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단 (context)
세종시 장군면 대교리. 한적한 농촌마을 어귀, 홍살문이 보인다. 홍살문을 지나 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충신이나 효자 등을 표창하는 정려가 있고,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큰 비석 옆에 묘가 눈에 들어온다. 조선시대 최고의 장군, 김종서의 묘역이다. “용성으로 국경으로 삼으면 선조(先祖)의 땅이 줄어들고, 산천의 험함이 없어 방비가 어려울 것이옵니다. 하오나 두만강을 국경으로 삼는다면 곧 임금의 땅을 다시 일으키는 것이 한 가지 대의요, 긴 강의 험함을 이용하면 적으로부터 수비가 편할 것이옵니다.” “경의 글을 보니 장차 북쪽의 일은 걱정할 것이 없겠구려.” 북방영토 경영에 대한 김종서의 상소문을 읽고 세종대왕은 내시를 보내 한 마디를 전한다. 문무를 겸비하고 지략이 탁월한 김종서는 다른 무엇보다 능력과 전문성을 보고 사람을 기용했던 세종대왕이 일찍부터 눈여겨보던 인재였다. 그는 영토 개척에 반대하는 신하들 사이에서 “조종(祖宗)께서 지키던 땅을 한 자, 한 치라도 버릴 수 없다”는 왕의 신념에 충성하였고, 7년간 전심전력하여 두만강 연안의 6진을 개척한 북방의 영웅이 된다.
기계독해 질의응답 4건
| question_id | 질문 | 답변 불가 | 정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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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83369 | 조선 세종대왕 시대에 두만강 연안의 6진을 개척한 장군이 누구야 | 가능 | 김종서 |
| 1083370 | 누가 조선 세종대왕 시대에 두만강 연안의 6진을 개발한 장군이지 | 가능 | 김종서 |
| 1083371 | 두만강 연안의 6진을 개척한 조선시대 장군이 누굴까 | 가능 | 김종서 |
| 1083372 | 누가 조선 세종대왕 시대에 섬진강 연안의 6진을 빼앗긴 장군이지 | 불가 | 김종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