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맥 (context)
문화재청은 전국의 국가지정문화재(등록문화재 포함)와 시·도지정문화재, 비지정문화재 7,500여 개소의 문화재를 대상으로 2019년도 ‘문화재 돌봄사업’을 시행한다. 문화재 돌봄사업은 정기적인 사전점검(모니터링)을 통해 문화재를 일상 관리하고 경미한 수리 활동을 상시로 시행하는 사전 예방적 보존관리 시스템으로, 사전에 문화재 훼손을 방지하고, 사후에 발생하는 보수 정비 부담을 줄이고, 보수주기도 연장시키는 효과가 있다. 2010년 5개 시·도에서 처음으로 시범 시행한 이후 사업의 효용성이 인정되면서 2013년부터 전국 17개 시도로 전면 확대되었다. 올해에는 관리대상 문화재를 작년보다 539개소 추가한 7,587개소로 확대하고, 돌봄활동을 하는 지역의 돌봄사업단은 작년보다 2개 증가한 23개 단체로, 상시인력 700여 명을 고용하였다. 현재 고용된 상시인력 중에는 문화재 수리기능자 200여 명, 모니터링 인력(문화재 전공자) 90 여 명 등 다수의 전문인력들이 있다. 문화재청은 돌봄인력의 꾸준한 역량 향상을 위해 경미수리·모니터링 실습교육을 시행하여 상시인력의 전문성을 더욱 강화할 계획이다.
남양주 수종사 사리탑은 경기도 남양주시 운길산 수종사에 전해오는 석조 사리탑이다. 1439년(세종 21)에 왕실의 발원으로 제작되었으며 태종 이방원(1367~1422)의 딸 ‘정혜옹주(?~1424)’를 위한 사리탑으로 확인된다. 이 사리탑은 지대석으로부터 기단부와 탑신부 그리고 옥개석과 상륜부가 완전히 남아 있으며, 조선 초기 양식으로 건립연대가 분명하고 각 부에 새겨진 문양의 우수성과 승탑의 형식으로 정혜옹주를 추모한 특이성이 있어, 조선 초기 왕실의 불교 신앙과 그 조형의 새로운 경향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지정가치가 크다. 이번에 지정 예고된 동 삼층석탑은 금당 후면에 다른 2기의 석탑과 함께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총 높이는 4.1m로 2층 기단 위에 3개의 층으로 구성되었으며, 기단 상부에 괴임대 형식의 별석받침 (별도의 돌로 만든 받침석)을, 1층 탑신 전·후면에 문고리와 자물쇠가 표현된 문비(문짝 모양)가 조각된 점 등으로 볼 때 전형적인 통일신라 후기 석탑의 특징을 갖추고 있다. 이미 보물로 지정된 2기의 탑 못지 않게 균형 잡힌 비례와 우수한 조형성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지정 가치가 있다.
DMZ가 꼭꼭 숨겨놓은 보물 용양보!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용양리에 소재하며 남한에서 최북단에 위치한 보(洑)이다. 보는 필요한 수량을 확보하기 위해 하천의 일부 또는 전부를 가로막아 수위를 높인 인공 늪이다. 용양보는 김화읍 일대 화강을 따라 형성된 용양리 주위 농지에 물을 대기 위해 만들어졌다. 화강은 북한 강원도 김화군 금성면 어천리에 있는 수리봉(642m)에서 발원해 DMZ를 거쳐 철원군 일대를 흘러 한탄강으로 흘러드는 하천이다. 총길이 43.6㎞로 남한 쪽 길이는 23.5㎞이다. 용양리는 천불산과 계웅산 사이를 흐르는 화강을 따라 자연스럽게 형성된 운장 분지로 김화읍 농업생산의 핵심 지역이다. ‘꽃강’이라는 뜻의 화강(花江). 옛 신라시대부터 주변경관이 수려하고 꽃이 많이 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화강 주변에는 버드나무와 아카시아나무가 우거져 있고 각종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울창하게 우거진 갈대숲은 각종 여름철새들의 보금자리가 됐다.
조선을 지배했던 성리학은 도덕과 윤리 같은 정신적인 가치만 유독 강조했다. 성리학자들에게 도덕과 윤리는 세계와 인간을 다스리는 근본 규범이었다. 이 때문에 물질생활의 가치를 부정하거나 그것을 도덕과 윤리적인 가치보다 하위에 두었다. 서유구는 이러한 성리학적 가치관에 대단히 비판적이었다. 그는 성리학적 가치를 앞세워 정신적인 삶의 고귀함만 내세우는 사대부들을 향해 이렇게 외쳤다. “헛되이 곡식만 축낼 뿐 세상에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는 자로는 저술하는 사대부가 진실로 우두머리이다.” “나는 사대부들이 앉아서 논하고 일어나서 행한다는 도리가 무엇인지 도대체 모르겠다.” 일상생활에 절실하게 필요한 학문, 즉 이용후생(利用厚生)의 학문 이 아닌 학문은 모두 쓸모없는 짓에 불과하다는 것이 서유구의 생각이었다.
