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맥 (context)
그런 점에서 ‘페미니즘 리부트’의 초창기에 등장한 ‘미러링’은 꽤 흥미로운 대항표현이었다. 사실 처음 ‘대항표현 만들기’라는 주제를 받아들었을 때, 제일 먼저 생각난 것도 ‘미러링’이다. 2015년의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한국사회는 메갈리아를 통해 집단화된 대항표현에 직면하였다. 패러디인 ‘미러링’은 언어 수행적 효과를 일으켰고, ‘메르스를 확산시킨 김치녀’라는 가짜뉴스에 맞서 ‘메갈리아’라는 대항표현을 만들어냈다. ‘#나는 페미니스트다’, ‘#나는 메갈리안이다’와 같은 해시태그 운동이나 메갈리아가 생산해냈던 ‘남류문학’ 패러디 등은 정돈되고 단정한 언어를 해치고 나와 힘을 가진 말이 되었다. 소라넷 사이트를 폐쇄하고 불법촬영물 공유에 대해 문제제기한 것은 이러한 대항표현의 일상화와 깊은 연관을 갖는다. 이제 최소한 ‘김치녀’가 혐오표현이며 함부로 사용해선 안 된다는 식의 공통감각은 만들어진 것이다. 정희진의 지적처럼 “일베에 맞서 조직적으로 대항”하는 위반의 언어를 가진 것은 여성들이었다.(정희진, 「메갈리아는 일베에 조직적으로 대응한 유일한 당사자」, 『한겨레』, 2016.7.30.)
이 위반의 말은 몹시 거칠고 욕설이 섞여 있다. 노동자의 말, 여성의 말, 소수자의 말은 언제나 트러블을 일으켜왔다. ‘불화’의 정치는 치안의 질서를 의심하게 하고, 이 의심을 통해서 사회의 공론장은 진보할 수 있다. 정치적 활동은 어떤 신체를 배정된 장소로부터 이동시키거나 그 용도를 변경한다. 보일 만한 장소를 갖지 못했던 것을 보게 만들고, 소음으로만 들렸던 것을 담론으로 알아듣게 만드는 것이다.(자크 랑시에르, 『불화』, 진태원 역, 길, 2015) 이러한 자리바꿈이 말의 정치이고, 여성혐오에 대한 대항담론들이 만들어내는 정치의 장소이다. 여성들의 말은 거칠고 폭력적이고 조롱으로 가득차 있다. 이는 기존의 감각들이 인정하고 있는 ‘좋음’의 가치와는 다르다. 여성에게 허락된 언어와도 다르다. 논리적이고 이성적이며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해 객관적인 근거를 대는 그런 ‘좋음’과는 다른 이 말은 계속 불편함을 준다. ‘미러링’은 정치적 합리성 혹은 토론의 합리성이 가진 한계를 노출한다. 상호 주관적인 관계를 떠맡는 당사자들끼리의 만남과 달리, 여성혐오와 대항언어의 만남은 서로 평등하지 않다. 좀 더 온건하게 말하라는 명령이 치안의 목소리와 겹쳐지는 것은 비단 페미니즘과 여성혐오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만은 아닐 것이다.
오늘 토론회는 혐오표현에 어떻게 대항할 것인가를 논의하는 자리다. 김보명 선생님의 발표에서 지적한 것처럼, 최근 공론장에서 등장하는 혐오표현은 신자유주의화된 한국사회에서 구조를 비가시화한 채 자신을 약자로 정의하는 흐름과 조우한다. 혐오의 일상화는, 경제 위기 앞에서 남성들 역시 고통을 경험하고 있기에 우리 모두는 고통받는 자로서 동일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여기는 데서 기인한다는 김학준의 지적은 그런 측면에서 흥미롭다.(김학준, 「인터넷 커뮤니티 ‘일베저장소’에서 나타나는 혐오와 열광의 감정동학」, 서울대 사회학과 석사논문, 2014.) 이런 상황에서 혐오표현은 일종의 ‘약자 경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파시즘과 제노사이드에서 아리아인의 자부심을 근거로 타민족에게 폭력을 행사했던 것과 달리, 현재 한국에서 일상화된 혐오는 ‘나도 약자이기 때문에 나와 타자 사이의 구조적 차이는 없고 그렇기 때문에 혐오는 정당하다’는 식으로 정당화되고 있다. ‘남성혐오는 없다’라는 설명 자체가 통하지 않는 것이다. 여성과 남성이 서 있는 구조적 위치의 차이를 보지 않겠다고 결정한 이상, 혐오는 상호적인 것이 된다.
혐오의 정치학은 신자유주의 질서가 만들어내는 파편화된 개인성이 동시에 그것이 삭제하는 구조적 불평등의 맥락 속에서 작동할 때 강화된다. 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폭력이 아닌 놀이, 차별이 아닌 (자유로운 의견의) 표현인 것처럼 주장 혹은 오인되는 배경에는 혐오가 작동하는 구조적, 거시적 맥락에 대한 삭제가 있다.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더 스펙이 좋고, 성소수자들은 너무 가시적이고, 장애인들은 복지의 수혜자들이며, 노인들은 부유하고, 난민은 강력하다는 믿음에는 구조적 차이를 보지 못하는, 따라서 평등을 원자적 개인들 간의 동질성으로 보는 오인(misconception)이 작용한다. 사회구조적 맥락에 삭제된 상태에서의 평등은 원자적 개인들 간의 실력/힘의 차이로 상정되며, 소수자들을 위한 정책적 보호나 지원은 게임의 법칙을 왜곡하는 불공정한 권력으로 인식된다.
