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단 (context)
이러한 방위전략의 변화는 당시 수도 서울의 성장을 반영한 조치였다. 17세기를 경과하면서 조선은 왜란과 두 차례의 호란, 각종 자연재해 등으로 하락했던 경제력을 정부 노력과 지방 사림(士林)의 협조, 백성들의 참여하에 상당 수준 회복했다. 이 기간 동안 수도 서울은 전국적인 농업생산력 증대와 상업 발달, 그리고 대동법(大同法), 고립제(雇立制) 시행과 유민(流民) 대책의 변화를 비롯한 정부 정책 등에 힘입어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인구도 20만∼30만 명으로 늘어났다. 인구 구성도 상공업 발달과 군사력의 수도 집중을 반영하여 시민(市民=상인)과 공인(貢人, 대동법 시행에 따라 공가(貢價)를 받고 정부가 필요로 하는 물품을 납부하는 어용상인), 직업군인과 같이 수도 서울에 생계 기반을 둔 계층이 차지하는 비중이 대폭 늘어났다. 17세기 후반에 대두하여 18세기 중반에 정착한 도성중심 방위전략은 이러한 수도 서울의 성장을 기반으로 제기된 것이다.
기계독해 질의응답 4건
| question_id | 질문 | 답변 불가 | 정답 |
|---|---|---|---|
| 939361 | 대동법의 시행에 따라 공가를 받고 정부가 필요로 하는 물품을 납부하는 상인을 뭐라고 해 | 가능 | 공인 |
| 939362 | 어떤 상인이 대동법의 실시됨에 따라 공물 값을 받고 정부에 필요한 물품을 갖다 줘 | 가능 | 공인 |
| 939363 | 대동법이 실행되면서 값을 받고 정부에 물건을 제공하는 상인을 뭐라고 했니 | 가능 | 공인 |
| 939364 | 방납이 실행될 때 정부가 필요로 하는 물건을 만들던 사람을 뭐라고 했을까 | 불가 | 공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