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맥 (context)
1996년 개발된 고용보험전산망은 당초의 계획대로 1996년 6월까지 실업급여 부문을 개발하는 한편 기존의 고용관리시스템을 확대 개편하여 종합고용정보시스템으로 발전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1998년부터 서비스를 개시한 ‘워크넷(www.work.go.kr)’이다. 기존의 고용안정정보망은 내부 업무지원에 국한되어 있었고 대민 서비스의 양과 질에 있어 그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였다. 이는 외환위기로 인한 대량실업사태가 발생하기 이전인 1997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지속적인 고성장에 힘입어 실업률이 3%미만을 기록하였으며 이에 따라 공공고용서비스에 대한 사회적 수요가 미미한 수준에 머물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1998년 외환위기로 인해 발생한 대량실업사태는 고용서비스의 급격한 수요확대를 불러왔다. 이때부터 고용노동부는 실업해소 대책의 일환으로 구인, 구직, 취업알선, 직업상담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전국에 94개 고용센터를 설치하였다.
1995년 고용보험제도 시행 이후 제도의 미비점 등을 보완하기 위해 수차례 법률이 개정되었으며 개정된 법령에 따라 고용보험전산관리시스템 역시 변화를 거듭해왔다. 고용보험 전산화는 1994년 8월 ‘고용보험전산망구축 기본계획’을 수립하여 1996년 10월 시스템 구축을 완료하였다. 운영 초기에는 수작업으로 처리하던 고용보험관련 신고서식(고용보험 적용, 징수, 실업급여 등)을 디스켓으로 제공받아 전산입력이 가능하도록 입력업무를 전산화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1997년부터는 인터넷 기반의 고용 전산망을 구축하고 이를 통해 직업훈련 신청과 관련 정보를 온라인으로 서비스하는 체제를 갖추었다. 또한 1998년 10월에는 구인·구직 정보를 누구나 손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46개 지방노동관서, 시·군·구 자치단체, 인력은행 등을 연결한 고용전산망을 확충하였다.
외무부의 여권관리전산화는 건국 이래 누적되어온 여권발급 관련 자료의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후 점차 복잡해지는 여권관리업무에 맞추어 단순한 데이터베이스의 축적 관리만이 아니라 다른 여권관리 업무처리를 위하여 계속적인 수정과 개선이 필요해졌다. 이에 1981년 여권발급업무 전산화계획이 입안되어 1983년 1월부터는 행정전산화 2차사업의 일환으로 본격적인 여권발급업무 전산화 확대작업이 추진되었다. 1983년 4월부터는 부산, 대구 등 8개 시·도에 여권발급업무를 위임하여 대행하도록 한 이후 3차례에 걸친 업무대행기관의 확산에 이어 1985년에는 주전산기를 교체하여 여권 관리 자료의 데이터베이스와 여권진행사항 확인업무, 신원조회 접수 및 회보처리 업무 등에 대하여 단계적으로 전산처리를 확대하였다. 또한 여권발급 전용단말기를 지방 주요도시에도 확대 설치함으로써 서울에서만 처리하던 여권발급업무를 지방에서도 처리할 수 있게 되었다.
여권발급업무 전산화 초기에는 전산망을 통한 여권발급이 아니라 단순히 위임사무로 국민의 공간적 이동을 최소화하고자 이를 분산 처리하는 데 머물러 있었다. 정부에서는 제2차 행정전산망사업에서 제1차 행정전산망사업시 구축된 행정정보를 유관기관 간 공동활용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행정전산망 관련 각급 행정기관과 정부투자기관 등을 대상으로 종합적인 수요조사를 실시, 세부추진방안을 마련하였고, 1993년부터 여권발급업무를 포함하여 건축허가신청 등 복합민원업무를 선정하여 우선적으로 전산화를 추진했고, 점차 확대 발전시켜 나갔다. 그리고 문민정부의 행정규제 완화와 신경제 100일 계획의 추진에 따라 사업 예산의 확보를 비롯한 사업추진 여건이 조성되고, 1993년 4월 총무처가 외무부, 내무부, 국가안전기획부, 경찰청 등 관련기관을 대상으로 여권발급 민원전산망 구축방안 협의를 위한 회의를 개최하면서 여권발급 민원전산망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이후 본 사업의 주관기관인 외무부가 한국전산원에 시스템 개발을 의뢰하여 시스템 구축을 조속히 완료하고 1994년 1월부터 서울 등 일부 시·도에서 시험운영을 병행한 대민서비스를 실시하게 되었다. 1995년 12월부터는 경기도, 강원도, 충청남도, 경상남도 도청 등 전국적인 전산망 구축을 완료함으로써 그동안 이원화되어 있던 여권발급신청 접수 처리를 일원화하여 처리하게 되었으며 여권발급신청서 접수와 동시에 신원조회처리 및 회보결과의 입력까지도 일괄 처리가 가능해졌다. 이에 따라 여권발급신청 시 구비서류가 줄어들었음은 물론 각종 서류에 대한 확인절차를 관련기관 시스템에 연결된 네트워크를 통해 온라인으로 일괄 자동 조회할 수 있게 됨으로써 민원 편의가 크게 개선되고 업무 처리절차 역시 대폭 간소화 되었다.