드러나는 혐오 또는 혐오표현은 그것을 형성하는 구조적 배경을 가짐. 혐오는 대개 차별과 연관지어 검토됨, 그런데 한국사회에서 '혐오'로 인식된 많은 현상들이 차별과 다른 배경을 가짐. 일베의 여혐과 폭식투쟁 사이의 거리. 어떤 의견이나 주장을 '혐오스러운 표현'을 통해 드러내는 배경에 경제사회적 문제가 있다는 공통점을 짚을 수는 있으나 그러한 의견이나 주장이 형성되는 맥락은 다르다. 5.18항쟁을 둘러싼 역사왜곡도 마찬가지. 문제는 여러 배경들 중 차별에 대한 인식이 지극히 취약하다는 것. 동성애혐오와 가짜뉴스가 버무려진 동영상. 교수와 변호사가 말하고 국회의원들이 반복하고 국민일보 등 언론이 거들면서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해가고 있는데 어디에서도 고리를 끊어내는 주장들을 하지 않음. '종북'이나 '빨갱이'에 대한 대응과의 차이. 역사적 경험의 차이-사회적 감각의 차이. (2015년 진영 의원이 대표발의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은 '특정 지역 또는 특정 지역 사람을 비하 모욕하여서는 아니된다'는 내용 담고 있음. 2018년 지방선거혐오대응전국네트워크로 신고 접수된 내용 상당수는 동성애혐오였음.)
한국사회에서 혐오는 일베의 등장과 더불어 본격적인 논의와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되짚어보자면 혐오 정치학은 흔적은 퀴어문화축제와 차별금지법 제정으로 대표되는 성소수자인권운동에 대한 대중 및 기독교의 반대 목소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청년세대의 (여성)혐오와 보수기독교의 (동성애)혐오는 겹치지만 구별된다. 청년세대에게 있어서 혐오가 사회에 대한 분노와 불만을 우회하거나 대리하는 문화적 놀이가 되었다면, 보수기독교에게 혐오는 차별금지법에 막아내는 힘으로 활용되고 있다. 청년세대의 혐오가 구조적 모순에 대한 정치적 탈출구를 찾지 못한 결과에서 일어나는 좌절의 (왜곡된) 표출이라면, 보수기독교의 혐오는 교회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에 가깝다. 그러나 두 가지 사례의 혐오 모두 정치적 문제를 탈정치화하고 이를 통해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과 배제를 재생산하다는 점에서는 유사한 효과를 갖는다.
한편 성소수자, HIV감염인 등에 대한 혐오/차별은 조직화된 형태로 계속 심각해져가고 있으며, 이제 이주민, 난민, 무슬림에 대한 혐오/차별 역시 같은 기반에서 조직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혐오/차별선동이 조직될 수 있었던 기반을 국가가 12년 간 차별금지법 제정을 회피하며 계속 제공해왔다는 것이다. 정부가 그동안 ‘성적 지향 등에 대한 사회적 논란’ 때문에 차별금지법을 만들 수 없다는 이야기를 반복하면서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조직화하는 주장들은 정부가 경청해야할 의견의 하나로 격상되어왔고, 어떤 사회구성원의 인권과 평등을 부정하는 주장이라도 사회적 의견의 하나이니 받아들여야 한다는 신호가 10년 넘게 사회에 울려퍼졌다. 성소수자에 대한 무지나 낯섬에서 오는 편견은 지속적인 교육과 캠페인을 통해 없애나갈 수 있다. 실제로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은 세대가 낮을수록 빠르게 개선되어가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교육과 캠페인을 할 수 있는 기반조차도 성소수자에 대한 조직적인 혐오/차별선동에 의해 공적 영역에서 계속 삭제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성소수자 혐오를 둘러싼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이렇게 계속 힘을 얻어온 조직화된 선동이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청년세대의 혐오와 보수기독교의 혐오가 갖는 발생 배경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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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과제 해석
task_interpretation청년세대와 보수기독교가 나타내는 혐오의 성격과 그 원인이 어떻게 다른지 비교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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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정보 추출
information_extraction문맥에서 청년세대의 혐오와 보수기독교의 혐오에 관한 설명을 추출한다.
- 청년세대의 (여성)혐오와 보수기독교의 (동성애)혐오는 겹치지만 구별된다.
- 청년세대의 혐오가 구조적 모순에 대한 정치적 탈출구를 찾지 못한 결과에서 일어나는 좌절의 (왜곡된) 표출이라면, 보수기독교의 혐오는 교회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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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근거 선택
evidence_selection두 집단의 혐오가 발생하는 구체적인 동기를 나타내는 문장을 선택한다.
- 청년세대의 혐오가 구조적 모순에 대한 정치적 탈출구를 찾지 못한 결과에서 일어나는 좌절의 (왜곡된) 표출
- 보수기독교의 혐오는 교회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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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논리 통합
logical_integration청년세대는 구조적 모순에 대한 좌절의 표출로, 보수기독교는 위기 타개를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 대조하여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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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결론 도출
conclusion_formulation두 집단의 혐오가 발생하는 배경의 차이를 명확히 서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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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답변 생성
answer_generation최종 답변을 작성한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청년세대의 혐오는 구조적 모순에 대한 정치적 탈출구를 찾지 못한 결과로 나타나는 좌절의 왜곡된 표출인 반면, 보수기독교의 혐오는 교회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에 가깝다는 차이가 있다.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청년세대의 혐오와 보수기독교의 혐오가 나타나는 동기를 각각 '구조적 모순에 따른 좌절의 표출'과 '교회 위기 타개를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 대조하여 파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