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맥 (context)
전자인사관리시스템 구축사업의 가장 큰 특징은 인사와 급여업무 전반에 대해 철저한 업무분석을 기초로 업무개선작업을 동시에 진행하였다는 점이다. 기존 서류 중심 업무처리 관련 각종 규정을 재검토하고 개선함으로써 시스템의 활용도를 높이고 서류작업의 중복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이에 따라 인사·교육·채용·급여·복리후생·복무 등 인사부문의 전 업무를 단일시스템으로 통합함으로써, 인사부서가 더 이상 부가가치가 낮은 단순반복 업무를 수행하는 곳이 아니라 자문·기획·분석·전략수립 등 보다 가치창출이 높은 업무에 집중하는 서비스 부서로의 전환이 가능하게 되었다. 또 인사정책수립에 필요한 자료가 체계적으로 축적·관리됨은 물론 적절한 형태로 신속히 가공, 출력되어 정책결정자는 최신의 자료에 근거하여 대안을 구성할 수 있게 되었으며 대안 간 비교분석의 정교성도 제고할 수 있게 되었다.
정부가 2000년대 초부터 구축, 운영해온 전자인사관리시스템은 앞서 기술한 여러 가지 장점에도 불구하고 시스템이 각 부처별로 관리되어 정부인사관리가 통합적으로 원활하게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게 되었다. 이에 따라 2008년 7월 1차로 중앙행정기관 중 24개 기관의 인사관리시스템을 통합, 공동 활용이 가능하도록 시스템을 개선하는 한편 시스템의 명명도 ‘e-사람’으로 개칭하였다. 또한 이로부터 2년여 뒤인 2010년 말 ‘e-사람’은 56개 중앙부처 26만 공무원이 활용하는 공통시스템으로 발전하게 된다. 그러나 이를 수용하는 시스템은 2001년부터 사용되어온 전자인사관리시스템으로 10년이 경과된 노후장비였다. 당시 인사·급여업무, 공무원 개인별 복무(초과근무 등) 등을 전적으로 시스템에 의존, 처리하고 있어 시스템지원 없이는 업무 수행이 불가능하였다.
2013년도에는 세종시 이전으로 세종청사 공무원 중 36.5%가 일주일간 평균 1.6회 출장근무를 하는 등 근무환경 변화에 따른 행정업무용 모바일 서비스의 필요성이 대두됨에 따라 ‘모바일 기반의 e-사람’ 시범서비스사업에 착수하게 된다. 이에 따라 출장근무 시 등 원격지에서도 시공간의 제약 없이 개인 스마트폰으로 제반 업무수행이 가능한 모바일 기반의 시스템 구축이 본격화되었다. 그 결과 2016년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으로 클라우드 자료를 공유할 수 있는 ‘모바일 뷰어’가 제공되었으며 행정자치부 내에서 시범적으로 활용해 오다가 정부 3.0의 핵심가치인 개방·공유·소통·협업의 일환으로 전 중앙행정기관에서 본격 활용하기로 결정되었다. 이에 인사혁신처를 시작으로 2016년 말까지 온-나라 전자문서시스템과 연계하여 국무조정실, 농림축산식품부 등 20개 기관으로 확산되었고, 2017년까지는 전 부처로 확산 예정에 있다.
정부가 추진한 행정전산화사업이 가장 빛을 발하게 된 계기는 전 국민을 주민등록번호로 식별할 수 있는 주민등록제도 시행이었다. 1960년대부터 시행된 주민등록제도는 오늘날 전자정부의 발전기반을 제공하였음은 물론 전자행정 고도화를 실현하는 마스터키로 작용하였다. 우리나라에 주민등록제도가 최초 도입된 때는 1962년 박정희 대통령의 집권 초기였다. 1962년 5월 정부는 「주민등록법」을 새로이 제정하였다. 이 「주민등록법」은 모든 대한민국 국민에게 이름, 성별, 생년월일, 주소 등을 시·읍·면에 등록하도록 하고 세대의 전부 또는 일부가 이동할 때에도 퇴거와 전입신고를 하도록 의무화하였다. 이후 정부는 주민등록제도를 더욱 강화하면서 1968년 「주민등록법」 개정을 통해 주민등록증의 일괄 발급과 동시에 발급대상자에게 각각의 고유한 12자리 번호를 부여하였다(주민등록번호체계가 현재와 같은 13자리 체계를 가지게 된 것은 1975년 「주민등록법」 개정 이후이다). 당시 주민등록발급 대상자는 약 1,500만 명 정도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주민등록제도가 도입된 것은 남북분단의 특수한 국내 상황에서 안보상의 목적이 가장 컸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최초 「주민등록법」이 제정된 이후 지속적으로 관련 규제가 강화되었으며 이를 기반으로 정부는 국가 안보를 위한 국민들의 동태파악 등을 용이하게 할 수 있었다. 이러한 주민등록제도의 운영과정 속에서 주민등록번호는 특정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국가적 차원의 범용 개인 식별정보로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즉, 주민등록번호는 국가 등에 의한 공공영역에서뿐만 아니라 민간의 다양한 영역에서도 특정 개인의 신원을 보증해주는 수단으로서 기능을 하게 된 것이다. 특히 주민등록번호체계는 20세기 후반 비약적으로 발전한 정보통신 환경 하에서 매우 중요한 개인 식별수단으로서 활용되기 시작하였다. 숫자로 이루어진 번호체계는 입력뿐만 아니라 동일성 여부 확인에 있어서도 다른 정보에 비해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고, 이에 더하여 생년월일, 성별 및 출신지역 등에 대한 정보까지 포함하고 있어 개인정보의 디지털화에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전자정부의 기본업무인 주민등록업무 전산화는 1977년 말 한국과학기술연구소 전산시스템개발실과 경제기획원 예산실, 그리고 충청북도가 협업하여 시작한 ‘충청북도 행정전산화 시범사업’으로 출발하였다. 시범사업 연구팀은 충청북도 음성군 관내 면사무소에 단말기를 설치하고 도청의 ‘서버’를 통하여 연구팀이 구축한 충청북도 내 다른 시·군지역의 터미널과 연결되도록 하였다. 그리고 음성군 전 군민의 주민등록 데이터 입력을 음성군 관 내의 면사무소에 설치된 카드펀치기와 단말기를 이용해 완료하였으며 주민데이터와 함께 호적데이터도 충청북도 각 시청과 군청에 설치된 단말기와 카드펀치기를 이용해 입력을 완료하였다. 1979년에는 음성군 내 거주 주민의 주민등록증을 충북도청 터미널에서 출력하는 데 성공하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주민등록전산화 사례였다.
