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맥 (context)
이런 맥락에서 본 장에서는 최근의 국제정치질서 변화를 이해하기 위한 기초 혹은 전제로서, 국제경제질서의 형성과 변화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를 역사적 측면에서 조망해 보고자 한다. 기본적으로 국제경제질서의 변화는 장기적인 현상이다. 어떤 나라가 국제경제 속에서 우위를 점하고 세계경제질서의 틀을 마련하거나 그 나라가 다른 나라에 의해 대체되고 새로운 질서가 형성되는 과정은 한 세기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을 단위로 해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현재의 국제정치질서와 국제경제질서가 어떤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는지를 이해하고 평가하려면, 최근 일어난 개별 사건들을 세세하게 파악하는 것만큼이나 역사적 안목을 가지고 큰 흐름을 보는 접근이 필수적이다. 국제경제질서의 형성과 변화 나아가 이것과 국제정치질서와의 상호작용이 어떻게 진행되는지에 대한 일반화된 논의는 몇 권의 책이 필요할 수 있는 큰 작업이다. 본 장은 이러한 거대 작업을 추구하지 않는다. 여기에서는 최근 논의되고 있는 국제정치질서의 변화를 파악하는 본 종합연구의 일부로서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정보를 제공한다는 차원으로 논의의 범위를 극도로 제한하도록 한다. 우선 시기적으로는 국제경제질서에 큰 변화가 있었던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의 기간에 초점을 맞춘다.
이상과 같은 고려는 국제경제질서와 국제정치질서 가운데 무엇이 근본적이라거나 우위에 있는지 따지려는 것이 아니라, 국제정치질서의 형성과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국제경제질서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자명한 사실을 환기하기 위함이다.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자면, 국제정치질서 동학(dynamics)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는 국제경제질서를 먼저 살펴보는 것이 논의를 보다 생산적으로 진행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점을 부각시키고자 함이다. 국제정치질서란 기본적으로 각국의 정책의지 그리고 상대 국가들의 반응을 고려하는 전략적 고려의 산물임에 비해, 국제경제질서는 정책의지와는 독립적으로 주어진 조건들, 즉 부존자원(endowment)이나 생산능력과 같은 기초요인(fundamental)들에 의해 일차적으로 규정되는 측면이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기초요인들 그리고 이러한 요인들에 의해 기본 얼개가 짜여진 국제경제질서를 파악하는 것은 국제정치질서의 형성과 변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서유럽에서 중세가 막을 내리고 근대 국민국가들이 형성되기 시작한 1500년경 이후 지난 500여 년 동안의 세계 역사를 되돌아보면 주요 국가들의 경쟁과 협조를 중심으로 새로운 국제질서가 등장하고 재조직되는 과정이 부단히 진행되어 왔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국제질서의 형성과 해체 그리고 새로운 형태로의 이전은 기본적으로는 정치적 과정이다. 그러나 각국의 경제력은 이러한 국제정치질서의 변화 여부 그리고 변화의 방향을 결정하는 근본요인으로 항상 작용하였다. 나아가 세계 각국의 대외경제활동이 이루어지는 기본틀을 국제경제질서라고 부를 수 있을 텐데, 국제경제질서와 국제정치질서는 밀접한 관련을 맺고 상호작용하면서 진화하였다. 어떤 나라의 경제력 상승은 국가 간 지위의 변화와 국제경제질서의 재편을 가져오고 국가 간 힘의 우열을 규정하는 물적 토대를 변화시켜서 궁극적으로 국제정치질서에 영향을 미친다. 혹은 국제정치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노력은 국가 간 충돌을 야기하고 새로운 질서를 배태하는데, 한 나라가 이러한 경쟁에서 우위에 설 수 있는지 여부는 근본적으로는 얼마만큼의 물적자원을 동원할 수 있는지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20세기 전반기에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 그리고 두 전쟁 사이 시기에 일어난 세계대공황이라는 전대미문의 거대한 정치, 경제적 사건들이 일어났다. 윈스턴 처칠은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던 1914년부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는 1945년까지의 기간을 ‘제2차 30년 전쟁’이라고 불렀다. 이러한 명명(命名)은 이 사건들이 별개가 아니라 서로 연관된 것이라는 생각, 즉 제1차 세계대전의 충격이 대공황이라는 세계적인 경제혼란을 낳았으며, 이것이 궁극적으로는 제2차 세계대전을 가져왔다는 이해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제1차 세계대전은 몇 가지 측면에서 서유럽 국가들은 물론이고 세계경제 전체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첫째는 전쟁으로 인한 파괴이다. 전쟁 전에도 이미 미국경제의 규모는 유럽의 어느 단일국가보다도 컸다. 그런데 전쟁은 이러한 격차를 더욱 벌려 놓게 되었다. 유럽에서 가장 큰 규모였던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를 합한 4개국의 규모에 비해 80% 수준이던 것이, 전후에는 규모가 동일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상대규모는 대공황이 발발하기 전인 1929년까지 큰 변화 없이 유지되었다.
