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맥 (context)
1960년대 후반 우리 정부와 민간이 업무 전산화를 위해 최초 도입한 컴퓨터는 당시 국산 컴퓨터가 생산되지 않았기에 모두 미국산과 일본산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IT강국으로 도약한 대한민국의 명성과 역량에 걸맞게 국산 컴퓨터의 개발노력은 이미 그보다 몇 년 앞서 시도되고 있었다. 1962년 8월 정보통신 분야의 선구자 이만영 박사가 국내 최초로 진공관을 조립하여 소형 아날로그 전자계산기를 제작, 가동에 성공하였다. 미국 콜로라도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1960년 귀국한 이만영 박사는 한양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 컴퓨터를 개발하면서 겪은 어려움을 다음과 같이 토로한 적이 있다. ‘컴퓨터를 제작하는 동안 가장 큰 애로사항은 각종 부속품을 입수하는 일이었다. 국내에서 생산할 수 없는 부속품을 구하기 위해 고물상들을 뒤져야 했다.’(전업건설신문, 1964.6.1.)
이처럼 민간부문에 컴퓨터 보급이 점차 확산되고 정보화가 진행되면서 컴퓨터 및 정보통신장비 등에 대한 수요가 늘어났고, 이에 따라 외국산 컴퓨터 수입비용 역시 증가하게 되었다. 따라서 당시 정부는 외화지출을 줄이고 컴퓨터 산업을 진흥하기 위해 컴퓨터 국산화 노력을 적극 추진하였다.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한국전자통신연구소(ETRI: Electronics and Telecommunications Research Institute), 삼성전자, 금성사, 현대전자, 대우통신이 참여하여 민관 합동으로 개발한 컴퓨터가 바로 ‘톨러런트(Tolerant)’였다. 당시 국가기간전산망조정위원회는 전산화에 필요한 컴퓨터를 국산화 개발하려는 정책 의도를 갖고 있었다. 따라서 정부가 개발사에 세세한 규격을 제시하였으나 이 같은 요구는 오히려 컴퓨터 개발의 제약요인이 되어 기대만큼의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였다.
공공부문의 전산화사업을 처음부터 외국업체에 넘기게 되면 국내 한국과학기술연구소같은 출연연구소의 독자적인 기술개발이나 연구기회가 사라지고 향후 추진될 국책 프로젝트 역시 외국업체에 의존하게 될 가능성이 컸다. 이에 비용조달의 어려움을 겪고 있던 체신부에서는 1970년 11월 OSI가 제시한 금액 규모의 20분의 1이 채 되지 않는 7,000만 원에 시스템을 1년 내에 구축하기로 한국과학기술연구소와 계약을 체결하였다. 당시 한국과학기술연구소는 시스템 개발에 대한 경험이 일천하여 OSI와 같은 외국 전문업체와 경쟁상대가 되지 못했지만, 국책 프로젝트를 고가에 외국업체로 넘기기보다 노력하면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강력한 의지만으로 과감하게 사업 추진을 결정하였다. 그렇게 프로젝트를 수주한 한국과학기술연구소는 당시 전산실 직원 50여 명 가운데 3분의 1 이상을 투입하며 프로젝트의 성공적 추진을 위해 사실상 총력전을 폈다.
1970년 초만 해도 컴퓨터는 고도의 과학기술분야 계산에만 사용될 것이라는 것이 다수 지식인들의 인식이었다. 또한 지식인들은 컴퓨터를 만능의 기계라는 경외심을 갖고 있던 일반인들과 달리 그 다양한 응용성이나 확장성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었다. 기업들 역시 이 같은 인식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인건비가 낮은 시기였던지라 컴퓨터 계산보다는 주판(珠板)의 기능에 의존하고 있었다. 이러한 현실을 일신하고 컴퓨터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확산시켜준 계기가 바로 1970년 4월 대통령에게 시범을 보인 경제기획원 예산업무 전산화와 1971년 체신부의 방대한 양에 이르는 전화요금고지서 발급업무 전산화였다. 또한 뒤이어 관세청·관상대·전매청·서울시 등 각 기관들이 자체 고유 업무를 각각 전산화하기 시작하였다.
