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단 (context)
국왕이 그림을 즐기거나 그리는 행위에 대한 관료들은 매우 민감하게 반응했는데, 특히 이러한 비판은 군주가 덕을 쌓기 위하여 수신을 하지 않고 감상적이고 개인적 즐거움을 위한 행위를 하는 것에 대한 극도의 경계심에 근거했다. 이는 도덕군주에 대한 관료들의 이상이 실현되도록 해야 한다는 의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또한 국가가 처한 상황이 편안하지 않을 때에는 더욱 강경하게 군주의 완상(玩賞) 행위를 경계했다. 관료들의 간언은 군주의 개인적 취미와 관심사를 넘어 국정에 대한 필요로써 그림을 적극 이용하는 것까지도 견제하는 정도에 이르기도 했다. 국왕의 미술에 대한 관점과 행동을 둘러싼 이러한 관료들과의 갈등은 성종의 경우 스스로 직접 도화서를 폐지하는 것이 낫겠다는 주장을 하여 관료들을 압박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화사(畵事)를 경계하고 낮추어 보는 관료들의 태도는 정조(正祖)로 하여금 직접 자비대령화원을 설치하여 갈등적 요소를 제어하고자 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대궐 안의 가까운 곳에 궁중화원을 둔 채로 직접 부릴 수 있었던 중국과는 달리 조선은 국왕이 승정원 승지를 통하여 예조 관료에게 지시하여 다시 궁중 밖 도화서에 근무하는 화원을 불러들이는 것만이 가능했다.
기계독해 질의응답 4건
| question_id | 질문 | 답변 불가 | 정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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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2549 | 국왕이 그림을 즐기거나 그리는 행위에 민감하게 반응한 사람들은 누구야 | 가능 | 관료들 |
| 1002550 | 어떤 사람들이 국왕이 그림을 즐기거나 그리는 행동에 민감하게 반응했을까 | 가능 | 관료들 |
| 1002551 | 국왕이 그림을 즐기거나 그리는 행위에 어떤 사람들이 예민하게 반응했어 | 가능 | 관료들 |
| 1002552 | 백성이 그림을 즐기거나 그리는 행위에 민감하게 반응한 사람들은 누구야 | 불가 | 관료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