둘째는 막대한 전쟁비용이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1919년에 패전국은 물론이고 대부분의 승전국들은 엄청난 전쟁부채 문제에 직면하였다. 그런데 전승국들에 대한 최종 채권국은 미국이었다. 전승국은 패전국인 독일 등으로부터 배상금을 받아서 전쟁부채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1919년 전쟁배상금 문제를 협의한 베르사이유 조약에서 영국, 프랑스 등 승전국들은 독일에 엄청난 배상금을 부과하였다. 막대한 전쟁배상금 부담 그리고 이것의 이행 문제는 독일 등 패전국에 큰 정치, 경제적 혼란을 야기하였으며, 궁극적으로는 1930년대에 독일에서 나치 정권이 성립하게 되는 단초들을 제공하는 등 국제정치경제질서의 정상화를 가로막는 힘으로 작용하였다. 셋째는 국제통화체제인 금본위제(Gold Standard System)의 붕괴이다. 제1차 세계대전 이전 서유럽 주요 국가들은 국내적으로 금태환을 기초로 한 화폐제도를 유지하였다. 그리고 많은 국가들이 금을 정화(正貨, specie)로 채택하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국제통화체제 역시 금본위제가 되었다.
국제수지 측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금본위제를 통해 국가 간 국제수지 불균형이 해소되리라는 기대와는 달리 1920년대 후반 프랑스와 미국은 계속 국제수지 흑자를 기록하여 금 유입이 심화되어 간 반면, 영국은 적자가 계속되어 국가 간 국제수지 불균형은 오히려 심화되어 갔다. 결국 이러한 불균형은 국제금융질서를 취약하게 만듦으로써 국제적인 은행 연쇄파산이 발생하였으며, 1929년 주식가격 폭락 이후 미국에서도 대규모 은행공황이 발생하였다. 이러한 미국의 은행공황 그리고 경기침체가 다시 세계경제에 영향을 미치면서 세계경제는 공황으로 치닫는다. 이상에서 간략히 정리한 일련의 사건들은 주요국들의 긴밀한 협조와 조정 노력이 있었다면 해결이 가능하거나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는 문제들이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러한 노력은 충분히 이루어졌다고 보기 어렵다. 1919년 베르사이유 조약은 이러한 실패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이 협상에서 영국은 전쟁배상금 문제에만 관심이 있었을 뿐, 국제정치질서를 안정시키는 데에는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으며 그럴 힘도 가지고 있지 못하였다.
영국과 미국의 경제적 지위가 뒤바뀌고 세계경제질서의 중심축이 이동하던 19세기 말에 동아시아의 정치, 경제 질서에도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1842년에 중국 그리고 1854년에 일본이 서구 열강의 압력에 못 이겨 개항을 하였다. 조선은 1876년에 일본의 강압으로 개항을 한 이후, 1880년대에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등과 차례로 통상조약을 맺었다. 이후 조선은 동아시아에서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열강들의 각축장이 되어 갔다. 19세기 말부터 한일합방이 일어난 1910년까지의 기간 동안 우리나라에 영향력을 행사한 주요 국가는 미국, 영국, 일본, 중국, 러시아를 들 수 있다. 이 국가들이 조선에서 영향력을 확보하려 했던 이유는 여러 가지였겠지만, 이들 간의 경쟁이 어떤 결과로 귀결되었는지는 각 국가들의 정책의지나 전략만큼이나 각국의 경제수준 그리고 조선과의 지리적 거리라는 물질적 조건이 중요하게 작용하였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국제정치질서와 국제경제질서의 관계 측면에서, 국제정치질서의 동학을 이해하기 위해 국제경제질서를 먼저 살펴보는 것이 왜 생산적인지 그 이유를 설명하시오.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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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과제 해석
task_interpretation국제정치질서와 국제경제질서의 관계를 파악하고, 왜 경제질서를 먼저 살펴보는 것이 생산적인지 그 인과관계를 도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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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정보 추출
information_extraction국제정치질서와 국제경제질서의 규정 요인을 각각 추출한다.
- 국제정치질서란 기본적으로 각국의 정책의지 그리고 상대 국가들의 반응을 고려하는 전략적 고려의 산물
- 국제경제질서는 정책의지와는 독립적으로 주어진 조건들, 즉 부존자원(endowment)이나 생산능력과 같은 기초요인(fundamental)들에 의해 일차적으로 규정되는 측면이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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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근거 선택
evidence_selection두 질서의 성격 차이를 보여주는 핵심 문구를 선택한다.
- 국제정치질서란 기본적으로 각국의 정책의지 그리고 상대 국가들의 반응을 고려하는 전략적 고려의 산물
- 국제경제질서는 정책의지와는 독립적으로 주어진 조건들, 즉 부존자원(endowment)이나 생산능력과 같은 기초요인(fundamental)들에 의해 일차적으로 규정되는 측면이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 기초요인들 그리고 이러한 요인들에 의해 기본 얼개가 짜여진 국제경제질서를 파악하는 것은 국제정치질서의 형성과 변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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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논리 통합
logical_integration정치질서는 전략적 의지에 따른 가변적 산물인 반면, 경제질서는 부존자원 등 기초요인에 의해 규정되는 독립적 조건임을 결합하여 논리를 구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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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결론 도출
conclusion_formulation경제질서가 정책의지와 독립된 기초요인에 의해 규정되므로, 이를 파악하는 것이 정치질서의 변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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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답변 생성
answer_generation질문에 대한 답변을 정리하여 작성한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국제정치질서는 각국의 정책의지와 상대국의 반응을 고려하는 전략적 고려의 산물인 반면, 국제경제질서는 정책의지와 독립적으로 주어진 부존자원이나 생산능력과 같은 기초요인(fundamental)들에 의해 일차적으로 규정되는 측면이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기초요인들에 의해 형성된 국제경제질서를 파악하는 것은 국제정치질서의 형성과 변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므로 생산적이다.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국제정치질서가 전략적 의지에 기반한 산물인 것에 비해, 국제경제질서는 부존자원 등 독립적인 기초요인에 의해 규정된다는 차이점을 근거로 경제질서 파악의 유용성을 설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