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단 (context)
북한산성 축성은 호조판서 김우항(金宇杭)과 총융사 김중기(金重器)가 총괄했으며, 실제적인 축성 작업은 훈련도감·금위영·어영청의 3군문에서 분담하여, 1711년 4월 3일 축성을 시작하여 10월 19일에 완공했다. 축성된 북한산성 길이는 총 7,620보였으며 여장 수는 2,807첩이었다. 축성 후 유사시 임금이 머물 행궁(行宮)도 건립하고, 산성 내에 낮은 지역의 방비를 위해 중성(重城)도 쌓았다. 기존의 중흥사(重興寺) 외에 10개의 사찰도 새로 건립했으며, 3군문에서도 산성 안에 분영(分營) 성격의 유영(留營)을 건립하고 군사 등을 배치했다. 북한산성 관리를 주관할 관청으로 경리청(經理廳)을 설치하는 한편, 북한산성과 인왕산 쪽의 도성을 연결하는 탕춘대성(蕩春臺城) 축성도 추진하여 숙종 말엽에 이르면 상당 부분 진척을 보았다.
기계독해 질의응답 4건
| question_id | 질문 | 답변 불가 | 정답 |
|---|---|---|---|
| 939353 | 북한산성과 인왕산 쪽의 도성을 연결하는 것으로 숙종 말엽 상당한 진척을 본 것은 뭐야 | 가능 | 탕춘대성(蕩春臺城) 축성 |
| 939354 | 숙종 말엽 상당한 성과를 낸 것으로 북한산성과 인왕산 쪽의 성곽을 연결하는 게 뭘까 | 가능 | 탕춘대성(蕩春臺城) 축성 |
| 939355 | 북한산성과 인왕산 쪽의 도성을 연결하는 무엇을 진행해 숙종 말엽에 거의 완성했어 | 가능 | 탕춘대성(蕩春臺城) 축성 |
| 939356 | 북한산성과 인왕산 쪽의 성을 끊어내는 것으로 숙종 초기 진행이 중단된 게 뭘까 | 불가 | 탕춘대성(蕩春臺城) 축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