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단 (context)
실제로 임난수 장군이 당시 터를 잡았던 곳은 세종리, 옛 지명으로 양화리라는 곳이다. 이곳에는 커다란 은행나무 한 쌍이 웅장한 자태로 서있다. 은거한 후에도 여러 차례 태조 이성계의 부름이 있었으나 끝내 거절하고 충절을 지키던 임난수 장군이 고려를 그리워하며 직접 심은 암수 한 쌍의 이 은행나무는 6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충절의 상징으로 사람들의 칭송을 받고 있다. 오래된 마을 주민의 이야기에 따르면 세종리 은행나무가 여전히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영험한 나무로 회자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는데, 이 나무가 나라에 큰 변고가 있을 때마다 ‘웅~’하는 소리를 내며 운다는 것이다. 1910년 경술국치와 한국전쟁은 물론,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인들이 은행나무를 베려할 때도 울어 지금까지 명맥을 잇고 있다. 임난수 장군의 기운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은행나무 곁에 세워진 숭모각을 발견할 수 있다. 숭모각은 임난수 장군의 사당이자 은거지로, 1419년, 세종대왕이 임난수 장군의 충절을 인정하며 ‘임씨가묘’라고 직접 쓴 편액을 내리며 영원히 사당에 모시라는 불천 지위까지 내린 곳이기도 하다. 임난수 장군을 모시는 사당이기도 한 숭모각에는 임난수 장군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고 하나 임진계사 때 분실했다.
기계독해 질의응답 4건
| question_id | 질문 | 답변 불가 | 정답 |
|---|---|---|---|
| 1083389 | 임난수 장군의 사당이자 은거지가 어디야 | 가능 | 숭모각 |
| 1083390 | 어디가 임난수 장군의 가묘이자 은거지일까 | 가능 | 숭모각 |
| 1083391 | 임난수 장군이 숨어 살던 곳이자 사당인 데가 어디지 | 가능 | 숭모각 |
| 1083392 | 임난수 장군의 사당을 어디에서 관리하는가 | 불가 | 숭모각 |