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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양국 간의 활발한 인적·물적 교류 확대에도 불구하고, 역사 갈등과 경제 보복 등으로 인해 관계가 악화되는 '동북아 패러독스' 현상과 그 배경 및 영향. doc_id PCY_202006110423545041_2

주제 (main_topic)
한일 양국 간의 활발한 인적·물적 교류 확대에도 불구하고, 역사 갈등과 경제 보복 등으로 인해 관계가 악화되는 '동북아 패러독스' 현상과 그 배경 및 영향.
답변 불가 (is_impossible)
False
문맥 (context)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이래 한일 양국 간 인적, 물적 교류는 빠른 속도로 증가해 왔다. 한일 간 인적 교류는 1965년 약 2만 명에서 2018년 들어 520배 이상 증가한 1,049만 명에 달할 정도로 크게 늘었다. 2018년 방일 한국인은 754만 명으로 사상최대를 기록하였으며, 방한 일본인은 295만 명으로 전년대비 27%나 급증하였다. 1965년 당시 한일 양국 간 무역량은 2억 달러에 불과했지만, 2018년 무려 850억 달러를 기록하였다. 이는 영국과 프랑스 간 무역량을 웃도는 것으로, 일본과 한국의 수출액은 각각 세계 5위와 7위를 기록할 정도이다. 그러나 엄청난 인적, 물적 교류 확대에도 불구하고 양국 간 대립과 갈등이 오히려 심화되는 동북아 패러독스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한반도 비핵화와 강제징용 해법을 둘러싸고 한일 양국 관계는 크게 악화되고 있다. 2018년 10월 국내 대법원의 강제동원 피해자 승소 판결 이후 역사 갈등이 깊어진데다, 제주 관함식에서 일본 해상자위대 욱일기 갈등으로 인한 불참, 12월 발생한 레이더 조사(照射)문제까지 겹치면서 한일관계는 더욱 악화되었다. 2019년 7월 1일, 아베정권은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을 실시하였고, 수출규제에 이어 한달 뒤인 8월 2일 화이트국가에서 배제하였다. 그간 일본을 방문한 한국인 여행객이 2018년도에 750만을 넘어섰다. 이 숫자는 7년 정도에 한국국민 전체가 일본을 방문한다는 계산이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형태로 일본방문객도 마찬가지로 늘었다. 한국 지자체의 대다수가 일본과 교류 하고 있으며 매년 일본으로 공무원을 파견하는 인적 교류를 하는 지자체도 많다. 자체 해외 학위과정과 직무교육을 하는 경기도의 경우에도 매년 우수한 공무원들이 일본을 지원하고 있고 실제 학위과정과 직무교육을 일본에서 수행하는 사례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일관계는 새로운 냉전체제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에 이르렀다. 지나보면 항상 제자리로 오히려 작금에 이르러보니 그보다 더 악화일로에 처해있다. 이유가 무엇일까. 단순히 교류가 확대해진다고 한일갈등이 사그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반증이 될 수도 있다. 지방의 교류를 지속하고 싶어도 대다수 주민이 그 필요성을 지지해주지 않으면 지방정부입장에서도 어렵다. 어느 지역의 주민은 다 대한민국 국민이며 대다수 국민은 일본이 취한 일방적인 수출규제조치를 해제하지 않는 한 아무 일 없듯이 슬그머니 다시 한일관계를 되돌리는데 찬성하지 않을 것이다. 일본방문을 지금 자제하고 있는 계층은 단연 청년들이다. 아베정부의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조치에 따라 한일갈등이 최 정점에 이르렀다. 다만, 지금의 한일 간 갈등에 대해 일본의 입장은 15년의 위안부합의와 일제 강제징용공문제에 대한 한국의 대법원판결 등 기존의 정부 간 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한 한국 측 책임이 크며 수출규제는 별도의 문제라고 강변한다. 한일관계에 갈등국면은 사실 새롭지만 않을 정도로 자주 반복되어왔고 그간 그러한 갈등관계의 해소에 대해 한일양국의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본문에서도 지적하고 있듯 1998년 김대중대통령-오부치수상간 한일공동선언으로 한일 간 새로운 미래지향적 양국관계를 약속했었다. 한일 양국 간 지방정부의 국제교류는 물론 양국의 NGO, 청소년들이 주역인 시민 간 생활교류가 늘면서 한일관계의 증진에 크게 기여하였다고 평가하고 있다. 한일갈등과 위기 국면에서 되돌아보면, 김대중정부의 탁월한 외교력은 적지 않은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 김대중대통령은 1998년 10월 한일파트너십 공동선언을 통하여 양국 관계를 안정시키고 일본 오부치 게이조 수상과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구축하는데 합의하였다. 당시 북한 미사일 발사로 위기가 고조된 상태에서, 한일 양국은 대북정책 공조 뿐만 아니라, 아세안+한중일 등 동아시아 지역과의 연계는 물론, 적극적인 글로벌 국제공헌을 공동 추진하기로 합의하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10월 한일파트너십 공동선언 20주년을 맞이하여 역사와 영토 문제를 한일 양국이 지혜롭게 관리하고, 사회·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구축할 것을 강조한 바 있다. ‘21세기 한일파트너십 공동선언’은 1998년 당시 일본 오부치 게이조 수상이 과거의 식민통치에 대한 통절한 사죄와 반성을 표명하고, 김대중 대통령이 과거사를 직시하면서 한일 양국 간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지향하기로 서로 약속한 것이었다. 한일 양국은 정상간 셔틀회담, 국민교류와 문화교류, 경제와 안보협력을 추진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가장 최상의 한일관계라고 평가되는 김대중정부의 대일 외교는 과거사를 극복하고 한일 공동파트너십을 실현시킨 점에서 매우 뛰어난 외교적 성과임에 틀림없다. 한중관계에서도 김대중정부는 1998년 11월 한중간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를 구축하였고, 당시 미국을 포함하여 주변국과의 관계가 크게 개선되었다. 이러한 주변국과의 관계개선은 2000년 6월 전후 최초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간 남북 정상회담을 개최하는데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김대중대통령-오부치수상간 1998년10월 한일파트너십선언은 2002년 한일월드컵 공동개최로 나아갔고 양국 간 문화교류와 상호인식의 개선에 크게 기여하였다. 지명관교수에 따르면, ‘1965년 체제’가 정치경제 중심이었다고 본다면, 김대중정권기 한일 월드컵 공동개최를 통하여 형성된 한일 간 ‘2002년 체제’는 문화 기반의 새로운 아시아협력을 모색하는 시민적 체제로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대중정부의 한일파트너십 선언과 월드컵 공동개최 이후 한일양국 간 시민교류가 촉진되었다. 한일 역사공동위원회, 한일문화교류회의 등을 설치함으로서 정치경제 뿐만 아니라, 양국 간 역사, 문화 교류까지 확대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0년 상반기로 예상되는 강제동원 피해자와 원고단에 의한 일본 전범기업 자산의 매각과 현금화 조치는 양국 갈등의 중대한 소재로 남아 있다. 한일 간 최대 현안인 강제징용 문제는 양국 간 입장차가 전혀 바뀌지 않은 채 그대로이다. 한국정부는 작년 6월 19일 양국기업의 자발적인 모금을 통한 해법을 제시한 바 있다. 12월말 문희상 국회의장 제안으로 한일 양국 기업과 국민이 낸 자발적 기부금으로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하는 특별법이 국회에 상정되었다. 그러나 일본정부는 1965년 청구권협정으로 개인청구권을 포함한 모든 보상이 완전히 최종적으로 끝났다는 입장에서 전혀 물러서지 않고 있다. 한일관계의 악화에 따라서 양국 국민들의 상호 인식도 크게 악화되어 왔다. 한국 동아시아연구원과 일본 겐론NPO가 매년 실시하고 있는 공동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은 66.1%, 일본인은 63.5%가 양국관계가 나쁘다고 응답하였다. 또한, 한국인의 4.3%, 일본인의 1.8%만이 지난 1년 간 한일관계에 대한 인상이 좋아졌다고 답했다. 반면, 인상이 ‘대체로 나빠졌다’와 ‘나빠졌다’고 답한 응답자는 한국 51.4%, 일본 57.2%로 한일관계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지 않았음을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한국의 42.6%, 일본의 32.7%가 ‘어느 쪽도 아니다’라고 답했는데, 이는 악화된 한일관계가 여전히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한일관계가 냉각되면서 방일 한국인은 2019년 6월 61만 명에서 7월 56만 명으로 12.8% 감소, 8월에는 31만명으로 50.3% 감소, 9월에는 20만 명으로 64% 감소, 10월 들어 19.7만 명으로 무려 68%나 감소하였다. 따라서 작년 8,9,10월 3개월간 무려 일본을 찾은 한국인이 무려 100만 명 이상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저가항공(LCC)를 포함한 한일 간 지방도시를 잇는 항공편도 대폭 감소하였다. 한때 일본여행 붐이 일면서, 2014년 10월 주당 661편에서 2019년 3월 주당 1306편으로 두 배 이상 늘었지만, 직년 7월 일본의 부당한 경제보복이후 한국 내에서 일본관광 자제, 일본상품 불매운동이 일어나면서 방일 관광객은 크게 줄어들었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통해 구축된 '2002년 체제'는 '1965년 체제'와 비교했을 때 어떤 특징을 가지는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1965년 체제와 2002년 체제의 차이점을 비교하여 특징을 도출해야 한다.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1965년 체제의 성격과 2002년 체제의 성격에 관한 정보를 추출한다.

