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맥 (context)
반면, ‘현실전쟁’에서는 변수 간의 측정이 불가능하므로 갈릴레오적 이상화가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첫째, 독립변수로서 마찰을 규정할 수 없다. 클라우제비츠는 마찰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규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둘째, 종속변수인 승리도 명확하게 규정될 수 없다. 클라우제비츠가 정의한 전쟁의 승리는 상대에게 아측의 의지를 강요하는 것이다. 이 때 상대의 의지와 아측의 의지를 측정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이상화를 위해 외생변수로 두고 논의에서 제외시켰던 정치 변수를 다시 살펴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런 차원에서 클라우제비츠는 절대전쟁의 인과성이 제한적으로나마 ‘현실전쟁’에서 작동할 것이므로, 주력결전을 통한 섬멸을 통해 폭력을 극대화할 필요가 있고, 이를 위해 결전이 일어나는 공간에서 상대적 수적우위를 확보함과 동시에 마찰을 관리하는 것이 ‘현실전쟁’의 승리가능성을 높일 수 있으나 이러한 노력이 ‘현실전쟁’의 불확실성을 완전히 제거하거나, 외생변수인 정치변수와의 상호작용마저 극복할 수 없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다.
사실, 정면에서 오스트리아군을 고착하는 동안 주력은 우회시킨다는 기본적인 기동계획은 나폴레옹의 기존 전역이나 17세기 중엽의 위대한 군사 전략가들을 통해서도 시도된 것이었다(Chandler, 1973, p. 385). 따라서 조미니가 전쟁의 승리 법칙이라고 자신했던 기동을 통한 작전선 차단은 발상의 측면에서는 그렇게 획기적인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클라우제비츠의 관점에서 나폴레옹이 잘했던 것은 울름 전역 준비 및 실시과정에서 마찰을 극복하고, 결정적인 기동을 달성하기 위한 전략적 예비대를 마련하는 한편, 결정적인 전투 승리를 전쟁승리로 연결시키기 위한 조치를 취한 것이다. 마찰 극복의 측면에서 나폴레옹은 크게 세 가지의 조치를 취했다. 첫째, 나폴레옹은 행군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마찰요소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상술한 것처럼 울름에서의 기동은 그 구상 측면에서는 크게 새로운 것이 아니었지만, 그동안 실시된 기동보다 대규모의 병력을 장거리로 행군했다는 점에서는 병력의 지휘통제와 보급 측면에서 더 많은 마찰요소에 노출시키는 것이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나폴레옹은 부대의 일일 이동거리를 수차례 재계산했으며, 현지의 보급 상황에 맞추어 부대 전개 명령을 하달했다.(Chandler, 1973, pp. 384-385)
또한 나폴레옹은 대비하던 결전이 일어나지 않자 끝까지 적을 추격하여 섬멸을 추구했다. 사후, 자신의 전역을 평가하면서, 나폴레옹은 프리드리히(Frederick II)와 자신의 차이점은 결정적인 전투 이후에도 적이 완전히 패퇴할 때까지 연속적인 추격을 감행한 것이라고 강조하며, 울름에서 초기 전투가 순탄하게 종결된 이후에도 연속적으로 적을 추격하여 44,000명의 적을 추가로 생포했다는 점을 들었다(Colson, 2015, p. 199). 실제로 당시의 명령서에 의거하면 나폴레옹은 오스트리아군의 탈출이 차단된 10월 14일 이후에도 뮈라(Murat)를 통해 탈출한 적 일부병력에 대한 지속적인 추격을 명령했다(Colson, 2015, pp. 199-200). 하지만 클라우제비츠가 울름 전역을 예외 사례로 꼽은 이유는 이러한 사전 준비 및 ‘천재적’ 지휘를 통한 마찰요소의 최소화, 결전 시도와 같은 다양한 노력들도 울름의 승리를 궁극적으로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폴레옹 스스로도 울름의 승리요인을 병사들의 인내와 용맹성, 황제에 대한 신뢰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잘못된 계략으로 돌렸다(Colson, 2015, pp. 141-143, p. 195).
하지만 이러한 변화는 곧 한계에 직면했다. 1960년대 소련의 핵 투사능력이 제고되어 미국 본토에 대한 소련의 핵 타격이 가능해지면서 핵무기 사용은 상호공멸을 불러일으킨다는 인식이 생기게 되었고, 핵무기는 철저히 개념전쟁 영역에서만 존재했을 뿐, ‘현실전쟁’에서는 사용할 수 없는 무기로 간주되었다. 재래식 군사 영역에서는 기존의 위협이 지속되었다. 이제 미국은 핵전쟁으로까지의 확전(escalation)은 막으면서도, 적의 위협 강도에 따라 맞춰서 상대의 공격의지를 억제하기 위한 유연반응전략(flexible response)을 구사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합리적 국방 관리의 믿음은 유지되었다. 군사전략에도 체계적이고 실증적인 방법을 적용할 수 있다고 보던 민간 전략가들은 불확실성에 노출되어 있는 지상 작전에 의존하기보다는 살상규모를 측정 가능한 공군의 전략폭격을 활용함으로써, 핵무기에 의존하지 않는 제한전쟁(limited war)에서도 절대전쟁의 살상 공식을 제한적으로나마 적용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점진적 압박 전략을 통해서는 재래식 분쟁을 확실하게 억제할 수 없음이 드러났다. 설령 군사적 수단의 섬멸효과를 확실히 측정할 수 있다고 간주하더라도, 군사적 수단을 통해 상대에게 의지를 강요할 수 있을지 여부는 정치 요소에 영향을 받는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베트남 전쟁에서 핵능력의 과시 및 전략폭격을 통한 인명살상만으로는 적의 의지를 꺾을 수 없다는 것이 실제로 드러났다. 그 결과, 체계적 방법을 활용해 군사적 수단을 관리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국방관리 중심의 안보정책은 군사이론가들의 비판 대상이 되었다. 다수의 학자들은 군대가 순수한 군사 부문에 대한 관심보다는 관료정치 및 관리 기술의 향상에만 집중했다는 점을 비판했다.23) 일부 학자들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서 체계적인 접근을 비판하고, 전통주의적 관점을 옹호하기도 했다(McMaster 1998, ch. 4; Vego, 2015, pp. 61-63).
