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단 (context)
유구 상부는 후대 교란과 삭평의 영향으로 유실되었으며, 잔존한 벽석은 4~5단 정도였다. 잔존한 시상의 평·단면도 및 벽석의 축조상태로 볼 때 석곽묘로 판단된다. 묘광의 평면형태는 세장방형으로서 장축방향은 N-12°-W이며, 등고선 방향과 평행하게 축조되었다. 묘광의 규모는 길이 560㎝, 잔존 너비 210㎝, 깊이 80㎝이며, 석곽의 규모는 길이 330㎝, 너비 62㎝, 최대 깊이 90㎝이다. 석곽의 평면비는 약 5.3:1이다. 벽석의 축조는 사암인 풍화암반층을 세장방형 형태로 묘광을 굴착한 후 크기 20~50㎝ 할석을 안쪽으로 면을 맞추어 장벽은 횡평적으로 축조하고, 단벽은 횡평적과 종평적을 혼용하였다. 시상은 할석과 천석을 혼용하여 석곽 전체에 고르게 깔았다. 남단벽 북쪽에 약 10㎝ 정도 깊이로 굴착되어 있었으며, 이는 유물을 부장하기 위한 공간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11호 묘 남쪽 약 130㎝ 이격된 거리에 주구중복 군1과 연결된 반원상의 주구가 조성되어 있었다. 주구의 서쪽은 후대 교란과 삭평으로 유실되었으며, 규모는 잔존 길이 140㎝, 최대 너비 130㎝, 최소 너비 100㎝, 최대 깊이 30㎝이다. 내부 토층은 2개 층으로 구분되며, 유물은 컵형토기와 연질옹이 1점씩 출토되었다.
기계독해 질의응답 4건
| question_id | 질문 | 답변 불가 | 정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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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09733 | 후대 교란과 삭평의 영향으로 유실된 것은 뭐야 | 가능 | 유구 상부 |
| 909734 | 삭평과 후대 교란으로 인해서 무엇이 사라졌니 | 가능 | 유구 상부 |
| 909735 | 어떤 것이 후대 교란과 삭평 때문에 없어졌지 | 가능 | 유구 상부 |
| 909736 | 어떤 것을 후대 교란과 삭평 때문에 찾을 수 있었는가 | 불가 | 유구 상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