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맥 (context)
그러나 북한의 외환 보유량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는 의문으로 남는다. 북한 내에 존재하는 외환의 상당 부분을 공식 부문이 아니라 사경제 영역의 ‘돈주’들이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로 김정은 체제는 외환 보유량과 관련해 신뢰할만한 자체 통계를 보유하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북한 당국은 사실상의 준조세를 다양한 방식으로 운용하며 사경제 영역의 외화를 흡수하고자 시도하고 있지만, 그 규모는 여전히 제한적인 것으로 추정된다. ‘수자경제(Digital Economy의 북한식 번역어)’ 구호를 강조하며 통계 및 보고 강화 캠페인을 집중적으로 전개하고 있는 최근의 사정에는 이에 대한 평양의 불안감이 얽혀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버티기 모드’가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북한의 공식 경제 부문은 이미 오랫동안 ‘투입 없는 산출’을 강요받아 왔다. 중앙에서 원자재와 자금을 공급하던 일관 체계가 붕괴했음에도 각 공장·기업소가 스스로 살길을 찾아 알아서 생산량을 유지하라는 방침이다. 김정은 체제가 강조하는 ‘자력갱생’은 단순히 국가 전체의 구호일 뿐 아니라, 각 공장·기업소가 알아서 원자재와 부품 등을 조달하라는 ‘각자도생’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따라서 2019년 가을 이후 본격화된 각 공장·기업소·농장의 자율성 강화 흐름은 2020년에도 강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경영 및 생산과 관련한 재량권을 인정해주고 여기서 나오는 초과이익 일부는 인센티브로 활용하는 것을 용인하는 구조다.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와 ‘포전담당제’로 대표되는 이러한 탈(脫)중앙화 기조는 최근 북한의 정책 담론에서 더욱 빈번하게 등장하고 있다. 우선 2019년 11월 들어 공장·기업소의 ‘당 일꾼’과 ‘행정 일꾼’ 사이의 역할을 재조정하는 지침이 관영 언론을 통해 공식화되고 있음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중앙의 통제 혹은 지침을 상징하는 공장당위원회 등의 위상이 사상 교양이나 생산 독려 활동으로 약화되고, 대신 지배인과 공장장 같은 경영진의 책임과 권한을 폭넓게 인정하는 식이다. ‘대안의 사업체계’로 불리던 전통적 관리 방식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오래전의 일이지만, 이제는 공식적인 형해화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김정은 위원장의 현지 시찰에서 중앙당 관료들을 질책하고 현장 직원들을 격려하는 패턴이 반복되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일 것이다.
이렇듯 사라진 외교 성과 선전을 대신해 이른바 ‘삶의 질’ 담론이 집중적으로 자리를 채우고 있다. 신발, 가방 등 소비재 공업 현장, 의료·보건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주의 복지체제의 우월성, 놀이공원 등 주민용 위락시설 개설 소식을 공격적으로 편집하는 식이다. 이들 사업에 깊은 관심과 에너지를 쏟고 있는 김정은 위원장의 ‘애민 정신’ 혹은 ‘인민대중중심주의’는 빠지지 않고 따라붙는다. 결국 ‘인민 생활 개선’으로 불리는 경제 부문에서의 성과 과시 외에는 답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2020년은 2016년 시작된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의 마지막 해다. 어떤 식으로든 경제 분야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보이지 못한다면 지도자의 위상은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삼지연군꾸리기, 원산·갈마 관광지구, 단천 발전소 등 대형 건설 사업은 자재 부족 등으로 이미 완공 시점이 흔들린 바 있고, 더욱이 이들 프로젝트가 완공된다 해도 주민들의 기대를 충족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자원 배분 왜곡으로 인한 민심이반이 오히려 더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극심한 원자재·노동력 부족 속에서 이들 프로젝트를 밀어붙이다 보니, 김정은 체제는 주민들에게 식량 등을 ‘원호’하고 대학생 등 청년계층에게 건설 현장에 ‘자원’하라는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반복하고 있다. 수입에 의존해오던 마감자재의 국산화를 주요 정책목표로 강조하고 있는 것도 비슷 한 맥락이다. 그러나 제재로 인해 가뜩이나 사정이 열악한 주민들에게 이러한 부담이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없음은 분명해 보인다. 민심을 얻는 데 필요한 경제 성과 만들기가 도리어 민심이반을 불러올 수 있다는 난제를 극복하기 위해, 평양은 옛 담론으로의 복귀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 수령에 대한 충성심, 일심단결,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신심을 강조하는 오래된 레퍼토리가 2020년에도 북한 전역을 가득 메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6.25 전쟁과 90년대 ‘고난의 행군’이라는 위기를 극복해낸 선배 세대들을 본받자는 담론 역시 자주 등장할 것이고, 외부 문화 유입을 ‘제국주의의 음모 책동’으로 규정하는 비(非)사회주의 단속 또한 강도가 높을 것이다. 2020년 북한 체제의 대민(對民) 메시지가 어느 모로 보나 보수화의 길을 피하기 어려운 배경이다.
