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단 (context)
다른 한편 일본의 패전 이후인 1959년 제국 일본의 ‘근대초극론’을 내재적으로 비판한 다케우치 요시미(竹内好)에 이어 1972년 중일국교정상화 이후 새로운 의미에서의 ‘대동아공영권’의 실현을 주창했던 곤도 야스오(近藤康夫), 그리고 1970년대 전 세계 신좌파운동의 조류 속에서 ‘근대초극론’을 비판적으로 재검토하면서 진정한 의미에서의 ‘동아신체제’를 호소했던 히로마쓰 와타루(廣松涉) 등 냉전체제를 중심으로 한 ‘전후’의 맥락에서 동아시아 연대의 새로운 바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문제의식은 당대 국제정세의 혼돈 속에서 심화되지 못했고 또 근대 비판의 시도 역시 또 다시 동아시아 담론으로 흡수되어 버렸다. 이후 노무현 정권에서 동북아시아의 지역협력을 추진하자 일본의 하토야마(鳩山由紀夫) 총리가 ‘동아시아공동체 구상’으로 응답했고, 또 현재의 박근혜 정부 역시 신뢰의 인프라를 통한 동북아평화협력 구상을 외교안보의 핵심정책으로 제안한 바 있다. 이렇듯 현재의 동북아시아 지역통합의 방향은 단선적인 정부 간 협력의 틀을 넘어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행위자(non-state actors)들이 협의와 협력을 모색함으로써 새로운 동북아시대의 복합적인 협력네트워크를 지향하고 있다.
기계독해 질의응답 4건
| question_id | 질문 | 답변 불가 | 정답 |
|---|---|---|---|
| 1244777 | 1972년 이후 중일국교정상화 이후 대동아공영권의 실현을 주장한 게 누구야 | 가능 | 곤도 야스오 |
| 1244778 | 누가 1972년 이후 중일국교정상화 이후 대동아공영권의 성립을 강조했어 | 가능 | 곤도 야스오 |
| 1244779 | 대동아공영권의 실현을 내세운 사람이 누구니 | 가능 | 곤도 야스오 |
| 1244780 | 1975년 이후 중일국교정상화 이후 대동아공영권의 실현을 주장한 게 누구야 | 불가 | 곤도 야스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