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단 (context)
홍주읍성이 자리한 현재의 홍성은 내포(內浦)지역으로 오래전부터 세간의 유명세를 타던 곳이었다. 지금의 예산, 당진, 서산 지역에 해당하는 가야산 일대 10개의 고을을 조선시대 이전부터 ‘내포’라고 일컬었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충청도에서는 내포가 가장 좋은 곳이다”라고 하였는데, 지세가 산모퉁이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큰 길목이 아니어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난리도 비껴갔다. 또한, 넓고 기름진 평야가 펼쳐져 있는데다 바다를 끼고 있어 각종 곡물과 해산물이 넉넉했다. 그야말로 산세 좋고 지세가 좋아 물산(物産)이 풍부하고 난리 걱정도 없어 사람살기 좋았던 곳이 내포였다. 그 내포의 중심지가 홍성이었고 홍성의 관아가 있던 곳이 지금의 홍주읍성이다. 현재 남아 있는 홍주읍성 성벽은 약 800m 정도이다. 동문인 조양문(朝陽門)과 성 안의 홍주아문, 그리고 주변의 산성(山城)을 포함하고 있다. 모두 조선시대 건축물이지만 최근 발굴조사를 통해 고려시대 건물과 성벽 등이 확인되어 처음 축조된 연대는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더욱이 이 일대는 백제부흥운동의 최대 거점이었던 주류성으로 추정되어, 살기 좋았던 만큼 많은 사건의 무대가 되었음을 짐작게 한다.
기계독해 질의응답 4건
| question_id | 질문 | 답변 불가 | 정답 |
|---|---|---|---|
| 1304637 | 택리지를 누가 저술했을까 | 가능 | 이중환 |
| 1304638 | 누가 택리지를 기록했지 | 가능 | 이중환 |
| 1304639 | 택리지를 쓴 게 누구야 | 가능 | 이중환 |
| 1304640 | 누가 택리지를 인쇄했는가 | 불가 | 이중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