울기계창은 육군용 장비를 특화하고, 대전기계창은 미사일 개발을, 진해기계창은 해군용 장비를 개발하도록 특화 하였다. 1970년대에는 「한국군 현대화 계획」(1971~1975)과 국군의 전력증강사업인 제1차 율곡 사업을 통해 군 현대화에 주력했다(방위사업청, 2008, pp13~21). 이를 위해 1972년 국방부 방위산업 담당관실과, 합동참모본부 작전기획국을 신설했다. 국방부 방위산업 담당관실은 1977년 방위산업차관 보실로 발전하고, 합참의 작전기획국 연구개발과도 제7국(연구개발국)으로 증편되었다.
지시문 (instru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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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question)
1970년대 초 정부가 방위산업과 중화학공업을 동시에 추진하기 위해 국방 연구개발의 컨트롤타워로 삼았던 직책은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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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과제 해석
task_interpretation1970년대 초 방위산업 및 중화학공업 추진 과정에서 국방 연구개발을 담당한 컨트롤타워 직책을 찾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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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정보 추출
information_extraction1970년대 초 국방 연구개발 및 컨트롤타워와 관련된 문구를 추출한다.
- 박정희 대통령은 방위산업과 중화학공업을 동시에 추진하기 위해 1971년 말 청와대에 경제 제2비서관을 임명하고 국방 연구개발에 대한 컨트롤타워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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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근거 선택
evidence_selection질문에서 요구하는 '컨트롤타워'로 임명된 구체적인 직책이 명시된 문장을 선택한다.
- 1971년 말 청와대에 경제 제2비서관을 임명하고 국방 연구개발에 대한 컨트롤타워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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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논리 통합
logical_integration1971년 말 청와대에 임명된 '경제 제2비서관'이 국방 연구개발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했음을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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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결론 도출
conclusion_formulation질문에 대한 답은 경제 제2비서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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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답변 생성
answer_generation최종 답변을 작성한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경제 제2비서관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1971년 말 박정희 대통령은 방위산업과 중화학공업을 동시에 추진하기 위해 청와대에 경제 제2비서관을 임명하여 국방 연구개발의 컨트롤타워로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