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단 (context)
비변사(備邊司)는 1510년(중종 5) 삼포왜란(三浦倭亂)이 발발할 때 이를 처리하기 위한 기구로 처음 등장했다. 임진왜란을 계기로 기능이 강화되어 대신(大臣)이 감령(監領)하고 당상들이 참여하여 국가의 중요 정책을 협의하는 ‘비변사체제’가 성립했다. 1623년의 인조반정 이후 반정 공신들이 비변사를 통해 권력을 장악·행사함으로써 그 위상이 더욱 강화됐다. 특히 조선 후기의 사회변화에 따른 새로운 관청 설치나 대동법·공안(貢案) 개정·노비 추쇄 등의 업무를 담당함으로써 비변사는 조선 후기 국정 운영의 최고 관청이 됐다. 비변사 구성원은 의정(議政, 정1품)과 당상(堂上, 정3품 이상), 낭청(郞廳)의 삼층 구조였다. 비변사 논의 때에는 당상의 의견 수렴을 중시했다. 비변사 출현 자체가 국방 전문가의 의견 청취를 목적으로 했다는 점뿐 아니라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다수의 고위 관원이 모여 회의를 통해 의견을 수렴하는 관행이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또한 16세기부터 강조되던 공론(公論) 중시가 17세기 들어와 사림정치(士林政治)가 본격화되면서 더욱 강화된 점, 여러 붕당(朋黨)과 정파들이 비변사 논의를 통해 의견을 조율했다는 점도 비변사 당상의 의견 수렴 중시에 영향을 미쳤다.
기계독해 질의응답 4건
| question_id | 질문 | 답변 불가 | 정답 |
|---|---|---|---|
| 939373 | 인조반정 이후 반정 공신들이 무엇을 통해 권력을 장악했지 | 가능 | 비변사 |
| 939374 | 반정 공신들이 무엇을 통해 인조반정 이후 권력을 휘어 잡았니 | 가능 | 비변사 |
| 939375 | 무엇을 통해 인조반정이 끝나고 반정 공신들이 권력을 휘어 잡았어 | 가능 | 비변사 |
| 939376 | 인조반정 이후 반정 공신들의 권리를 박탈할 때 무엇을 통해 했을까 | 불가 | 비변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