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단 (context)
주지하다시피 1960-70년대 이케다 하야토(池田勇人)와 사토 에이사쿠(佐藤英作) 등 당시의 일본 수상들은 ‘평화국가’라는 용어에 ‘국시’의 지위를 부여하면서까지 일본의 내셔널 아이덴티티를 지칭하는 개념으로 구사했다. 1990년대 들어 평화국가로서의 외교안보노선을 수정하려는 움직임으로 등장한 ‘보통국가론’은 그 자체가 이미 전후 일본 국가의 내셔널 아이덴티티가 ‘평화국가’였다는 점을 역설적으로 증명해주고 있듯이, 적어도 1970년대 말까지는 일본의 체제 이데올로기로서 유지되고 있었다.79) 이렇게 볼 때 전후 일본에서 형성된 ‘회한공동체’는 평화주의라는 국가 이데올로기를 추동하고 견인해갔다고 할 수 있으며, 그런 점에서 국가권력이 생산한 내셔널 아이덴티티를 시민사회가 소비함으로써 집합적 기억을 ‘집합적 무죄’로 만들어간 현실도피의 논리를 구사했다고 할 수 있다.
기계독해 질의응답 4건
| question_id | 질문 | 답변 불가 | 정답 |
|---|---|---|---|
| 1274897 | 보통국가론이 언제 일본에서 등장하였을까 | 가능 | 1990년대 |
| 1274898 | 언제 일본에서 보통국가론이 나타났는가 | 가능 | 1990년대 |
| 1274899 | 일본에서 언제 보통국가론이 나왔어 | 가능 | 1990년대 |
| 1274900 | 복지 국가론이 한국에 등장한 게 언제지 | 불가 | 1990년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