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천데이터 · 도서자료 기계독해

창조 행정을 지향하는 행정포커스 paragraph_id 17663

가공데이터
content_id
PCY_201803271050305381
도서명
창조 행정을 지향하는 행정포커스
발행기관
한국행정연구원
연도
2017
KDC 분류
총류
문단 (context)
북한산성 축성이 본격적으로 논의된 것은 숙종 때였다. 숙종 초반 청나라의 불안한 정황으로 인해 축성 논의가 있었지만 실천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1702년 우의정 신완(申琓)의 축성 건의로 논의가 다시 활발하게 전개됐지만, 도성 수축을 먼저 하자는 다수 신료들의 주장에 따라 북한산성 축성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대신 근 300년 만에 도성이 대대적으로 수축되는 성과를 거뒀다. 북한산성 축성이 본격화된 계기는 해적을 막기 위해 연근해 방어를 강화하라고 청나라에서 보내온 공문이었다. 숙종과 여러 신하들은 청나라 공문을 병자호란 때 항복 조건의 하나였던 ‘성곽의 신·개축 금지’의 무효화로 해석했고, 이를 통해 그동안 북한산성 축성을 가로막았던 가장 중요한 반대 논리 중 하나로부터 벗어나게 됐다. 당시에도 축성 반대 의견이 있었지만, 이유(李濡) 등 주요 대신(大臣)들이 찬성하고, 국왕 숙종이 강력한 축성 의지를 표명했으며, 그동안 전·현직 정승과 비변사의 여러 신하들, 장임(將任, 군문 대장)을 역임한 신하들이 모두 북한산성을 답사하고 찬반 여부에 대한 의견을 이미 제시했기 때문에 축성을 결정할 수 있었다.

기계독해 질의응답 4건

question_id질문답변 불가정답
939349 북한산성 축성이 본격적으로 논의된 건 어느 왕 때야 가능 숙종
939350 본격적으로 북한산성 축성이 의논된 건 어느 왕 때일까 가능 숙종
939351 어느 왕 때 북한산성 축성이 본격적으로 상의되었니 가능 숙종
939352 본격적으로 남한산성 축성이 논의된 건 어느 왕 때지 불가 숙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