1970년대 초반까지 정부 주요기관의 전산화는 한국과학기술연구소, 중앙전자계산소, 금융단전자계산본부(KBCC) 등 연구소나 공공 전산센터를 활용하는 형태를 취해오고 있었다. 하지만 1970년대 중반부터 저가의 고성능 미니컴퓨터 기종이 등장하고 민간기업의 전산시스템 도입이 급증하자 정부 기관에서도 독자기종의 컴퓨터 도입을 선호하게 되었다. 당시 언론에서는 이에 대해 ‘되를 벌고 말을 주는 국가차원의 소이대실(小利大失) 컴퓨터 도입 남발’이란 제목의 기사로 보도하기도 하였다. ‘값비싼 외화를 지불해야 하는 컴퓨터의 도입을 가능한 억제한다는 정부 방침에도 불구하고 정부기관의 컴퓨터 도입 대수가 늘고 있어 정부의 컴퓨터 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요청되고 있다. 정부는 정부기관의 무절제한 컴퓨터 도입을 억제하고 효율적으로 컴퓨터를 활용하기 위해 정부기관의 컴퓨터 이용센터로 과학기술처 산하에 중앙전자계산소를 세우고 대형 컴퓨터를 도입·가동하고 있으나 사실상 이와는 관계없이 각 부처의 독자적 컴퓨터 도입사례가 늘고 있다.’(1973.12.14. 동아일보)
당시 정부가 이처럼 전산화 관련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배경에는 업무처리의 기계화, 즉 전산화를 서두르지 않을 경우 향후 급증하는 업무를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정부 내부의 꾸준한 의견제기가 있었다. 더욱이 각급 공공기관들이 외국산 컴퓨터 도입을 준비하고 있어 향후 막대한 외화유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높았다. 이러한 배경 하에서 정부는 중앙행정업무처리의 과학화를 촉진하기 위해 1970년 4월 중앙전자계산소(NCC: National Computer Center)를 설립하였다. 당 시 과학기술처 소속으로 출범한 중앙전자계산소는 송길영 박사를 소장으로 기획과, 업무분석과, 처리과 등 3개과를 두고 프로그래머 18명을 포함한 총 32명 으로 구성되었다. 설립 당시에는 임시로 국립과학관에 사무소를 두었고, 신 정부종합청사가 완공되면 이전하여 본격적인 업무를 수행할 계획이었다.
이어 1974년에는 건설부 한강통제소에 CDC 3170시스템이 도입되어 그동안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던 홍수통제업무가 컴퓨터 작업체제로 바뀌었다. 같은 해 12월에는 경제기획원 통계국이 IBM 370-135시스템을 추가로 도입하였으며 해군본부에도 IBM S/3가 도입되면서 비로소 국방부를 비롯한 육·해·공군 정보시스템의 기초가 마련되었다. 1975년 2월에는 서울시교육위원회가 CDC 3100시스템을 도입, 교육행정정보화를 시작하고, 6월에는 지방행정관서로는 최초로 서울시가 UNIVAC 90-60 시스템을 도입, 지방세업무를 처리하였다. 또한 같은 해 10월에는 국세청이 CDC제품인 CYBER 172-4 기종을 추가 도입, 징세업무에 활용하였으며 1976년에는 육군이 IBM 370-125시스템을 설치하였고, 12월에는 농수산부가 IBM 370-125시스템을 설치, 농업통계업무를 처리하기 시작하였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1970년 체신부가 시스템 구축 계약을 체결할 당시, 한국과학기술연구소가 OSI와 같은 외국 전문업체와 경쟁하기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 사업을 추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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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과제 해석
task_interpretation체신부의 시스템 구축 계약 당시 한국과학기술연구소가 사업을 추진할 수 있었던 구체적인 이유를 파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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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정보 추출
information_extraction체신부와 한국과학기술연구소의 계약 내용 및 당시 한국과학기술연구소의 상황을 추출한다.
- 체신부에서는 1970년 11월 OSI가 제시한 금액 규모의 20분의 1이 채 되지 않는 7,000만 원에 시스템을 1년 내에 구축하기로 한국과학기술연구소와 계약을 체결하였다.
- 당시 한국과학기술연구소는 시스템 개발에 대한 경험이 일천하여 OSI와 같은 외국 전문업체와 경쟁상대가 되지 못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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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근거 선택
evidence_selection경쟁력이 부족함에도 사업을 추진하게 만든 직접적인 동기가 언급된 문구를 선택한다.
- 국책 프로젝트를 고가에 외국업체로 넘기기보다 노력하면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강력한 의지만으로 과감하게 사업 추진을 결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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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논리 통합
logical_integration기술적 경험은 부족했으나, 국책 프로젝트를 외국업체에 넘기지 않겠다는 의지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사업 추진의 핵심 동력이었음을 연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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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결론 도출
conclusion_formulation국책 프로젝트를 고가에 외국업체로 넘기기보다 노력하면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강력한 의지가 사업 추진의 원동력이었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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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답변 생성
answer_generation도출된 결론을 바탕으로 질문에 대한 답변을 작성한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국책 프로젝트를 고가에 외국업체로 넘기기보다 노력하면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강력한 의지 덕분에 사업을 추진할 수 있었다.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한국과학기술연구소는 시스템 개발 경험이 부족했음에도 국책 프로젝트를 고가에 외국업체로 넘기기보다 노력하면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강력한 의지로 체신부의 시스템 구축 사업을 추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