그러나 당시의 안보전략의 실패를 근거로 군사이론의 체계적 관점까지 비판하는 것은 군사이론을 지나치게 단순화시킨 발상이다. 1차 상쇄전략은 군사이론에 대한 체계적 관점이 적용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합리적 국방관리의 한계는 최소한의 이상화 없이도 군사적 변수와 정치적 변수의 상호작용을 체계적으로 분석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었다. 합리적 국방관리자들의 기대와 달리 핵무기가 절대무기라는 사실이 전쟁 승리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었다. 절대전쟁에서의 승리공식이 가능해졌다고 하더라도, 이는 결국 개념 전쟁에서의 승리에 지나지 않는다. 전쟁의 전체상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외생변수로 제외시켜두었던 ‘정치’ 변수를 다시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합리적 국방 관리를 추구하는 이론가들은 국가가 합리적인 선택(rational choice)을 하는 행위자로서 다양한 수단을 통해 자국의 목적 달성 가능성을 극대화하는 존재이므로, 군사영역도 정치에 의해 도구처럼 사용될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군사-정치의 복잡한 상호작용이 ‘합리적 선택 모형’으로 단순화되어 설명될 수 없다는 사실은 이미 Allison and Zelikow(1999, ch. 3-4)가 쿠바 미사일 위기의 사례를 통해 반박한 바 있다.
요컨대, 합리적 국방 관리는 정치와 군사변수를 동시에 포함한 전쟁의 현실을 그대로 두고 갈릴레오적인 이상화를 실시한 것이었다. 이들은 핵무기의 무제한적인 폭력성에 근거하여 군사 부문이 가진 불확실성을 계량화할 수 있다고 믿었고, 합리적 선택 모형에 입각하여 합리적인 정치에 의해서 군사적 수단이 통제될 수 있으므로, 경제학적인 접근법으로 정치-군사 관계를 계량화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군사 조직에 대한 이론이 아무리 정교해지더라도 정치 요소까지 반영하여 전쟁을 분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 차원에서 1차 상쇄전략 실패는 클라우제비츠와 조미니 모두가 분석 불가능하다고 동의했던 전쟁의 전체상에 대한 갈릴레오적 이상화가 야기한 실패였다. 따라서 1차 상쇄전략의 실패는 체계적 관점에 대한 전통주의적 관점의 승리 사례가 아니다. 오히려 1차 상쇄전략의 실패는 순수한 군사 부문에 대한 이론화를 우회한 채, 정치변수와 군사변수의 상호관계를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보여줌으로써, 순수한 군사 부문의 이론화 필요성을 촉구하는 사건이었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클라우제비츠의 관점에서 나폴레옹이 울름 전역에서 마찰을 극복하기 위해 취한 구체적인 조치 세 가지는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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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과제 해석
task_interpretation나폴레옹이 울름 전역에서 마찰을 극복하기 위해 수행한 세 가지 조치를 찾아 기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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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정보 추출
information_extraction문맥에서 나폴레옹의 마찰 극복 조치와 관련된 내용을 추출한다.
- 마찰 극복의 측면에서 나폴레옹은 크게 세 가지의 조치를 취했다.
- 첫째, 나폴레옹은 행군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마찰요소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 부대의 일일 이동거리를 수차례 재계산했으며, 현지의 보급 상황에 맞추어 부대 전개 명령을 하달했다.
- 또한 나폴레옹은 대비하던 결전이 일어나지 않자 끝까지 적을 추격하여 섬멸을 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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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근거 선택
evidence_selection질문에서 요구하는 '세 가지 조치'에 해당하는 구체적 근거를 선별한다.
- 행군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마찰요소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 부대의 일일 이동거리를 수차례 재계산했으며, 현지의 보급 상황에 맞추어 부대 전개 명령을 하달했다.
- 결전이 일어나지 않자 끝까지 적을 추격하여 섬멸을 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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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논리 통합
logical_integration추출된 근거들을 정리하여 나폴레옹의 세 가지 행동 양식으로 통합한다. 1) 행군 중 마찰 최소화 노력, 2) 이동거리 재계산 및 보급 상황에 따른 명령 하달, 3) 적에 대한 지속적인 추격 및 섬멸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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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결론 도출
conclusion_formulation문맥에 명시된 내용을 바탕으로 나폴레옹의 조치를 세 가지 항목으로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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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답변 생성
answer_generation최종 답변을 작성한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나폴레옹이 취한 세 가지 조치는 다음과 같다. 첫째, 행군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마찰 요소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둘째, 부대의 일일 이동거리를 수차례 재계산하고 현지 보급 상황에 맞춰 부대 전개 명령을 하달했다. 셋째, 대비하던 결전이 일어나지 않을 경우 끝까지 적을 추격하여 섬멸을 추구했다.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나폴레옹은 울름 전역에서 행군 마찰 요소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부대의 일일 이동거리를 재계산하여 현지 보급 상황에 맞춰 부대 전개 명령을 하달했으며, 결전이 일어나지 않자 적을 끝까지 추격하여 섬멸을 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