    • ‘1965년 체제’가 정치경제 중심이었다고 본다면
    • 한일 월드컵 공동개최를 통하여 형성된 한일 간 ‘2002년 체제’는 문화 기반의 새로운 아시아협력을 모색하는 시민적 체제로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두 체제의 핵심 기반을 나타내는 문구를 선택한다.

    • 정치경제 중심
    • 문화 기반의 새로운 아시아협력을 모색하는 시민적 체제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1965년 체제는 정치와 경제에 집중된 구조였던 반면, 2002년 체제는 문화를 기반으로 시민 간의 협력을 모색하는 구조임을 대조한다.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1965년 체제는 정치경제 중심의 체제였으나, 2002년 체제는 문화 기반의 새로운 아시아 협력을 모색하는 시민적 체제라는 결론을 도출한다.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추출된 정보를 바탕으로 비교 답변을 작성한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1965년 체제가 정치경제 중심이었다면, 2002년 체제는 한일 월드컵 공동개최를 통해 형성된 문화 기반의 새로운 아시아 협력을 모색하는 시민적 체제라는 특징이 있다.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1965년 체제가 정치경제 중심이었던 것과 달리 2002년 체제는 한일 월드컵 공동개최를 통해 형성된 문화 기반의 아시아 협력을 모색하는 시민적 체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