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단 (context)
전술한 바와 같이 관료들이 예술정책에서 수행한 역할은 통치이념의 구현과 관련된 다분히 관념적이고도 이론적인 활동들이었다. 그런데 역할의 중점이 그렇다고 하여 음악이나 미술 그 자체에 대한 몰이해가 용납되는 것은 아니었다는 점에 모순점이 있다. 개인적 차원에서 관료들은 악 을 연주하거나 즐기는 것을 폄하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풍류를 아는 문화인으로 받아들였다. 장악원이나 도화서 같은 관청을 관리하는 사람으로서 해당 분야의 전문지식을 갖는 것은 임용의 중요한 자격이었다. 이는 대신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장악원의 제조로 임명한 유자광이 결국은 성현(成俔)을 제조로 임명할 것을 간언하는 상황에서도 드러난다. 성종은 회사에 있어서도 화격(畵格)을 중시하여 선왕의 어진을 그리는 일에 당시 화격을 아는 것으로 이름난 대사헌이던 김유(金紐)를 도화서 제조로 임명하여 일을 감독하게 했다. 대사헌은 청요직으로서 조선 시대 주요 보직으로, 그 자체만으로 보았을 때에는 도화서를 제조에 임명하기에 위격의 차이가 큰 직위였다. 제조 등 고위관료가 관리하는 관청의 실기능을 모르는 경우 관원들의 선발이나 관리에 있어 문제점이 발생했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도 관료의 해당 분야에 대한 전문지식이 요청되었다.
기계독해 질의응답 4건
| question_id | 질문 | 답변 불가 | 정답 |
|---|---|---|---|
| 1002553 | 회사에 있어서도 화격을 중시한 임금이 누구야 | 가능 | 성종 |
| 1002554 | 어느 임금이 회사에 관해서도 화격을 크게 봤어 | 가능 | 성종 |
| 1002555 | 회사에 있어서도 어느 임금이 화격을 주요하게 여겼을까 | 가능 | 성종 |
| 1002556 | 회사에 있어서도 화격을 중시한 대신이 누구야 | 불가 | 성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