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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미국은 소련과 북한의 의도를 사전에 간파라도 한 듯 신속히 참전했다. 북한이 남침한 지 불과 이틀 만에 해·공군을 지원했고, 그로부터 3일 만에 미 지상군 파견을 결정했다. 그리고 전쟁발발 6일 만에 미 지상군을 한국에 파견했다. 이로써 6·25전쟁은 소련과 중국을 등에 업은 북한 공산군과 미국의 지원을 받은 한미연합군의 전쟁으로 확대됐다. 그럼 미국은 왜 그렇게 빨리 참전했을까? 미국이 참전하는 데에는 많은 사람들, 즉 주한미국대사 무초, 극동군사령관 맥아더 원수, 국무장관 애치슨, 그리고 트루먼 대통령이 커다란 역할을 했다. 무초 대사의 역할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무초는 전쟁 당시 50대의 노총각이자 초대 주한미국대사로서 6·25전쟁이 발발했을 때, 한국에서의 전쟁 상황을 미 국무부에 신속히 보고했고, 그의 보고서는 애치슨 국무장관을 통해 트루먼 대통령과 유엔 사무총장에게 보내졌다. 전쟁 초기 무초는 평균 3시간 간격으로 한국의 전황을 알렸다. 그의 한국 전황을 알리는 보고서는 워싱턴에서 한국문제를 해결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로 활용됐다.
기계독해 질의응답 4건
| question_id | 질문 | 답변 불가 | 정답 |
|---|---|---|---|
| 1145513 | 초대 주한미국대사로 한국 전쟁의 전쟁 상황을 미 국무부에 신속히 보고한 사람은 누구야 | 가능 | 무초 |
| 1145514 | 어떤 사람이 최초 주한미국대사로 대한민국의 전쟁 상황을 미 국무부에 재빠르게 보고했니 | 가능 | 무초 |
| 1145515 | 한국 전쟁의 전황을 미 국무부에 신속히 알린 최초 주한미국대사는 누구니 | 가능 | 무초 |
| 1145516 | 최초 주한독일대사로 제2차 세계대전을 미 국무부에 신속히 보고한 사람은 누구지 | 불가 | 무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