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맥 (context)
중앙통로의 안쪽 제단 뒤로 세미돔(semi-dome, 반구형의 돔을 다시 반으로 나눈 모양)과 그 아래 반원형의 후진(後陳, apse)에서 뿜어져 나오는 황금빛 광채는 신비로움을 더해준다. 가까이 다가서서 바라보면 황금빛 반구형 돔 중앙에는 예수의 모습이, 그 아래에는 5명의 성인이 모자이크로 묘사되어 있다. 비잔틴 양식의 건축에서 볼 수 있는 모자이크화를 로마네스크 양식인 이 주교좌성당에서 마주하는 순간이다. 높이 15m, 폭 11m인 이 모자이크화는 영국의 장식미술가인 조지 잭(George Jack)이 1927년에 시작하여 1938 년에 완성한 작품이다. 기독교에서는 초기 기독교 시대 이후 교회를 하나의 소우주로 생각해왔는데 그 소우주 가운데 가장 신성한 공간이 제단의 안쪽인 후진이다. 이 후진은 교회에 모인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곳으로 천상을 상징한다. 이 천상의 중심에 반신상의 예수 모습이 그려 져 있다. 오른손은 세 손가락을 펴서 삼위일체를 상징하고 있고 왼손에는 ‘나는 세상의 빛이다’라는 글귀가 새겨진 성경을 펼쳐들고 있다. 예수의 좌우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약자인 라틴어 ‘IC’, ‘XC’가 쓰여 있다. 아래쪽에는 중앙의 성모자를 중심으로 좌우로 각 2명의 성인이 제작되어 있다.
성모자상을 중심으로 좌우의 성 사도 요한과 예언자 이사야는 각각 신약과 구약성경을 대표하는 인물로 묘사되었다. 가장 왼쪽에 있는 성 스테파노는 예수를 전파하다 유대인들의 미움을 받게 되어 돌팔매질을 당해 순교한 최초의 순교자이다. 가장 우측에 있는 성 니콜라스는 4세기경 소아시아 뤼치아 지방 미라(Myrae)의 주교였는데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구제해주는 성인으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5명의 성인이 묘사된 그 아래쪽으로는 12개의 기둥이 후진의 반원을 둘러싸고 있다. 그런가 하면 중앙통로와 좌우의 익랑(翼廊,trancept)이 교차하는 중앙부에는 쌍으로 이루어진 기둥들이 좌우에 각 3개씩 모두 12개가 놓여 있다. 중앙통로 좌우로 도열된 12개의 기둥이 그러하듯 이들 역시 12사도를 상징하고 있다. 제단의 왼쪽에는 일반인은 출입이 금지된 쪽문이 있는데 이 안쪽에는 성직자들이 출입하는 공간이 계획되어 있다. 타원형으로 된 나선 계단은 지하의 세례자 요한성당과 제단 위쪽 종탑을 연결해준다. 이 성당에서는 평일에는 매일 새벽 6시, 낮 12시, 저녁 6시에 종을 타종한다. 예배시간이나 결혼식, 장례식 때에도 종을 울 리는데 서울에서는 유일하게 이 성당의 종소리만 들을 수 있다고 한다.
계단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면 세례자 요한성당이 이어진다. 낮은 층고의 아담한 이 성당 역시 실내는 중앙통로 좌우와 제단을 둘러싸고 각각 12개씩 기둥이 놓여있다. 역시 12사도를 상징한다. 중앙통로 바닥에는 3대 교구장 조마가 주교의 동판이 놓여 있고 그 하부에는 그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고 한다. 마침 낮 12시가 되어 밖에는 예배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온다. 평시에는 이 지하성당에서 예배가 이루어진단다. 신부님들과 수녀님들이 한 분 한 분 들어오시는 모습을 보며 나는 발걸음을 옮긴다. 이곳저곳을 안내해주시면서 소상히 알려주시던 신부님과 함께 인증샷을 찍고 발걸음을 성당 밖으로 향한다. 대성당 뒤쪽에 한옥으로 지어진 주교관과 수녀원, 경운궁 양이재가 자리 잡고 있다. 양이재는 구한말 덕수궁 내에서 대한제국의 황족과 귀족들의 근대식 교육장으로 사용되었던 건물인데 성공회에서 이를 매입하여 대성당 뒤편에 옮겨놓았다. 대성당의 서양 양식과 한옥이 함께 어우러져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다. 차를 움직여 성당을 떠나기 전 서울시청 쪽을 바라본다. 사라진 국세청 별관 덕분에 운전석에 앉아서도 가슴이 탁 트이는 개방감이 몰려온다. 비움의 미학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느껴보는 순간이다.
