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맥 (context)
앞서 언급했듯이 고기나 어패류 모두 젓갈로 담글 수있다. 조선시대 기록에는 토끼, 사슴, 돼지고기와 민물고기인 누치, 은어로도 젓갈을 담근 기록이 남아있다. 지금은 어패류를 이용해 젓갈을 많이 담근다. 굴이 많이 생산되는 경기만 일대에서는 굴을 이용해 굴젓을 담갔다. 경기도 화성시 제부도에서는 ‘진달래 필때쯤’ 굴젓을 담근다. 굴젓은 식감이 없어 소라젓과 함께 양파, 파, 마늘, 참기름, 고춧가루, 식초를 넣어 밥반찬으로 먹는다. 굴젓을 먼저 담그고 6월쯤 소라젓을 담가 젓갈이 익으면 섞는다. 낙지로 담근 낙지젓갈은 그 역사가 그리 길지 않지만 명란젓, 창란젓과 함께 교민들에게 가장 많이 보내는 젓갈에 해당된다. 새우젓은 작은 크기의 새우를 통째로 절이는데 잡히는시기에 따라 오젓, 육젓, 추젓 등으로 거래되며 그 가격이 다르다. 새우젓은 김장할 때뿐만 아니라 젓찌개로 끓여 먹거나 수육 등을 먹을 때 찍어먹는 용도로도 이용된다. 새우젓만큼이나 다양한 용도로 쓰이는것에는 멸치젓이 있다. 멸치로 담근 멸치젓은 젓갈의 형태로도 먹으나 대부분 젓국으로 내려져 국물 형태로 사용된다.
기록에 의하면 육고기로도 젓갈을 담갔다고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어패류를 이용해 다양한 종류의 젓갈을 담그고 있다. 새우, 멸치처럼 작은 생선은 손질을 하지 않고 젓갈을 담그며, 명태, 갈치, 낙지, 오징어처럼 큰 것들은 손질을 하여 담근다. 생선은 아가미부터 상하는데 대구, 명태, 민어, 갈치 등은 아가미만을 모아 젓갈을 담그기도 한다. 또한 생선의 알도 젓갈을 담그는데 지금은 명태의 알로 담근 명란젓이 유명하지만 조선시대에는 명란젓보다 대구알젓을 으뜸으로 쳐주었다. 명태알로 만든 명란젓은 그 자체로 반찬으로 먹을 수있지만 들기름을 발라 구워 먹을 수도 있고, 알탕으로도 먹을 수 있으며 마늘, 파 등을 다진 후에 무쳐먹을수도 있다. 최근에는 계란찜이나 계란말이에 넣기도 하며 명란파스타나 바게트빵에 명란젓을 바르고 구운 명란바게트도 인기를 끌고 있다. 명란젓은 명태알에 소금을 넣고 발효시켜 젓갈로 담근 알젓의 한 종류이다.
이런 명란젓은 해방 후 일본에서도 만들어지는데 부산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카와하라(川原)가 해방 후 일본에 돌아가 어린 시절 맛보았던 명란젓을 만들어 큰 성공을 거둔다. 이러한 이야기는 몇 년 전 일본의 TV드라마로도 만들어지기도 했다. 명태알을 뜻하는 멘타이코(明太子)는 명란젓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물론 젓갈이 우리나라에만 있는 음식은 아니다. 일본어 시오카라(しおから)는 젓갈로 번역되는데 일반적으로 오징어나 생선 내장으로 만드는 것으로 창란젓에 해당되며, 해삼창자젓갈 고노와다(このわた)는 고급요리에 속한다. 필리핀의 바공(bagoong)이나 태국의 가피(kapi)는 새우젓, 이탈리아의 앤초비(Acciughe)는 멸치젓에 해당된다. 주로 통조림의 형태로 유통되는 캐비아(caviar) 역시 철갑상어 알을 소금에 절인 것으로 알젓의 한 종류겠다. 이처럼 젓갈은 세계적으로 유통되고 있다.
요즈음에는 겨울철에도 신선한 채소를 쉽게 구할 수 있게 되었고 식생활양식도 많이 변하여 김장이 겨울의 반양식이라는 말이 퇴색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주거양식도 많이 변하여 김칫독을 땅에 묻는 일이 드물어졌고, 특히 도시일수록 김칫독도 스티로폼이 들어간 이중벽의 플라스틱김칫독이 이용되기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1월에는 하나의 거국적 전승을 보여주는 김장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행사가 전국 곳곳에서 열린다. ‘서울김장문화제’는 김장문화를 통해 전통과 현대를 잇고 세계인이 함께 어울리는 화합과 나눔의 장이 되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아 기획된 것으로, 우리의 ‘김장문화’에 관한 모든 것을 보고, 체험할 수 있는 장이다. 아울러 경기도 양평, 강원 평창, 충북 괴산, 경북 영양 등에서도 김장축제가열린다.
