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단 (context)
특히 관행에 따라 처리하는 사안이 아닌 변통이 필요한 사안일 때에는 반드시 대신들이 당상들과 논의하는 과정을 거쳤다. 논의가 다수와 소수로 갈리면 다수 의견으로 회계(回啓)하고 소수 의견을 표시한 당상은 별도로 상소하여 자신의 주장을 개진했다. 그리고 차대(次對)할 때 국왕과 당상이 참여하여 다시 논의한 뒤에 최종 결론을 내렸다. 비변사 차대 일차(日次)는 1639년(인조 17) 이후 월 3회로 정례화됐다가, 1698년(숙종 24) 월 3회에서 6회로 늘어났다. 이로 인해 비변사 차대가 국정 운영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 비변사 차대는 북한산성 축성과 관련해서도 가장 논의가 활발하게 전개됐던 장(場)이었으며, 축성 결정 역시 비변사 차대에서 숙종이 여러 신하들의 의견을 경청한 다음 결단함으로써 가능했다.
기계독해 질의응답 4건
| question_id | 질문 | 답변 불가 | 정답 |
|---|---|---|---|
| 939377 | 북한산성 축성과 관련해서 가장 논의가 활발하게 전개됐던 장이 뭐야 | 가능 | 비변사 차대 |
| 939378 | 무엇을 통해 북한산성 건설과 연관한 논의가 가장 활발하게 전개됐니 | 가능 | 비변사 차대 |
| 939379 | 북한산성을 만들 때 어떤 것을 통해 의논이 가장 많이 이뤄졌어 | 가능 | 비변사 차대 |
| 939380 | 어떤 도구가 북한산성 축성에 큰 기여를 했지 | 불가 | 비변사 차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