문화재청과 사단법인 한국문화재지킴이단체연합회(약칭 한지연)는 이러한 민간 참여의 역사성과 문화재지킴이의 훌륭한 정신을 본받아 문화재지킴이의 날을 선포하기에 이른다. 이는 온 국민이 문화재의 가치를 바로 알고 문화재를 가꾸고 지켜가는 참여형 운동으로 확산시키기 위함으로 2018년 6월 21일, 경복궁 수정전에서 전야제를 통해 6월 22일을 「문화재지킴이 날」로 선포했다. 이로부터 1년이 지난 6월 22일, 문화재청과 한지연은 문화재지킴이 날 기념식을 왕조실록을 이안했던 역사적 현장인 용굴암이 있는 정읍 내 장사에서 ‘2019년 문화재지킴이 날’ 기념식을 가졌다. 이 행사는 오전 10시 30분 전북 정읍시 내장산 경내 내장사 앞 야외 특설무대에서 정관계 인사를 비롯한 전국의 지킴이 회원 등 1,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이날 행사에서 ‘실록 이안 재현연극’, ‘축하공연’, 문화재지킴이 유공자에 대한 표창장 수여와 한국문화재지킴이단체연합회장의 대회사, 정읍 시장의 축사에 이어 문화재청 차장, 국회의원 등이 단상에 올라 뜨거운 열기를 치하했다.
기록의 나라 조선이라는 이름은 바로 관군이 아닌 백성이 중심이 되었던 문화재지킴이의 선례이다. 이러한 정신은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다. 1990년대 민간에서 시작된 문화재지킴이 운동은 소중한 문화유산을 알고, 가꾸고, 지키고, 이어나가는 문화재사랑운동으로 전파되었다. 2005년부터 문화재청은 민관협력의 ‘한문화재 한지킴이’ 운동을 전국으로 확산시켜나갔으며, 오늘날 전국 10만여 명의 문화재지킴이가 제각기 맡은 바 위치에서 활동하고 있다. 전란의 위기에서도 문화재를 지켰던 선조들의 훌륭한 정신을 이어받아, 오늘날의 문화재지킴이 역시 지킴이 활동에 열과 성을 다하고 있다. 특히 한지연은 문화재청 문화유산교육 팀과의 긴밀한 협조 아래 각종 문화재지킴이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상시적인 문화재 정화활동 및 모니터링을 비롯하여 문화재지킴이 위촉교육, 문화재지킴이 권역별 포럼 등 지역 네트워크 조성에도 힘쓰고 있다. 나아가 미래세대 문화재지킴이 양성을 위하여 「청소년 문화재지킴이」, 「청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지킴이」 사업을 실시하여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문화인재 양성에도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경기도 파주시 군내면 백연리 산72-1번지 일원에 위치한 캠프그리브스는 1953년 7월 한국전쟁 정전협전 후 미군기지로 공여되어 미군이 사용하다 2004년도에 철수되었다. 2004년 8월 미 육군 제506연대 보경대대가 주둔해 오다가 1977년 철수 이후 2007년 8월 한국 정부에 반환된 캠프 군사시설이다. 과거 50여 년간 미군의 기지로 사용된 군사시설로 미군 철수 이후 캠프그리브스는 평화와 문화의 예술 공간으로 변모되어왔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미군시설이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DMZ 내 군사시설을 체험할 수 있는 숙박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전시와 프로그램 등을 진행하고 있다. 미군 주둔의 캠프 시설은 미 건축물의 형태와 모습을 간직한 독특한 특성과 함께 지리적 장소와 용도에 관한 중요한 역사성을 지니고 있다.
2002년 한미 연합 토지관리계획 협정이 체결되고 2004년에 개정되면서 기존의 미군기지가 반환되었다. 국방부는 캠프그리브스가 위치적 특성상 군사작 전 시설임을 감안해 군사시설로 사용하기를 원했지만, 50여 년간 미군주둔으로 지역발전에 어려움을 겪은 파주 시민과 경기도의 노력을 통해 원형 보존 원칙 및 캠프그리브스를 역사 문화공간으로 지정하여 활용하는 내용의 협약서가 작성되었다. 2014년 10월 문화체육관광부 산업단지 및 폐산업시 설 문화 재생 사업 공모에 당선되면서 캠프그리브스는 변화의 전환점이 되었다. 캠프그리브스 내 10개의 공간을 문화 재생사업을 통해 리모델링이 되고 새로운 플랫폼을 세우기 위한 기반작업을 시작하였으며, 기존의 유스호스텔 건물과 함께 탄약고, 퀀셋막사, 조적도 건물, 하사관숙소, 볼링장 등의 다양한 장소를 유효 공간으로 활용 가능하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를 알리기 위해 전시들을 새롭게 기획하여 진행하면서 DMZ에 위치한 캠프그리브 스를 기억하고 문화 예술을 통해 시대의 흐름에 걸맞는 새로운 공간으로서 문화재생사업이 시작되었다. 캠프그리브스의 문화재생사업은 유스호스텔 운영과 함께 주변 시설인 퀸셋막사, 탄약고, 볼링장 등과 야외를 파일럿 전시를 통해 공간의 정체성과 변화를 알리기 위해 진행되었다.