최익현은 1905년 을사조약에 반대해서 의병을 일으켜 항쟁하다가 왜군에게 체포되어 대마도에 감금되었다. 당시 74세의 고령이었으나 단식을 하였다. 일본 정부는 민심의 동요를 우려해서, 이토 히로부미 통감에게 쓰시마에 조선의 쌀과 보약을 보내라고 훈령을 내렸다. 일본 병사들이 부산에서 쌀을 가져오자, 최익현은 사흘 만에 일단 단식을 그만두었다. 하지만 울화증과 풍토병 때문에 반년 뒤에 병사했다. 19세기는 조선의 지식인들에게 혼돈과 고뇌의 시기였다. 그들은 동아시아를 축(軸)으로 한 인식 지형에 서양을 새로이 그려 넣어야 했고 이는 성리학의 가치질서와 세계관을 헝클어놓았다. 최익현을 비롯한 유림의 인사들은 기독교적인 만인평등과 사해동포주의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최익현은 위정척사론을 주장하였다. 위정척사론의 저변에는 중세 봉건왕조를 떠받드는 보수적 이데올로기가 놓여 있다. 하지만 그 외세 저항은 곧 수구세력이 품고 있던 민족주의의 한 발로 이기도 하였다. 그의 강골한 기상은 바로 이 「한라산 유람기」에서도 느낄 수 있다.
19세기 말부터 제국주의 열강은 식민지적 팽창을 하면서 피식민지 국가에 큰 규모의 빚을 지우고 그것을 빌미로 지배력을 강화하는 방식을 선택하였다. 일본도 우리나라에서의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을사늑약(乙巳勒約)이 이루어진 후 식민지로 만들려는 작업은 더욱 빨라졌다. 그중 하나로 많은 빚을 떠안게 해서 경제적으로 혼란을 유도하고 이익을 얻으려고 했다. 일본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우리나라의 엽전과 백동화와 같은 우리 돈을 쓰지 못하게 하였고, 일본제일은행에서 발행한 일본 돈만 쓰게 하는 화폐개혁을 실시했다. 1907년 국채보상운동이 시작되던 때 빚만 1,650만 원이었다. 새로 빚을 내어 350만 원을 갚아도 1,300만 원이 남아 있었다. 그 당시 쌀 한 말 값이 1원 80전이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의 일 년 예산과 맞먹을 정도의 큰 금액이었다고 한다.
살다 보면 어려운 시기가 있다. 생존을 위해 당장 돈이 없으면 빚이라도 내서 살아야 한다. 개인뿐 아니라 국가도 이런 상황을 겪게 되고, 그러한 상황에서 발생되는 것이 국채(國債)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만들지 않은 빚, 즉 일제의 강압에 의해 을사조약을 맺게 되고 일본은 통감부를 지으면서 이때부터 높은 이자를 붙여 강제로 빚을 덮어씌웠다. 201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국채보상운동은 1907년 대구에서 시작한 경제적 자립운동이다. 국민 스스로 1,300만 원의 나랏빚을 갚기 위한 활동을 알려주는 2천 5백여 점의 유물이 현재까지 남아 있다. 그 기록물 들은 크게 3가지로 볼 수 있는데 첫째 국채보상운동의 발단과 전개를 기록한 것, 둘째 전파와 파급력을 기록한 문서, 셋째 일제 정부 관련 기록물, 마지막으로 신문 등 언론 기록물이 있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서유구가 비판했던 성리학적 가치관의 특징은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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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과제 해석
task_interpretation서유구가 비판한 성리학적 가치관의 구체적인 내용을 파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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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정보 추출
information_extraction성리학의 특징과 서유구의 태도에 관한 정보를 추출한다.
- 성리학은 도덕과 윤리 같은 정신적인 가치만 유독 강조했다.
- 물질생활의 가치를 부정하거나 그것을 도덕과 윤리적인 가치보다 하위에 두었다.
- 서유구는 이러한 성리학적 가치관에 대단히 비판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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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근거 선택
evidence_selection성리학적 가치관의 핵심 내용인 정신적 가치 강조와 물질적 가치 경시 부분을 선택한다.
- 도덕과 윤리 같은 정신적인 가치만 유독 강조했다.
- 물질생활의 가치를 부정하거나 그것을 도덕과 윤리적인 가치보다 하위에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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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논리 통합
logical_integration성리학이 도덕과 윤리라는 정신적 가치를 최우선시하며 물질적 생활의 가치를 낮게 평가했다는 점을 결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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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결론 도출
conclusion_formulation성리학은 도덕과 윤리 같은 정신적 가치만을 강조하고, 물질생활의 가치를 부정하거나 도덕적 가치보다 낮게 두는 특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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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답변 생성
answer_generation질문에 대한 최종 답변을 작성한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성리학은 도덕과 윤리 같은 정신적인 가치만을 유독 강조하며, 물질생활의 가치를 부정하거나 도덕 및 윤리적 가치보다 하위에 두는 특징을 가진다.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성리학이 정신적 가치를 중시하고 물질적 가치를 경시했다는 문맥의 내용을 바탕으로 서유구가 비판한 대상의 특징을 도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