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蔚珍德川里新羅墓群 paragraph_id 12781

가공데이터
content_id
CNTS-00074217444
도서명
蔚珍德川里新羅墓群
발행기관
聖林文化財硏究院
연도
2015
KDC 분류
문단 (context)
5호 묘는 북서-남동으로 뻗은 Ⅰ구역 1지점 주능선 말단부의 북쪽 조사 경계지점 해발고도 약 12m에 조성되었다. 유구의 북쪽 약 3m 거리에 Ⅰ구역 1지점 추가부지 6호 묘가 위치하고 있었다. 유구 상부는 후대 교란과 삭평의 영향으로 대부분 유실되어 벽석의 2~3단만 잔존한 상태였다. 잔존한 시상의 범위와 유물의 출토 위치로 판단할 때 추가장의 가능성이 높아 묘제는 횡구식 석실묘로 추정된다. 묘광의 평면형태는 세장방형으로서 장축방향은 N-27°-W이며, 등고선 방향과 직교되게 축조하였다. 묘광의 규모는 길이 500㎝, 너비 337㎝, 깊이 41㎝이며, 석실의 규모는 길이 255㎝, 너비 80㎝, 최대 깊이 30㎝이다. 석실의 평면비는 약 3.2:1이다. 벽석의 축조는 사암인 풍화암반층을 세장방형 형태로 묘광을 굴착한 후 크기 26~53㎝ 사이의 할석과 천석을 안쪽으로 면을 맞추어 종·횡평적하였다. 유구 훼손이 심해 횡구부는 명확하지 않지만, 단벽의 축조 구조로 볼 때 남서단벽으로 추정된다. 시상은 기반층에 세사립과 세석립이 혼입된 갈색사질점토를 높이 5㎝ 정도 바닥 전면에 채운 후 다시 갈색사질점토 상면에 크기 8㎝ 내·외의 천석을 깔아 조성하였다.

기계독해 질의응답 4건

question_id질문답변 불가정답
909653 유구 어디는 후대 교란과 삭평의 영향으로 대부분 유실되었니 가능 상부
909654 후대 교란과 삭평의 영향으로 대부분 분실된 것은 유구의 어느 부분이야 가능 상부
909655 후대 교란과 삭평의 영향으로 유구 어디를 대부분 잃어버렸지 가능 상부
909656 후대 교란과 삭평의 영향으로 석탑 어디가 대부분 유실되었니 불가 상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