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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체육회담의 전개 과정과 단일팀 구성 및 공동 입장을 통한 스포츠 교류의 역사적 성과와 한계 doc_id PCY_201901180345572451_7

주제 (main_topic)
남북 체육회담의 전개 과정과 단일팀 구성 및 공동 입장을 통한 스포츠 교류의 역사적 성과와 한계
답변 불가 (is_impossible)
False
문맥 (context)
그 결과 1963년 1월 로잔에서 열렸던 남북체육회담에는 남북 사이에 매우 역사적인 합의가 이루어졌다. 로잔 회담에서는 남북 단일팀을 구성하는데 가장 논쟁적인 주제인 국기, 국가, 선수단과 관련된 문제가 타결되었던 것이다. 첫째, 국기 문제는 국제올림픽위원회나 북측이나 우리 측의 제안이 서로 크게 달라서 2월에 열리는 국제올림픽위원회 집행위원회에서 다시 협의하기로 합의했다. 둘째, 국가 문제는 우리 측의 제의를 받아들여 아리랑으로 합의했다. 북측은 25초씩 북한의 국가와 애국가를 각각 편집해서 하나로 연주하자고 했고 우리 측은 애국가로 맞섰으나 서로 양보했던 것이다. 셋째, 선수 임원 선발 문제는 독일 단일팀의 모델을 따라 선발된 선수가 많은 측에서 단장을 맡고 반대 측에서 부단장을 맡는 방식에 합의했다. 독일 단일팀은 과거에 선발전을 통하지 않고 종목별 대회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낸 선수로 구성되었다. 하지만 1964년 동경올림픽에 남북이 단일팀으로 출전하기 위해서는 더 세부적인 사항을 정리해야 했고 이를 위해서 5월과 7월에 홍콩에서 남북체육회담을 더 이어가기로 했다. 5월의 홍콩 회담에서는 예선경기, 재정, 차기 회담 일정, 기타 미합의 쟁점 등을 처리하고 그때 해결하지 못하는 사항을 7월 홍콩 회담에서 다루기로 했다. 한국은 여전히 단일팀 구성을 거부했고 단독 참가를 목표로 했으며 회담의 결렬도 배제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실제로 7월 말 홍콩 회담 직전 북한 대표의 도착성명서에 포함된 용어(National Union)에 강력하게 항의하면서 회담을 아예 결렬시켰다. 이 용어가 우리 정부의 의도와 반대로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는 의미가 담겨 있었고 실제 남북 관계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다는 입장이었다. 국제올림픽위원회 마이어 사무총장은 회담이 깨진 책임이 북한이 아니라 한국에 있다고 보고 다시 회담을 열 것을 권했다. 그 후 1970년대에 남북 사이의 의미 있는 체육회담이 다시 이어지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렸다. 1979년 4월 평양에서 개최되었던 제35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를 앞두고 다시 남북 사이에 체육회담이 열리게 되었다. 1977년 북한이 이 대회를 유치할 때 국제탁구연맹이 한국, 미국, 이스라엘의 참여를 보장할 것을 조건으로 걸었다. 북한은 2월 20일에 우리 정부에게 단일팀 구성을 논의할 남북체육회담을 제안했다. 우리 정부는 1960년대와 비슷하게 회담에는 임하지만 단일팀 구성에 대하여 반대하고 단독 참여를 확보하자는 입장이었던 반면, 북측은 단독 참여를 반대하는 대신 단일팀 구성을 추진했다. 1972년 뮌헨 회담 이후 7년 만에 성사된 남북체육회담이었지만 네 차례의 판문점 회동은 아무 성과없이 막을 내렸다. 회담 내내 대한탁구협회는 국제탁구연맹의 회원으로서 당연히 세계선수권대회에 참가하는 것이니 그 기득권을 먼저 인정하고 보장해야 남북 단일팀 구성문제를 실질적으로 토론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했고 북측은 단일팀을 구성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입장이었다. 1990년 제11회 베이징아시안게임 남북단일팀 구성을 위한 9차(1989.3.9.~1990.2.7.)에 걸친 남북체육회담이 진행되었으나 북한이 일방적으로 회담을 결렬시켰다. 1990년 총리급 남북고위급회담개최를 계기로 44년만의 경평축구인 남북통일축구대회(10.11.~10.23.)가 서울과 평양에서 번갈아 개최되었고 1992년 제25회 바르셀로나올림픽 단일팀구성을 위해 4차(1990.11.19.~1991.2.12.)의 회담이 이루어졌다. 단일팀구성에는 실패했지만 1991년 2월 12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제41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와 제6회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 남북단일팀 구성 및 참가 합의서에 서명함에 따라서 1991년 일본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4.24.~5.6.), 포르투갈 리스본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6.14.~6.30.)에서 국가는 아리랑, 남북단일팀은 코리아라는 이름으로 참가했다. 탁구와 축구 남북단일팀의 국제대회 참가는 분단이후 첫 교류사례이자 탁구는 중국의 8연패를 누르고 금메달을 획득하고 축구도 8강전에 오르는 우수한 성적을 냄으로써 스포츠교류 의의와 가치가 인정되었다. 