캠프그리브스는 DMZ 남방한계선에서 불과 2km 남짓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파주 민간인 통제구역 안에 있는 최초의 체험형 유스호스텔이기도 하다. 출입 제한구역인 민간인 통제선 내에 입지하고 있어서 개발에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지만 자유로, 경의선과 가까운 위치에 있어 서울과도 접근성이 좋으며 임진강과도 인접해 있어 경관과 환경이 뛰어나다. 약 700여 명의 미군들이 본국으로 철수한 후 캠프그리브스는 활용성 없는 공간으로 남겨졌다가 2013년 DMZ 체험형 유스호스텔로 다시 탄생하였다. 미군 장교들의 숙소 한 동을 리모델링한 유스호스텔은 최대 240명을 수용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으며 1층에는 사무실과 소강당, 2~3층에는 숙소, 4층에는 대강당과 식당이 자리 잡고 있다. 또한 다양한 통일 관련 프로그램과 소통을 위한 행사들을 진행하고 있다. 캠프그리브스는 과거에 미군뿐만 아니라 다양한 국 적의 UN군과 한국 근무자, 지역 주민 등이 함께 공간을 사용하고 거쳐갔으며 한국전쟁과 정전후의 중요한 많은 이야기가 남겨졌을 것으로 보여진다. 새로운 시각으로 보는 이들의 긴 여정과 장소 특성에 대한 연구는 다양한 이슈를 이끌어낼 수 있으며 이를 통해 향후 캠프그리브스는 유사한 환경의 다양한 활용방법과 역할에 대한 우수한 선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퀸셋막사 외에도 기획 전시관이 된 무기실과 중대사무실과 설치 작품을 전시해온 탄약고와 볼링장 같은 시설 공간이 있다. 또한 작가 스튜디오 레지던시 및 전시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는 독신 하사관 숙소 등 미군 군사시설은 특색 있고 문화적인 새로운 공간으로 활용되고 그 안에서 예술을 담고 관객과 소통의 역할을 하고 있다. DMZ와 캠프그리브스의 역사와 공간성이 가지는 여러 부분의 가치와 더불어서 현대적이며 예술성 있게 활용됨으로써 일반인들과 예술인들이 함께 경험하고 만들어나가는 특색 있는 장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곳에 설치된 예술 작품은 우리의 과거와 현재, 미래상에 대한 기억과 희망을 흥미로운 방식을 통해 소통하고 전달할 수 있으며 앞으로도 한반도 평화통일에 기여할 수 있는 공간이 될 것으로 기대해본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캠프그리브스의 유스호스텔 건물은 층별로 어떤 용도의 공간들이 배치되어 있는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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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과제 해석
task_interpretation캠프그리브스 내 유스호스텔 건물의 각 층별 공간 구성 및 용도를 파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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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정보 추출
information_extraction문맥에서 캠프그리브스 유스호스텔의 층별 구조에 관한 정보를 추출한다.
- 미군 장교들의 숙소 한 동을 리모델링한 유스호스텔은 최대 240명을 수용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으며 1층에는 사무실과 소강당, 2~3층에는 숙소, 4층에는 대강당과 식당이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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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근거 선택
evidence_selection층별 용도가 명시된 문장을 핵심 근거로 선택한다.
- 1층에는 사무실과 소강당, 2~3층에는 숙소, 4층에는 대강당과 식당이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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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논리 통합
logical_integration추출된 정보를 층별로 분류하여 정리한다. 1층은 사무실과 소강당, 2~3층은 숙소, 4층은 대강당과 식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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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결론 도출
conclusion_formulation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층별 구성 요소를 명확히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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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답변 생성
answer_generation최종 답변을 작성한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1층에는 사무실과 소강당이 있으며, 2~3층에는 숙소가, 4층에는 대강당과 식당이 위치한다.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캠프그리브스의 유스호스텔 건물은 1층에 사무실과 소강당, 2~3층에 숙소, 4층에 대강당과 식당이 자리 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