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단 (context)
16호 묘는 북-남으로 뻗은 Ⅱ구역 4지점 주능선 해발고도 약 18.5m에 조성되었다. 유구의 북쪽 약 5m 거리에 15-1호 묘가 위치하고 있었다. 유구 상부는 후대 교란과 삭평의 영향으로 북장벽 최하단 벽석 일부를 제외하고 모두 유실되었다. 유구의 유실이 심해 묘제는 명확하지 않다. 묘광의 장축방향은 N-71°-W이며, 등고선 방향과 평행하게 축조되었다. 잔존한 묘광의 규모는 길이 368㎝, 잔존 너비 114㎝, 깊이 20㎝이며, 벽석의 규모는 길이 300㎝, 너비 70㎝, 최대 깊이 20㎝이다. 2차 바닥 조사에서 확인된 남단벽 벽석 흔으로 추정한 벽석 내부의 평면비는 약 4.3:1이다. 벽석의 축조는 사암인 풍화암반층을 세장방형 형태로 묘광을 굴착한 후 크기 30~50㎝ 사이의 할석과 천석을 안쪽으로 면을 맞추어 장벽은 횡평적, 잔존한 동단벽은 종평적 되었다. 북장벽 일원에서 10~20㎝의 천석이 일부 확인되었으며, 시상석으로 추정된다. 16호 묘 북쪽 약 200㎝ 거리에 주구 중복군 1과 연결된 반원상의 주구가 조성되어 있었으며, 주구의 남쪽은 후대 교란과 삭평으로 유실되었다. 주구의 규모는 길이 1,000㎝, 최대 너비 150㎝, 최소 너비 50㎝, 최대 깊이 10㎝이다. 내부 토층은 단일층이며,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다.
기계독해 질의응답 4건
| question_id | 질문 | 답변 불가 | 정답 |
|---|---|---|---|
| 909773 | 후대 교란과 삭평의 영향으로 북쪽 장벽 최하단 벽석 일부를 제외하고 모두 유실된 것은 뭐니 | 가능 | 유구 상부 |
| 909774 | 북쪽 장벽 최하단 벽석 일부만이 후대 교란과 삭평의 결과물로 남아 것은 뭐지 | 가능 | 유구 상부 |
| 909775 | 후대 교란과 삭평의 결과 북쪽 장벽 가장 아래 벽석 일부만 남아 것은 뭐야 | 가능 | 유구 상부 |
| 909776 | 남쪽 장벽 최상단 벽석만 후대 교란과 삭평의 결과물로 남아 것은 뭘까 | 불가 | 유구 상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