탁구단일팀을 계기로 재일 민단과 조총련이 공동응원을 실시함으로써 분단 이후 반목과 대결관계를 지속하던 재일동포들이 단결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축구대회 기간인 6월 17일 기자회견에서 FIFA 아벨란제 회장은 2002년 아시아에서 개최예정인 월드컵대회와 관련 “남북공동으로 주최한다면 지원 하겠다”고 언급했었다. 그러나 2002년 월드컵은 한국과 일본이 공동개최했다. 1991년 8월 1일 북한 유도선수 이창수의 귀순 이후 북한의 부정적인 태도로 인해 체육교류도 사실상 중단되었다. 1993년 10월 평양에서 개최된 제7차 동아시아경기대회 협의회 총회에 KOC 명예총무 등이 참석한 바 있으나 대체로 방북을 통한 체육인 교류는 부진하였다. 제3국 개최 스포츠행사를 통한 남북체육인의 접촉은 1995년 9월 세계군인체육대회, 1996년 8월 윌리엄존스 국제농구대회, 1997년 대한산악연맹 관계자들이 베이징에서 북한 등산협회 암벽등반교육 및 대회 참관이 전부이다. 1947년부터 대한올림픽위원회가 국제올림픽위원회에 승인을 받은 뒤 1국가 1국가올림픽위원회 원칙에 따라 북한의 올림픽참가는 대한올림픽위원회를 통해서만 가능했고 이에 따라 북한은 단일팀 구성에 매우 적극적이었다. 이와 반대로 우리 정부는 단일팀 구성에 매우 미온적이었고 이에 따라 국제올림픽위원회의 반발을 사게 되어 1963년 바덴바덴 국제올림픽위원회 총회에서 북한의 조선올림픽위원회도 최종 승인을 받게 되었다. 그 뒤에도 남북 사이에 단일팀 구성을 위한 체육회담이 끊이지 않았지만 협상을 위한 협상이 평행선을 이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1990년 북경아시안게임에 남북이 처음으로 한반도기를 들고 공동응원을 벌인 이후 단일팀 및 단일기 등과 관련하여 과거와 확연히 구분되는 새로운 시기에 진입했다. 1990년부터 2018년 사이 각종 국제체육대회에서 13회의 공동입장, 16회의 한반도기 이용, 7회의 단일팀 구성, 9회의 공동응원이라는 역사가 이루어졌다. 월드컵축구 공동개최를 위해 1999년 정몽준 대한축구협회장이 방북하여 2002년 월드북한 분산개최와 남북축구 교환경기 및 다이너스티컵 국제대회를 대체할 극동 4개국대회 창설을 논의하였으나 무산되었다. 2000년 9월 15일 제27회 시드니올림픽 개막식에 남북한 동시입장은 스포츠 역사의 명장면으로 꼽힐 만큼 전 세계에게 감동을 주었고 당사자인 우리는 민족동질감 회복에 최상의 이벤트였다. 이후 남북 공동입장은 2018 평창올림픽까지 총 10차례 성사되었다. 2002년 9월 30일 부산아시안게임 개막식에 공동입장 그리고 처음으로 인공기가 대회 내내 게양되었다. 북한도 선수단 300명, 태권도시범단 그리고 처음으로 288명의 응원단을 파견하였는데 그 당시에 응원단은 대단한 관심을 받은 바 있다. 국민의 정부는 북핵문제로 인한 한반도위기 국면을 진정시키고 국민들에는 북한에 대한 부정적 견해와 편견을 긍정적 인식으로 변화시킴으로써 통일에 대한 공감대가 광범위하게 형성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1991년 일본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와 포르투갈 리스본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에 참가할 당시, 남북 단일팀이 사용한 국가 명칭과 팀 명칭은 각각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1991년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와 리스본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에 참가한 남북 단일팀의 국가 명칭과 팀 명칭을 찾아야 한다.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1991년 대회 참가와 관련된 구체적인 명칭 정보가 포함된 문장을 추출한다.

    • 1991년 일본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4.24.~5.6.), 포르투갈 리스본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6.14.~6.30.)에서 국가는 아리랑, 남북단일팀은 코리아라는 이름으로 참가했다.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질문에서 요구하는 국가 명칭(국가 이름)과 팀 명칭(단일팀 이름)에 해당하는 정보를 선택한다.

    • 국가는 아리랑
    • 남북단일팀은 코리아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추출된 정보를 바탕으로 국가 명칭은 '아리랑'이고, 단일팀 명칭은 '코리아'임을 연결한다.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질문에 대한 최종 답변을 구성한다. 국가는 아리랑, 단일팀은 코리아이다.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최종 답변을 작성한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국가는 아리랑, 남북단일팀은 코리아라는 이름으로 참가했다.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1991년 일본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와 포르투갈 리스본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에 참가할 당시, 국가는 아리랑, 남북단일팀은 코리아라는 이름으로 참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