1989년 1월 1일부터 한국인은 누구나 해외여행을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이전까지는 해외에 나가려면 만 30세 이상이거나 공무·출장·유학 등 출국 목적이 분명해야 했으나 여권 발급에 이러한 제한이 없어진 것이다. 그 배경에는 1988년 서울올림픽의 성공적 개최와 국민소득 증대가 큰 몫을 하였다. 특히 88서울올림픽은 외국인들의 한국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으며 이로 인해 국내 입국자수도 급격히 증가하게 되었다. 출입국 심사는 국가의 첫 관문을 통과할 때 치르는 절차로 여행객들이 그 나라의 이미지를 결정짓는 데에 있어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이와 더불어 국가에 위해를 가할 우려가 있는 외국인의 출입국을 차단함으로써 사회질서를 유지하는데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행정영역이다. 따라서 법무부 역시 여타 부처들이 행정정보화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1980년에 출입국행정의 전산화에 착수하게 되었다. 당시만 해도 전산시스템은 출입국심사에 필요한 출입국기록, 출입국규제자기록 등의 데이터베이스 검색을 통해 단순 조회용으로 활용하는 정도의 수준 이었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주민등록제도가 우리나라에 최초로 도입된 시기와 당시의 주요 목적은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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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과제 해석
task_interpretation주민등록제도의 최초 도입 시기와 도입 목적을 파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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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정보 추출
information_extraction주민등록제도 도입 시기와 관련된 연도 및 법 제정 정보를 추출한다.
- 우리나라에 주민등록제도가 최초 도입된 때는 1962년 박정희 대통령의 집권 초기였다.
- 1962년 5월 정부는 「주민등록법」을 새로이 제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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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근거 선택
evidence_selection도입 시기에 대한 근거와 도입 목적에 대한 근거를 선택한다.
- 우리나라에 주민등록제도가 최초 도입된 때는 1962년 박정희 대통령의 집권 초기였다.
- 당시 주민등록제도가 도입된 것은 남북분단의 특수한 국내 상황에서 안보상의 목적이 가장 컸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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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논리 통합
logical_integration1962년이라는 시점과 안보 목적이라는 이유를 결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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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결론 도출
conclusion_formulation주민등록제도는 1962년 박정희 대통령 집권 초기에 도입되었으며, 남북분단 상황에 따른 안보 목적이 가장 컸음을 도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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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답변 생성
answer_generation질문에 대한 최종 답변을 작성한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주민등록제도는 1962년 박정희 대통령의 집권 초기에 최초로 도입되었으며, 남북분단의 특수한 국내 상황에서 안보상의 목적이 가장 컸다.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주민등록제도는 1962년 박정희 대통령의 집권 초기에 최초로 도입되었으며, 남북분단의 특수한 국내 상황에서 안보상의 목적이 가장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