집집마다 백과사전이 있던 때가 있었다. 당시에는 5년이고 10년이고 책장에 모셔둔 백과사전을 뒤적여 필요한 정보를 찾곤 했다. 정보화시대로의 급변은 불과 몇 년 사이에 전혀 새로운 형태의 백과사전을 등장케 했다. 누구든지 지식과 정보를 직접 올릴 수 있으며 기존에 등록된 지식정보를 수정·보완할 수 있는 위키피디아다. 위키피디아는 지식을 생산해 내는 주체가특정한 개인 전문가에 한정할 수만은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나아가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수록 지식은 확대 재생산 되어 그 지식의 영역을 넓혀 간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개개인이 만들어 낸 퍼즐은 개인전문가가 결코 만들 수 없는 거대 지식을 형성했고, 이지식은 계속해서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 가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조선 유학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러한 측면이 보인다는 사실이다.
공동체가 함께 경비를 조달하여 책을 출간하는 ‘공동출판’이 성공하려면 출간에 동의하는 사람들의 자발적 참여가 필수적이다. 문집 출간이 결정되면 그에 대한 비용과 노력을 함께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공동체 전체가 반드시 ‘출간의 이유’에 대해 동의해야 했다. 명분과 이유가 분명하면 참여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문집 발간 자체가 불가능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문집 출간에 비용을 대고 자발적으로 참여했었을까? 조선은 유교를 국교로 해서 만들어진 나라였다. 유교가 지향하는 인간형과 이들을 중심으로 한 도덕공동체에 대한 이상이 분명했다. 국가는 도덕적으로 완성된 ‘성인’이 다스려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이러한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왕도정치(王道政治)를 꿈꾸었다. 이 때문에 조선은 완성된 인간형인 ‘성인’을 지향했고, 이를 중시하는 문화가 형성되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유교 사회가 문화적으로 유지되고 전승되려면 따라 배울 수 있는 ‘성인’을 표상으로 제시해 줄 필요가 있다. ‘성인’을 인정해주는 사회적 메커니즘이 필요했던 것이다.
1823년 음력 10월 20일 도산서원에서는 지역 유림들이 참여하는 도회가 열렸다. 이 도회에서는 정조 임금 때 영남 남인을 대표하여 정승까지 올랐던 채제공(蔡濟恭, 1720~1799)의 문집인 『번암집』 발간을 결정했다. 채제공 사후 24년 만에 그는 영남을 대표했던 인물로 인정받았고, 영남 유림 전체는 힘을 합하여 『번암집』을 발간하기로 했던 것이다. 업무를 추진할 도도감(都都監) 2명과 도감, 교정, 유사 등의 임원을 선출하고, 비용에 관련된 문제도 논의했다. 1,167장의 목판을 판각해야 하는 거대한 사업이기 때문에 비용 역시 만만치 않았다. 이 때문에 이 도회에서는 병산서원과 호계서원을 중심으로 대치하고 있었던 병호시비마저 덮고, 모두 힘을 합쳐 『번암집』을 발간하기로 결정하였다. 영남 유림 전체가 채제공의 문집 발간에 힘을 모으기로 했던 것이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조선시대에 명란젓보다 더 으뜸으로 여겨졌던 알젓은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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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과제 해석
task_interpretation조선시대에 명란젓보다 더 높게 평가받았던 알젓의 명칭을 찾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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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정보 추출
information_extraction문맥에서 알젓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 및 명란젓에 대한 정보를 추출한다.
- 지금은 명태의 알로 담근 명란젓이 유명하지만 조선시대에는 명란젓보다 대구알젓을 으뜸으로 쳐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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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근거 선택
evidence_selection조선시대의 선호도를 직접적으로 비교한 문장을 근거로 선택한다.
- 조선시대에는 명란젓보다 대구알젓을 으뜸으로 쳐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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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논리 통합
logical_integration명란젓과 대구알젓을 비교했을 때 조선시대에는 대구알젓이 으뜸이었다는 인과 관계를 확인한다.
- 조선시대에는 명란젓보다 대구알젓을 으뜸으로 쳐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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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결론 도출
conclusion_formulation질문에 대한 답으로 대구알젓을 도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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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답변 생성
answer_generation최종 답변을 작성한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대구알젓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조선시대에는 명란젓보다 대구알젓을 으뜸으로 쳐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