한편 외교부는 2008년에 이르러 전자여권 발급을 위해 여권정보 통합관리 시스템(PICAS: Passport Information Comprehensive Administration System)을 구축하였다. 여권정보 통합관리 시스템은 여권 사무를 대행하는 236개 지방자치단체와 171개의 재외공관 및 유관기관을 연결한 여권발급 통합관리전산망이었다. 2014년 7월 말을 기준으로 우리나라 국민의 약 44%인 2,271만 명이 유효한 여권을 소지하고 있으며, 매년 338만 명이 여권 발급을 신청하고 있다. 외교부는 2015년 3월 노후장비를 교체하는 등 PICAS 업그레이드 사업을 추진하여 여 권신청 접수 등 업무의 안전성과 효율성을 크게 높임으로써 민원인들이 보다 편리한 서비스를 받게 되었다.
특허청은 전자출원 시간의 확대 및 심사결과의 신속한 제공 등 민원인들의 요구가 더욱 다양해지고 고급화되는 점을 수용하기 위해 2002년 3개년 특허넷 고도화계획을 수립, 기존 특허넷의 전면 업그레이드를 추진하였다. 2003년부터는 특허넷시스템을 일괄 처리(Batch Processing)방식에서 실시간 처리(Real-Time Processing)방식으로 개편하는 특허넷Ⅱ 개발에 착수, 2005년에는 언제 어디서나 특허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24시간 365일 전자출원서비스 및 재택심사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특허넷을 한 단계 도약시킨 특허넷Ⅱ를 완성하였다. 특허청은 특허넷Ⅱ 개통 이후 단순한 서비스 시간의 연장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특허정보를 실시간으로 접속, 이용할 수 있는 전자민원서비스 환경을 완성하기 위해 2006년부터 유비쿼터스 특허넷 구현에 착수하였다.
지시문 (instru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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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question)
외환위기 이전인 1997년까지 우리나라의 실업률 수준과 그로 인한 공공고용서비스의 사회적 수요 상태는 어떠하였는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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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과제 해석
task_interpretation1997년까지의 실업률 수치와 공공고용서비스에 대한 사회적 수요의 특징을 파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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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정보 추출
information_extraction1997년까지의 실업률과 사회적 수요에 관한 문장을 추출한다.
- 1997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지속적인 고성장에 힘입어 실업률이 3%미만을 기록하였으며 이에 따라 공공고용서비스에 대한 사회적 수요가 미미한 수준에 머물렀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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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근거 선택
evidence_selection실업률이 3% 미만이었다는 사실과 수요가 미미했다는 사실을 핵심 근거로 선택한다.
- 실업률이 3%미만을 기록하였으며
- 공공고용서비스에 대한 사회적 수요가 미미한 수준에 머물렀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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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논리 통합
logical_integration지속적인 고성장으로 인해 실업률이 3% 미만으로 낮게 유지되었고, 이로 인해 공공고용서비스에 대한 수요 또한 낮았음을 연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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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결론 도출
conclusion_formulation실업률은 3% 미만이었으며, 공공고용서비스에 대한 사회적 수요는 미미한 수준이었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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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답변 생성
answer_generation질문에 대해 명확하고 간결한 문장으로 답변을 작성한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1997년까지 우리나라는 지속적인 고성장으로 인해 실업률이 3% 미만을 기록하였으며, 이에 따라 공공고용서비스에 대한 사회적 수요는 미미한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1997년까지 우리나라는 지속적인 고성장에 힘입어 실업률이 3% 미만을 기록하였으며, 이에 따라 공공고용서비스에 대한 사회적 수요가 미미한 수준에 머물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