이렇다 할 성과 없이 최고 존엄의 위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충성심과 일심단결 같은 과거 메시지로의 회귀가 불가피하다. 이 과정에서 인민군의 역할과 위상 강조는 가장 손쉬운 선택지다. 염려스러운 것은 이러한 ‘인민군 띄우기’가 남측에 대한 강경 행보와 논리적으로 매우 가깝다는 점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2019년 하반기 김정은 체제 담론의 초점이 다시 인민군이었다는 사실은 역설적이기까지 하다. 물론 요즘 평양이 강조하고 있는 인민군의 역할은 2016~17년 국면과는 사뭇 다르다. ‘조국 보위도 사회주의 건설도 다 맡자’라는 전통적 구호 가운데 후자에 대한 강조다. 앞서 설명한 대형 건설 사업을 모두 인민군 병력이 담당하고 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2019년 한 해 동안 김정은 체제는 ‘알았습니다’ 정신을 강조하며 ‘최고 지도자의 지시라면 아무런 토도 달지 않고 바로 실행에 착수하는’ 인민군의 절대복종 정신을 전체 주민이 따라 배워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최소한 주요 건설 사업이 마무리되는 시점까지는, 2020년에도 인민군의 경제적 역할에 대한 강조 또한 지속될 수밖에 없다. 90년대 이후로 누적된 사경제 영역의 확장으로 인해, 현실적으로 김정은 체제가 즉각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노동력은 군밖에 남지 않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불어 앞서 본 당과 군, 내각과 군 사이의 위상 조정 과정에서 상처받았을 군부의 명예욕 혹은 자존심을 달래는 효용도 염두에 두고 있을 것이다. 실제로 김정은 위원장의 최근 현지 지도 상당수는 이 같은 목적과 관계가 깊다. 어업 시설을 자주 방문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식량 사정의 악화가 배경이겠지만, 북한의 수산업을 대부분 인민군이 관장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김 위원장이 업무 실적과 사업 개선 등에서 만족을 표시한 공장·기업소도 대다수가 인민군 소속이다. 군민 일치 혹은 군민 대단결에 대한 강박적 메시지 역시 주민들로부터 자원을 각출해 건설 현장의 인민군 부대에 보내자는 캠페인 구호에 가깝다. 10월 하순 노동신문이 인민군 병사들에게 10여 년간 가축을 길러 제공했다는 한 노인의 사례를 나흘간 대대적으로 보도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인민군 띄우기’ 담론이 2020년에도 이어질 경우 군사적 조치를 포함한 대남 강경 행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북한 관영 언론은 2019년 진행된 단거리미사일·방사포 발사를 ‘국방공업의 성취’, ‘인민군대의 기개’로 표현하며 일종의 혁신 성공사례로 선전한 바 있다. 북·미 간 협상의 판 자체는 유지하면서도 일정 수준의 긴장을 야기하는 카드로 대남 공세를 택할 경우, 이를 통해 ‘핵 무력’을 입에 담지 못하는 인민군의 불만을 달래려는 용도로도 활용될 것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2020년 북한의 행보가 전체적으로 과거 회귀에 가까우리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핵 협상 답보로 제재 체제가 유지되는 현실에서는 다른 선택이 없기 때문이다. 상황이 수세에 몰리면 어김없이 과거 메시지로 돌아가는 것은 북한 체제의 오랜 속성이기도 하다. 6.25 전쟁 발발 70주년이라는 올해의 상징성을 감안하면 더욱더 그렇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북한이 2020년에도 인민군의 경제적 역할을 강조할 수밖에 없는 이유 두 가지는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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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과제 해석
task_interpretation북한이 2020년에 인민군의 경제적 역할을 지속적으로 강조하게 되는 배경과 원인 두 가지를 찾아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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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정보 추출
information_extraction인민군의 역할과 관련된 경제적 상황 및 체제 유지 전략에 관한 정보를 추출한다.
- 최소한 주요 건설 사업이 마무리되는 시점까지는, 2020년에도 인민군의 경제적 역할에 대한 강조 또한 지속될 수밖에 없다.
- 90년대 이후로 누적된 사경제 영역의 확장으로 인해, 현실적으로 김정은 체제가 즉각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노동력은 군밖에 남지 않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 더불어 앞서 본 당과 군, 내각과 군 사이의 위상 조정 과정에서 상처받았을 군부의 명예욕 혹은 자존심을 달래는 효용도 염두에 두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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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근거 선택
evidence_selection인민군 경제 역할 강조의 직접적인 근거가 되는 노동력 문제와 군부의 심리적 요인을 선택한다.
- 현실적으로 김정은 체제가 즉각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노동력은 군밖에 남지 않았다
- 당과 군, 내각과 군 사이의 위상 조정 과정에서 상처받았을 군부의 명예욕 혹은 자존심을 달래는 효용도 염두에 두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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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논리 통합
logical_integration사경제 확대로 인해 가용 가능한 노동력이 군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과, 위상 조정으로 인해 상처받은 군부의 자존심을 달래야 한다는 점을 결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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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결론 도출
conclusion_formulation가용 노동력의 부족 문제와 군부의 명예욕 달래기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결론을 도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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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답변 생성
answer_generation추출된 근거를 바탕으로 질문에 대한 답변을 구성한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첫째, 사경제 영역의 확장으로 인해 김정은 체제가 즉각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노동력이 군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둘째, 당과 군, 내각과 군 사이의 위상 조정 과정에서 상처받은 군부의 명예욕이나 자존심을 달래기 위함이다.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사경제 영역의 확장으로 동원할 수 있는 노동력이 군밖에 남지 않았고 위상 조정으로 상처받은 군부의 명예욕과 자존심을 달래기 위해 인민군의 경제적 역할을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