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단 (context)
조선시대 도서관이라 칭할 수 있는 공간은 ‘융문루’, ‘융무루’ 등이 있었지만 역사의 기억 속에 더 친숙한 것은 세종 때(세종2년) 설치한 ‘집현전’이다. 융문루와 융무루처럼 서책을 보관하지는 않았지만 학자들의 연구를 위한 책과 자료는 어느 공간보다 많이 보관되어 있었다. 도서관의 기능보다는 학문연구기관으로써 한글창제의 기반이 된 곳이지만 역사의 기억 속에 집현전은 세종시대 도서관이자 연구기관으로써 한글창제의 산실로 기억되고 있다. 집현전은 국립세종도서관이 완공되며 재조명되고 있다. 유독 총애를 받던 학자 성삼문과 박팽년이 세종시에 연고를 두고 있어 학문과 연구에 대한 그들의 열정이 이어지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하고, 세종대왕의 이름을 담은 ‘세종’시에 설립되었다는 것도 그 이유다.
기계독해 질의응답 4건
| question_id | 질문 | 답변 불가 | 정답 |
|---|---|---|---|
| 1083305 | 세종시대 도서관이자 연구기관으로써 한글창제의 산실로 기억되는 곳은 어디야 | 가능 | 집현전 |
| 1083306 | 어느 곳은 세종시대 도서관이자 연구기관으로써 한글창제의 생산지로 기억되니 | 가능 | 집현전 |
| 1083307 | 어떤 곳은 세종시대 연구기관이자 한글창제를 이룬 곳으로 떠오를까 | 가능 | 집현전 |
| 1083308 | 고려 시대 연구기관이자 도서관으로써 문화양식 창제의 산실로 남아있는 곳은 어디지 | 불가 | 집현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