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단 (context)
46호 묘는 북서-남동으로 뻗은 Ⅱ구역 4지점 주능선 남쪽 사면부에 조성되었으며, 해발고도 약 15.2m에 조성되었다. 유구의 남동쪽으로 약 3m 거리에 Ⅱ구역 4지점 45호 묘, 북서쪽으로 47호 묘가 위치하고 있었다. 유구 상부는 후대 교란과 삭평의 영향으로 유실되었으며, 장·단벽 역시 1~2단만 잔존하였다. 묘제는 석곽묘이다. 묘광의 평면형태는 세장방형으로, 장축방향은 N-87°-E이며, 등고선 방향과 평행하게 축조되었다. 묘광의 규모는 길이 435㎝, 너비 166㎝, 깊이 26㎝이며, 석곽의 규모는 길이 306㎝, 너비 55㎝, 최대 깊이 30㎝이다. 석곽의 평면비는 약 5.6:1이다. 벽석의 축조는 기반층을 세장방형 형태로 묘광을 굴착하여 16~53㎝ 크기의 할석과 천석을 안쪽으로 면을 맞추어 종·횡평적 하여 쌓아 올리고 사이에 작은 천석을 끼워 넣어 축조하였다. 시상은 별다른 시설을 하지 않았으며, 기반층에 2~5㎝ 정도의 갈색사질점토를 깔아 정지하여 무시상 처리하였다. 바닥조사에서 동·서 양단벽에 연접하여 너비 5㎝, 깊이 9㎝ 의 타원형 수혈이 확인되었으나, 용도는 명확하지 않다. 유구 주변 2~3m 거리에 너비 9m 정도의 장타원형 주구가 확인되었으며,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다.
기계독해 질의응답 4건
| question_id | 질문 | 답변 불가 | 정답 |
|---|---|---|---|
| 909925 | 유구 상부는 후대 교란과 삭평의 영향으로 어떻게 되었을까 | 가능 | 유실 |
| 909926 | 후대 교란과 삭평의 여파로 유구 상부는 어떻게 되었지 | 가능 | 유실 |
| 909927 | 후세대에 교란과 삭평의 영향으로 유구 위쪽은 어떻게 되었어 | 가능 | 유실 |
| 909928 | 선대에 교란과 삭평의 여파로 유구 하부는 어떻게 되었지 | 불가 | 유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