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단 (context)
5호 묘는 북서-남동으로 뻗은 Ⅰ구역 1지점 주능선 말단부의 북쪽 조사 경계지점 해발고도 약 12m에 조성되었다. 유구의 북쪽 약 3m 거리에 Ⅰ구역 1지점 추가부지 6호 묘가 위치하고 있었다. 유구 상부는 후대 교란과 삭평의 영향으로 대부분 유실되어 벽석의 2~3단만 잔존한 상태였다. 잔존한 시상의 범위와 유물의 출토 위치로 판단할 때 추가장의 가능성이 높아 묘제는 횡구식 석실묘로 추정된다. 묘광의 평면형태는 세장방형으로서 장축방향은 N-27°-W이며, 등고선 방향과 직교되게 축조하였다. 묘광의 규모는 길이 500㎝, 너비 337㎝, 깊이 41㎝이며, 석실의 규모는 길이 255㎝, 너비 80㎝, 최대 깊이 30㎝이다. 석실의 평면비는 약 3.2:1이다. 벽석의 축조는 사암인 풍화암반층을 세장방형 형태로 묘광을 굴착한 후 크기 26~53㎝ 사이의 할석과 천석을 안쪽으로 면을 맞추어 종·횡평적하였다. 유구 훼손이 심해 횡구부는 명확하지 않지만, 단벽의 축조 구조로 볼 때 남서단벽으로 추정된다. 시상은 기반층에 세사립과 세석립이 혼입된 갈색사질점토를 높이 5㎝ 정도 바닥 전면에 채운 후 다시 갈색사질점토 상면에 크기 8㎝ 내·외의 천석을 깔아 조성하였다.
기계독해 질의응답 4건
| question_id | 질문 | 답변 불가 | 정답 |
|---|---|---|---|
| 909653 | 유구 어디는 후대 교란과 삭평의 영향으로 대부분 유실되었니 | 가능 | 상부 |
| 909654 | 후대 교란과 삭평의 영향으로 대부분 분실된 것은 유구의 어느 부분이야 | 가능 | 상부 |
| 909655 | 후대 교란과 삭평의 영향으로 유구 어디를 대부분 잃어버렸지 | 가능 | 상부 |
| 909656 | 후대 교란과 삭평의 영향으로 석탑 어디가 대부분 유실되었니 | 불가 | 상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